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42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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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草邑洞堂山祭 |
영어의미역 | Religious Ritual for the Mountain Spirit in Choeup-dong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395 |
집필자 | 김남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초읍동 당산제는 음력 1월 16일 오전 7시에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395번지에 있는 제당에서 1년에 한 번 마을의 안녕과 무사·평화를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제당은 초읍동 창신 그린힐 북서쪽 주택가 내에 위치하고 있다. 제당의 옛 건물은 1954년에 지어진 것으로 기와 팔작지붕에 단청을 한 건물이었는데, 1981년에 개축하였다. 초읍동 당산제는 300여 년 전부터 매년 음력 3월 3일과 9월 9일에 당산 나무 앞에서 초읍동의 안녕과 무사 평화를 기원하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마을 공동의 제의이다. 을미년 윤3월에 김두영(金榮斗)이 쓴 「주신당기(主神堂記)」와 이광진(李光珍)이 기록한 세재정유모춘상한(歲在丁酉暮春上澣)의 「상당 개건기(上堂改建記)」 및 1954년 10월에 김지태의 모친의 일금 5천환 외 28명의 기부자 명단과 기부 금액이 쓰인 현판인 ‘갑오년(甲午年) 중건시(重建時) 희사금판(喜捨金板)’은 1981년 현 제당을 지으면서 없애 버렸다고 한다.
제당은 대지 면적 660㎡[200평]에 건물 면적은 14.2㎡[4.3평, 앞면 430㎝, 옆면 327㎝]이며, 건물의 방향은 서서북향이다. 기와 맞배지붕에 블록을 쌓아 시멘트로 마감한 건축 양식이고, 문은 여닫이 두 짝 나무문이다.
제단은 슬래브 제단[본 제단: 앞면 182㎝, 옆면 94㎝/ 옆 제단: 앞면 134㎝, 옆면 76㎝/ 두 제단의 높이 100㎝, 두께 10㎝]이며, 본 제단 위에 신체를 모시는 단[앞면 166㎝, 옆면 23㎝, 높이 17㎝]이 있다. 위패는 없고, 신체는 돌 세 개[지름 19㎝, 높이 15㎝ 정도]인데, 한지를 고깔형으로 접어 덮어 두었다.
제당의 오른쪽 벽에는 바닥으로부터 188㎝ 위에 ‘서기 일천구백팔십일년 신유 육월 삼십일 상당 신개축시 방명록’의 나무판[가로 120㎝, 세로 23㎝, 두께 2㎝]이 붙어 있고, 제당의 왼쪽 벽 구석에는 제단으로부터 95㎝ 위에 성주단지[지름 18㎝, 높이 14㎝]가 받침대[앞면 34㎝, 옆면 23.5㎝, 두께 3㎝] 위에 놓여 있다.
제당 밑은 경사가 지고 높이 190㎝의 돌담[앞면과 옆면 13m]이 있으며, 부산광역시의 보호수인 포구나무[수령 500년, 수고 18m, 나무 둘레 3.5m, 1980년 12월 8일에 지정]를 비롯한 포구나무 9그루가 주위에 있다. 그리고 제당 오른쪽의 포구나무[보호수] 아래에는 시멘트로 만든 목신 제단[앞면 134㎝, 옆면 57㎝, 높이 72㎝]이 있다.
초읍동 당산제는 1945년 8·15 해방 전에는 1년에 두 번 3월 3일[삼짇날]과 9월 9일[중양절]에 지냈으나, 2005년에는 음력 정월 보름날에 지내는 것으로 조사되었고, 2011년 현재는 음력 1월 16일 오전 7시에 지내고 있다.
제사 주관자를 제주라 칭하고, 음력 1월 5일 무렵에 마을 어른들이 모여 정결하고 유고가 없는 사람을 선정하였다. 지정된 사람은 부정을 막기 위해 제사 전후 일주일간을 금기한다. 2011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제사는 초읍동 마을 토박이로 구성된 향우회에서 주관·관리하고 있으며, 제관은 해마다 제사 당일에 정한다. 경비는 1년에 약 200만 원이 든다. 이에 「충렬사 제향」[부산광역시 무형 문화재 제5호]의 대축 부문 인간문화재로 지정된 이일하 외 초읍동 토박이 어른 10여명이 당산제를 주관하였으나, 현재는 이일하의 아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한다.
제사는 산신당→ 목신제→ 당산제 순으로 지내는데, 각각의 당에 제물을 차려 놓고 제를 지낸다. 제물은 고당 할미제의 경우 제반, 육류, 조기, 마른 명태, 정화수 3그릇, 과일을 쓰고, 산신제에는 제반, 술, 쇠머리 또는 돼지머리, 큰 어류, 간장, 김치, 청어, 조기, 과일을 쓰는데, 진설과 제사 절차는 대체로 일반 가정의 기제사와 같다. 한편 고당 할미제의 제반은 솥째 올리며 숟가락 세 개를 제반에 꽂는다. 제의 과정은 옛날에는 산신제→ 목신제→ 고당 할미제[당산제]→ 용왕제→ 거릿제 등의 순서였으나, 2005년 조사에서는 용왕제와 거릿제는 지내지 않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축문은 사용하고 있다.
초읍동 당산제를 지낸 뒤에 제주는 제당 안에서 자고 일어나 제물을 제주 집으로 운반하고 동네 사람들을 초청하여 음복한다.
초읍동 당산제에는 향우회 회장을 비롯한 마을의 유지들과 마을 사람들이 참석한다. 다만 제사의 초헌은 향우회 회장, 아헌은 동장, 종헌은 주민 자치 위원장이 각각 맡아서 한다. 2005년 이전에는 용왕제도 있었으나, 제당 옆에 있던 옹달샘의 물이 마르면서부터는 지내지 않고 있다. 당산 앞에는 500년 정도가 된 포구나무가 있는데, 초읍동 주민들은 이를 신성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