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7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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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鍾-木-必- |
영어음역 | Ahn Jong Pil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장병윤 |
부산 출신으로 1960~1970년대 자유 언론 투쟁을 주도한 언론인.
안종필(安鍾木+必)은 1937년 5월 5일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났다. 경남고등학교를 거쳐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였다. 대학 졸업 후인 1963년 부산일보사에 입사하여 언론계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이듬해 서울로 올라온 안종필은 조선일보사에 입사하고, 1965년에는 동아일보사로 자리를 옮긴다.
안종필은 1969년 변칙적인 방법으로 3선 개헌을 통과시킨 박정희(朴正熙) 정권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을 다룬 기사의 헤드라인을 ‘그럴 수가’라고 한 마디로 압축해 눈길을 끌었다. 1971년에는 『동아 일보』 기자들을 선두로 한 언론 자유 수호 운동에 참여하고, 1974년 10·24 자유 언론 실천 선언에 간부 기자[편집부 차장]로 드물게 적극 참여하였다.
1975년 1월 안종필은 동아일보기자협회 분회장으로서, 자유 언론 실천 운동에 대한 동아일보사 측의 부당 해고에 저항해 3월 18일 결성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약칭 동아투위]를 적극 지원하다 자신도 해임되었다. 이후 해직 기자 134명의 구심점으로, 1977년 5월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2대 위원장이 된 안종필은 이듬해 언론이 보도하지 않는 민주화 운동 관련 소식을 보도한 ‘민주 인권 일지’ 사건으로 징역 및 자격 정지 2년을 선고받았다. 복역 중이던 안종필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피살되고 유신 정권이 붕괴되자 12월 4일 구속 집행 정지로 석방되었다. 하지만 감옥에서 얻은 간암으로 인해 이듬해 2월 29일 사망하였다.
1987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는 안종필 자유 언론상을 제정하여,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하여 자유 언론의 신장과 진실 보도에 탁월한 업적을 보인 이들’을 시상하고 있다. 2002년 1월에 국가로부터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활동과 관련,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았다.
묘소는 경기도 파주시 교하면 동패리에 있는 일산 공원묘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