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7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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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苗木生産組合 |
영어의미역 | Seedling Production Association |
분야 | 역사/근현대,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전성현 |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결성된 묘목 재배·판매업자 조합.
1915년 2월 7일 부산부의 명호루(鳴戶樓)에서 총회 후 결성된 묘목 재배업자 및 판매업자들의 조합으로, 1914년부터 관련 업자들로부터 조합 결성의 논의가 이루어지던 것을 경상남도청의 갈서(葛西) 기수의 주도로 창립하게 되었다. 당일 오후 6시부터 총회가 개최되었는데, 참석자는 조합원 35명이었으며, 이들의 만장일치로 조합 규약을 가결하고 ‘묘목생산조합’이라고 명명하여 조합의 설립을 보게 되었다.
묘목생산조합은 묘목 생산과 판매에 있어서 관련 업자들이 서로 협력하여, 생산성과 경제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설립되었다.
총회 당일 역원의 선거가 실시되어 좌곡롱태랑(佐谷瀧太郞)이 초대 조합장에 당선되었으며 중도학태랑(中島鶴太郞)이 부조합장, 중산희시(中山喜市)가 회계, 임응차랑(林熊次郞)·길우소팔랑(吉友小八郞)·가지금평(加地金平)·영목웅평(鈴木熊平)·득능증태랑(得能增太郞)·염기고조(鹽崎庫助) 등이 평의원을 맡게 되었다. 초대 조합장을 맡은 좌곡롱태랑은 부산부 범일동[현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에 거주하였던 실업가로, 농구·농산물 판매를 주요 영업 종목으로 하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 부산부의 묘목 생산업자 및 묘목 판매업자의 현황을 파악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일본인 경제인들의 네트워크의 한 단면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