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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동에 있던 자연 마을. 고기등(古器嶝)의 명확한 명칭 유래는 전하지 않으나, 마을이 있던 장소에서 옹기를 만들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전해진다. 고구디 또는 고기둥 마을로도 부른다. 고기등 마을의 명확한 형성 시기는 전해지지 않으나, 광복 전까지만 해도 밭농사를 하는 5~6호가 거주하던 한적한 마을이었다고 전한다.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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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송정동에 있는 자연 마을. 구덕포(九德浦)에 자리한 마을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구덕포 마을은 약 300여 년 전 동래군 원남면(元南面)에 속하였던 포구에 함안 조씨(咸安趙氏) 일가가 정착하면서 형성되었다고 한다. 마을이 속한 지역은 『기장현읍지(機張縣邑誌)』[1831]에 기장현 남면 송정방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1880년(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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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에 있던 자연 마을. 대천(大川) 유역에 형성된 마을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천은 춘천(春川)의 또 다른 이름으로 하상이 넓어 큰내 또는 한내로 불렀다가 한자명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대천 마을의 형성 시기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마을 인근에서 구석기 시대 석기가 출토되어 오랜 거주 역사를 알 수 있다. 마을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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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재송동에 있는 자연 마을. 뒷골 마을의 장산 서북쪽 기슭에 뒷골[後谷]·안골[內谷]·서당골[書堂谷]이 있었는데, 각 골짜기의 이름을 따서 마을 이름으로 부르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세 계곡을 통칭하여 뒷골 마을로 부르게 되었다. 뒷골 마을은 임진왜란[1592] 때 충청도 회덕에서 피난 온 고씨가 15대째 살고 있으며, 서당골에는 송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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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동에 있는 자연 마을. 못안[池內] 마을은 장지에 있는 저수지[현 해운대도서관 자리]를 경계로 안쪽에 있다 하여 붙여진 마을 이름이다. 저수지는 장산 선황봉(先篁峰) 계곡의 물을 농업용수로 이용하기 위하여 조성하였다. 장지 마을 위쪽에 있어 윗 마을로도 불린다. 못안 마을의 명확한 형성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김해 김씨(金海金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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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동에 있는 자연 마을. 무정(舞亭) 마을은 무정이라는 정자 부근에 형성되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무정은 오지봉 기슭에 있던 정자로, 옛날 임금이 오면 춤을 추던 장소라고 전한다. 무정 마을의 형성 시기에 대해서는 전하는 바가 없으며, 『경상남도 동래군 가호안』[1904]에 동래부 동상면 관내에 무정동이 있어 11호가 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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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동에 있는 자연 마을. 무지개 마을은 철거민의 이주지로 조성된 연립 주택 단지에 구역별로 색색의 페인트칠을 해 멀리서 보면 무지개를 연상시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편 새로 정착하는 이주민들에게 희망과 꿈을 심어 주기 위하여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무지개 마을은 1972년 9월 서구 구덕 수원지 수재민 165가구가 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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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에 있는 자연 마을. 미포(尾浦)에 자리하고 있어 미포 마을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미포는 해운대 동북쪽에 자리 잡은 와우산(臥牛山)[높이 183m로 장산에서 내려다보면 소가 누워 있는 것같이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의 꼬리 부분에 해당되는 갯가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미늘, 미암(尾巖)이라고도 불렀다. 미포 마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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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송동에 있는 자연 마을. 반송(盤松)이란 이름은 운봉초등학교 앞에 서 있는 수령 200여 년이 넘는 아름드리 소나무를 반송 나무굴이라 칭하면서 비롯되었다. 반송동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마을이라 하여 본동(本洞), 본리(本里) 마을 또는 웃반송이라고도 한다. 반송동은 옛날 기장현과 동래부의 경계를 이룬다 하여 지경리(地境里)로도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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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 4동에 있는 자연 마을. 