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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 마을[석대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9231
한자 下里-石坮洞-
영어의미역 Hari Village[Seokdae-dong]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석대동 하리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주영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자연 마을
변천 시기/일시 1904년 - 경상남도 동래부 동상면 석대리
변천 시기/일시 1914년 - 경상남도 동래부 동상면 석대리에서 경상남도 동래군 동래읍 석대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42년 - 경상남도 동래군 동래읍 석대리에서 부산부 동래출장소 석대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57년 - 부산부 동래출장소 석대리에서 부산시 동래구 석대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63년 - 부산시 동래구 석대동에서 부산직할시 동래구 석대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78년 - 부산직할시 동래구 석대동에서 부산직할시 해운대출장소 석대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0년 - 부산직할시 해운대출장소 석대동에서사 부산직할시 해운대구 석대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95년 - 부산직할시 해운대구 석대동에서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석대동으로 개편
자연 마을 하리 마을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송동 하리 마을

[정의]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석대동에 있는 자연 마을.

[명칭 유래]

석대(石臺)[돌대라고도 함)의 아래쪽에 있어 하리(下里) 마을 또는 아랫 마을이라 불렀다. 석대는 추마산 기슭 대리골에서 흘러 온 하천이 석대천과 합류해 석대교[구 석대동사무소 앞]를 지나는 자리에 있는 바위[너럭바위]의 명칭이다.

[형성 및 변천]

하리 마을[석대동]은 영양 천씨(潁陽千氏) 집성촌으로 임진왜란[1592] 때 조선을 구원하러 온 명나라 장수 화산군 충장공 천만리(千萬里) 장군의 후손들이다. 하리 마을 입향조는 병자호란[1636] 때 조선에 귀화한 명군의 후손을 잡아들이라는 명령 때문에 동래 석대로 피난하여 온 천찬석(千贊鉐)으로 알려져 있다. 하리 마을의 동명은 확인되지 않으나, 『동래부지(東萊府誌)』[1740]에 마을이 속한 석대리는 동래부 동면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후 동상면에 속하였다가 1904년 동래부 동상면 석대리가 되었다.

1914년 동래군 동래읍 석대리가 되었으며, 1942년 부산부 동래출장소 석대리가 되었다. 1957년 동래출장소가 동래구로 승격하였다. 1978년 해운대출장소에 편입되었으며, 1980년 해운대출장소가 해운대구로 승격하였다. 이후 1995년 부산직할시가 부산광역시로 승격하면서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석대동 하리 마을이 되어 현재에 이른다.

[자연 환경]

상리 마을의 북쪽에는 운봉산에서부터 이어진 산지가 발달해 있고, 이곳에서 발원한 소하천이 흘러 남쪽의 석대천으로 유입한다. 산지에서 흐르는 소하천 유역과 석대천 유역에는 비교적 넓은 평야가 발달해 있다. 남쪽에는 장산이 마주 보고 있다.

[현황]

하리(下里) 마을은 반송 1동 20통·21통 지역에 속한 자연 마을이다. 마을 남쪽의 석대천변을 따라 국도 제14호선과 부산 도시 철도 4호선이 통과한다. 마을 내에 수령 500년의 이팝나무가 있는 영양 천씨 종택[반송 1동 455번지]이 있으며, 인근 산지에 입향조인 천찬석의 묘소가 자리한다. 마을 중간쯤에 소나무[수령 300여 년으로 당산 할배제를 거행]가 있다. 마을 남쪽 평지에는 석대동 화훼 단지가 조성되어 있어 매년 3~4월이면 꽃 축제가 개최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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