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4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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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眞宰畵集永嘉臺 |
영어의미역 | Collection of Jinjae’s Paintings |
이칭/별칭 | 『진재 화첩』「영가대」,『영남 기행 화첩』「영가대」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현주 1 |
부산광역시 서구 부민동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조선 후기 화가 김윤겸(金允謙)의 『진재 화집』에 수록된 영가대 산수화.
『진재 화집(眞宰畵集)』 「영가대(永嘉臺)」는 지본 담채로 그려진 14폭의 『진재 화집(眞宰畵集)』 가운데 한 작품이다. 『진재 화집』은 김윤겸이 1770년(영조 46) 소촌도 찰방(召村道察訪)을 지낼 당시 진주를 중심으로 한 영남 일대를 기행하고 그린 산수 화첩이다. 홍류동(紅流衕), 해인사(海印寺), 송대(松臺), 가섭암(迦葉庵), 가섭동폭(迦葉衕瀑), 월연(月淵), 순암(蓴巖), 사담(蛇潭), 환아정(換鵝亭), 하룡유담(下龍游潭), 극락암(極樂庵) 등 합천, 거창, 함양, 산청 지역뿐 아니라 몰운대(沒雲臺), 영가대(永嘉臺), 태종대(太宗臺) 등 부산[동래]의 명승지를 포함해 총 14장의 진경산수화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기행지들은 대부분 『동래 부지(東萊府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과 당시의 문집에서 확인되듯이 예로부터 뛰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지역의 명소임을 알 수 있다. 『진재 화집』에 수록된 다른 두 지역은 경관을 확인할 수 있는 반면 영가대는 조선 시대에 부산진성 앞[지금의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 진시장 뒤편 철도변]에 위치하였으나 지금은 자취를 찾아볼 수 없다. 『진재 화집』은 2004년 10월 4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6호로 지정되었다.
『진재 화집』의 각 화폭 규격은 일정하지 않아, 세로 27.3~31.1㎝, 가로 21.1~47.6㎝로 다양한데, 그중 『진재 화집』 「영가대」는 세로 29.6㎝, 가로 47.6㎝이다.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자체적으로 시행한 경우까지 포함해 세 번의 표구 과정을 거치면서 각 작품의 크기가 달라졌을 터이나 화면의 경물 배치, 화제와 관지의 위치상 원래부터 동일한 크기는 아닌 듯하다.
현재 『진재 화집』의 표지에는 ‘진재 화집(眞宰畵集)’이라 쓰여 있으며, 첫 장에는 동아대학교에서 따로 ‘진재 선생 필(眞宰先生筆)’이라는 묵서를 더하였다. 원래의 화집은 펼쳤을 때 양 화면 전체에 하나의 그림을 그린 것인데, 현존하는 것은 각각 펼쳐서 한 페이지에 한 작품씩 경접장(經摺裝)[쌍엽 단면 인쇄] 형식으로 표구한 것이다. 『진재 화집』 「영가대」는 현재의 표구 상태로 보아 제2폭에 해당된다.
T자형 나무가 무성한 산세들로 둘러싸인 넓은 수면을 중심에 두고, 약간 좌측으로 낮은 구릉의 영가대가 보인다. 수묵의 필법 아래로 푸른 선염(渲染)[화면에 물을 칠해 마르기 전에 색을 입히는 기법]이 돋보이며 근경의 잔잔한 수면과 원경의 산에도 수채화 같은 선명한 선염으로 처리하여 밝은 느낌을 준다. 이처럼 T자형의 수지법(樹枝法)[나무의 뿌리·줄기·가지·잎 등의 표현 기법]이나 푸른 파도의 물결 묘사 등은 진경산수화풍으로 여겨지나, 필법을 억제하고 선염의 농담으로 화면 전체에 수채화 같은 느낌이 들게 묘사한 점은 진재화풍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김윤겸의 『진재 화집』은 영남 지방의 명승지를 그린 몇 안 되는 대표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특히 『진재 화집』 「영가대」는 통신사 일행이나 동래 부사 등 서화에 조예가 깊었던 인물들이 다녀갔던 곳으로, 대일 교섭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지리적 장소였으나 실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실경을 확인하는 역사적 고증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또한 정선화풍에서 완연하게 벗어난 김윤겸 만년의 득의작으로서 의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