삼어(三魚) 마을의 명칭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전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마을에서 어사가 세 사람 나와 붙여진 이름이라는 견해가 있다. 마을 내 어사탑[돌탑]이 강변 도시 고속 도로 쪽[탑거리로 불림]과 반여 아파트 안, 대우자동차 출고장 자리에 3기가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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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1동에 있는 자연 마을. 상리(上里) 마을[반여동]은 반여동의 자연 마을 중 가장 위쪽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상리 마을은 400여 년 전에 형성되었다고 한다. 마을이 속한 지역은 『동래부지(東萊府誌)』[1740]에 동면 반여리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 후기에는 동래부 동면에 속하였다가 이후 동상면으로 분리되었으며, 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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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석대동에 있는 자연 마을. 석대(石臺)[돌대라고도 함]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상리(上里) 마을 또는 윗마을이라 불렀다. 석대는 추마산 기슭 대리골에서 흘러 온 하천이 석대천과 합류해 석대교[구 석대동사무소 앞]를 지나는 자리에 있는 바위[너럭바위, 넓고 평평한 바위]의 이름이다. 상리 마을[석대동]은 영양 천씨(穎陽千氏)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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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2동에 있는 자연 마을. 옛날 청사포 마을에서 혼인을 하면 새로 살림을 내어 주던 곳이라서 신기(新基) 마을로 불렀다가 한글 지명으로 바꾸며 새터 마을이 되었다. 새터 마을의 형성 시기는 명확히 알 수 없으나, 청사포 마을에서 자식들이 혼인을 하면 살림을 내어 주던 곳으로 가구 수가 늘어나며 독립된 마을이 된 것으로 전한다. 마을은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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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동에 있던 자연 마을. 설분곡(雪粉谷) 마을은 설분곡에 자리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설분곡은 본래 인가(人家)가 없고 해운암(海雲庵)과 과수원이 있던 장소인데, 6·25 전쟁으로 피난민이 하나 둘 모여들며 판자촌 마을을 형성하였다. 인근에 부두가 있어 부두 노동자들의 거주지로 설분곡 마을은 더욱 번성하게 되었다. 당시 마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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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송정동에 있는 자연 마을. 송정(松亭)은 본래 갈개 또는 가래포(加來浦), 가을포(加乙浦)라고 불렀다. 갈개는 갈대의 지방 방언으로 만입부에 갈대가 서식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으로 전하며, 가래포의 가래는 갈대의 사투리이다. 가을포는 가래포의 차음에서 나왔다고 한다. 가을포를 송정으로 부르게 된 것은 이곳의 세거 씨족인 광주 노씨(光州盧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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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동에 있던 자연 마을. 승당(僧堂) 마을은 승려가 집을 짓고 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 내에 점쟁이가 많이 배출되어 근래에 와서 승당의 승(僧) 자를 승(勝) 자로 바꾸었다고 한다. 승당 마을의 명확한 형성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사명 대사(四溟大師) 유정(惟政)[1544~1610]이 백산(白山)[수영구 민락동]의 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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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송동에 있는 자연 마을. 신리(新里) 마을은 소리길[석대동 옹기골에서 고촌역으로 가는 소로(小路)를 일컫던 이름] 중간 지점에 주막이 생기면서 새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새마을로도 부른다. 신리 마을의 정확한 형성 시기는 알 수 없지만,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반송동에서 가장 늦게 형성된 마을이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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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동에 있는 자연 마을. 신촌(新村)은 1960년대 후반 새로 형성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신촌 마을[반여동]은 6·25 전쟁 이후 인근에 미군 부대가 주둔하며 인구가 늘어나자 1960년대 후반부터 새로 형성된 마을이다. 당시 마을은 부산직할시 동래구 반여동에 속하였으며, 1978년 해운대출장소에 편입되었다.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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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에 있던 자연 마을. 원래는 봉림(鳳林) 마을로 부르다가 이후 오산(梧山) 마을로 개칭되었다고 전한다. 오산 마을의 명칭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전하는데, 먼저 풍수지리설에 따라 이곳 지형이 오동잎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다음으로는 오동나무가 많아서 머구실[오동나무를 뜻하는 사투리]로 불리다가 오산이 되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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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에 있는 자연 마을. 