항목 ID | GC042069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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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開城高等學校-舊釜山商高-標石 |
영어의미역 | Stone Post for Old Gaeseong High School[Formerly Busan Commercial High School] |
분야 | 문화·교육/교육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가야대로 772[부전동 503-15]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전영섭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전동에 있는 2007년 부산상업고등학교가 있던 터를 알리기 위해 세운 비.
1895년 민족 자본 최초로 설립된 개성고등학교는 110여 년 역사 동안 두 차례 이전을 하였다. 그중 가장 오랜 기간은 ‘부산상업고등학교’라는 이름으로 있었던 66년이었다. 이 기간 동안 제16대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개성고등학교 옛터[구 부산상고]는 2007년 2월 26일 교사를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당감동으로 옮긴 지 20여 년이 흐르자 이전의 학교 흔적이 잊혀 가는 것을 염려하여 개성고등학교 총동창회에서 주관하여 건립하였다.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서면역에서 하차하여 롯데 백화점으로 올라가면 바로 옆에 부산 롯데 호텔이 나오는데, 개성고등학교 옛터[구 부산상고]는 호텔 후문 쪽 화단 내에 있다. 주소지는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전동 503-15번지이다.
원형 석비 오른쪽 상단에 모표를 원형으로 반쯤 겹쳐 돌출하였다. 원형 석비는 지름 90㎝, 두께 21㎝로 아래가 넓은 타원형이고, 모표는 지름 30㎝, 두께 16㎝의 원형에 양각하여 금색으로 도장하였다. 좌대는 하단 가로 109㎝, 상단 가로 63㎝, 세로 80㎝, 두께 35㎝의 사다리꼴 사각형의 화강석으로 만들었다. 석비 제목은 가로 75㎝, 세로 58㎝의 오석(烏石)에 음각으로 새겼다. 기단은 가로 120㎝, 세로 90㎝, 두께 10㎝의 직사각형 화강석이다.
석비 제목은 부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현 성공회대학교 석좌 교수인 신영복(申榮福)이 직접 쓴 글씨 및 낙관을 음각으로 새겼다. 좌대에 있는 석비 제목은 ‘개성고등학교 옛터[구, 부산상고] 1923~1989 쇠귀’라고 되어 있고, 원형 석비에 학교의 역사를 기록하였다. 다음은 원형 석비에 새긴 글이다.
“1895년 고종 32년 선각자 박기종 선생은 신교육의 필요성을 통감하고 개물성무(開物成務)의 건학 이념으로 네 분의 지인과 공동 출자하여 영주동 580번지 지금의 봉래초등학교 자리에 민족 자본으로 설립한 최초의 학교인 부산개성학교를 세웠다. 1897년에 국가에 헌납되었고 1911년에 부산공립상업학교로 개명되었다. 1923년에 백산(白山) 안희재, 최봉일 선생 등 부산의 유지 10여 분의 기부금으로 동래군 서면 부전리 503번지인 이곳 10,852평[3만 5874.38㎡]에 교사를 신축하고 이전하였다.
1989년 당감동으로 옮기기까지 66년간 2만 1000여 명의 젊은이들이 이곳에서 청운의 뜻을 품고 호연지기를 키웠다. 독립투사 박재혁[4회], 대기업인 김지태[14회], 16대 대통령 노무현[53회] 등 수많은 국가 동량을 배출한 곳이며 1940년 11월 23일 ‘노다이 사건’으로 일컬어지는 부산 항일 학생 의거의 현장이기도 하다. 2007년 개교 제112주년을 맞이하여 3만여 동문들의 뜻을 모아 이곳이 개성고등학교의 전신인 부산상업고등학교의 옛터임을 밝히는 표석을 세운다. 2007년 2월 26일 개성고등학교 동창회장 양원석.”
부산에서 시민들의 왕래가 많은 부산 롯데 호텔 후문에 표석이 있어 시민들에게 부산상업고등학교의 흔적을 잘 알려 주고 있다. 표석은 부산 롯데 호텔에서 관리하고 있다.
개성고등학교 옛터[구 부산상고]는 개성고등학교의 전신인 부산상업고등학교의 흔적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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