해운대 구남벌에서 온천이 솟아나며 형성된 마을이라서 온천(溫泉) 마을로 불렀다. 해운대 온천은 본래 구남벌에서 솟았다 하여 구남 온천(龜南溫泉)이라고도 하였다. 통일 신라의 진성 여왕(眞聖女王)[재위 887~897]이 어릴 적 천연두를 앓았는데, 해운대 온천에서 목욕을 하고 나았다는 전설이 있어 오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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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송동에 있는 자연 마을. 운봉산[465m] 기슭에 자리 잡아 운봉(雲峰) 마을이라고 불렀다. 운봉산은 반송의 진산으로 옛날 옥황상제의 일곱 딸이 내려와 목욕을 하던 연못[운봉사 터가 본래 연못이 있던 자리로 전해짐]이 있었는데,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올 때마다 구름이 산봉우리를 가리게 되어 운봉이라 불렀다고 한다. 신비스러운 영산이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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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동에 있는 자연 마을. 운촌(雲村) 마을은 원래 해운대로 불려 왔는데 운촌으로 바뀌게 된 정확한 연유는 알 수 없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조선 후기 이 마을 출신인 김기원이 과거에 급제하기 위해 갯가 마을 출신임을 숨기려고 해운대의 가운데 글자를 따 운촌으로 부른 것이 그 시작이라고 한다. 운촌 마을의 형성 시기에 대해서는 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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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좌동에 있는 자연 마을. 장산(萇山) 마을은 장산 기슭에 자리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장산 마을은 1963년 장산 개척단[퇴역 장병 10여 명이 당시 원호청으로부터 정착 대부금을 받아 설립]에 의해 조성되었다. 마을 주민들은 산정(山頂)을 개간한 뒤 고랭지 채소를 가꾸며 생활 터전을 일구었다. 이후 부산시가 퇴역 장병들에게 토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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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동에 있는 자연 마을. 장산의 장지봉(萇旨峰) 기슭에 자리한 마을이라고 하여 장지(萇旨)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못안 마을 위쪽에 자리 잡고 있어 웃마을로도 불렀다. 장지 마을의 명확한 형성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장산 기슭에 농경지를 개간하며 형성되었다. 마을은 조선 후기에는 동래군 동하면(東下面)에 속하였고, 1914년 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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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재송동에 있는 자연 마을. 재송(栽松) 마을은 재송포에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포구에 소나무가 수만 그루 서 있다 하여 재송이란 이름이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재송 마을의 형성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후기 동하면(東下面)의 제일 큰 마을로 알려져 오랜 역사를 알게 한다. 마을이 속한 재송리는 『동래부지(東萊府誌)』[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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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좌동에 있던 자연 마을. 좌동(佐洞) 마을은 장산에서 흘러내리는 춘천의 왼쪽에 있는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는 ‘좌(左)’ 자를 썼으나 지금은 ‘도울 좌(佐)’로 변경되었는데, 그 연유는 알 수 없다. 좌동 마을이 있던 지역에서 구석기 시대 유적[긁개와 홈날, 몸돌, 대석 등이 출토]이 발굴되었으며, 79년(신라 탈해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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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동에 있는 자연 마을. 중리(中里)는 반여동의 중간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중리 마을의 형성 시기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려진 바가 없으나, 1700년경 남평 문씨(南平文氏)가 살았다고 전하며, 이후 남평 문씨와 청도 김씨(淸道金氏)의 집성촌을 이루었다. 마을은 『동래부지(東萊府誌)』[1740]에 “중리 마을 장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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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에 있는 자연 마을. 청사포(靑蛇浦) 마을은 청사포[푸른 구렁이의 포구]에 자리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청사포는 골매기 할매의 전설과 관련된 지명이다. 새 신부였던 김씨 부인은 고기잡이를 나간 남편이 난파해 돌아오지 않자 매일 해안가의 바위에서 두 그루의 소나무[망부송(望夫松)으로 불림]를 심고 남편을 기다렸다. 수십 년을 하루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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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석대동에 있는 자연 마을. 석대(石臺)[돌대라고도 함)의 아래쪽에 있어 하리(下里) 마을 또는 아랫 마을이라 불렀다. 석대는 추마산 기슭 대리골에서 흘러 온 하천이 석대천과 합류해 석대교[구 석대동사무소 앞]를 지나는 자리에 있는 바위[너럭바위]의 명칭이다. 하리 마을[석대동]은 영양 천씨(潁陽千氏) 집성촌으로 임진왜란[15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