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93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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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海金氏 |
영어의미역 | Gimhae Gimsi|Gimhae Gim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부산광역시 |
집필자 | 주영택 |
[정의]
김수로왕을 시조로 하고, 김보문을 입향조로 하는 부산 지역의 세거 성씨.
[연원]
김해 김씨는 가락계 김씨의 종통으로 가락국의 개조인 김수로왕을 시조로 한다. 김수로왕의 탄생 설화를 보면, 『가락국전지(駕洛國傳誌)』에 “42년 가락국의 9촌장들이 강물의 가장자리에서 놀다가 구지봉(龜旨峰)에 올라 나라를 다스릴 군장(君長)을 얻고자 하늘을 향해 의식을 올리자 하늘에서 한 줄기 붉은 빛이 내려와 달려가 보니 금 상자에 6개의 알이 들어 있었다. 그 가운데 제일 먼저 태어났다고 하여 수로(首露)라고 이름을 짓고 금 상자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성을 김(金)이라 하여 가락국의 왕으로 추대하니, 그가 김해 김씨의 시조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가락국은 오랜 세월이 흐름에 따라 지명도 여러 차례 개칭되었는데, 고려 충선왕 때 김해부가 설치됨에 따라 수로의 후손들이 본관을 김해로 하였다.
김해 김씨의 세계는 수로왕의 13세손 김유신(金庾信)[595~673]을 중시조 대강 148파로 분파되어 그중에서 유신의 직계 종파인 3개 파는 다음과 같다. 고려조의 51세손 김목경(金牧卿)을 중조로 하는 금녕군파(金寧君派), 김목경의 아우인 김익경(金益卿)을 중조로 하는 감무공파(監務公派), 49세손 김관(金管)을 중조로 하는 판도판서공파(版圖判書公派) 등이다. 금녕군파는 그 후손들이 서울에 살았다고 하여 경파(京派), 감무공파는 그 후손에서 김극조(金克祧)·김완(金完)[1577~1635]·김여수(金汝水)[1600~1670]·김세기(金世器) 등이 봉군(封君)되었다 하여 사군파(四君派), 판도판서공파는 김일손(金馹孫)[1464~1498]·김극일(金克一)·김대유(金大有)[1479~1551] 등 세 명현이 나왔다 하여 삼현파(三賢派) 등이라고도 한다.
[입향 경위]
부산에는 주로 삼현파와 감무공파 등이 입향하였다. 그 가운데 부산에 가장 먼저 입향한 것은 감무공파의 일파인 도총관공파(都摠管公派)인 서강(西岡) 김계금(金係錦)을 파조로 하는 서강파이다. 1400년대에 김계금의 아들인 유곡(裕谷) 김보문(金寶文)[1425~1491]이 기장군 철마면 와여리로 입향하였다. 김계금은 1454년(단종 2)에 진사로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 지평을 지냈다. 1455년(단종 3) 수양 대군이 조카인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하자 김계금은 의성 현령의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김해 진영으로 돌아갔다.
[현황]
1934년 조선 총독부에서 발행된 『朝鮮の姓』의 동래군조에는 김해 김씨가 남면 우리에 49호, 남면 중리에 40호, 서면 부전리에 35호, 일광면 문동리에 26호, 일광면 횡계리에 19호, 일광면 용천리에 18호, 일광면 이천리에 38호, 장안면 기룡리에 36호 등이 거주한다고 했다. 1937년 문기주(文錡周)가 편찬한 『동래군지』의 성씨조에는 김해 김씨가 세거(世居) 성씨와 우거(寓居) 성씨로 기록되어 있다.
2000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김해 김씨는 12만 6466가구에 40만 7041명[남 19만 9917명, 여 20만 7124명]이 부산 지역에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현재 김해 김씨는 기장군 일광면 문동리·횡계리·용천리, 장안읍 기룡리·반룡리, 철마면 와여리·임기리, 해운대구 좌동·우동, 금정구 남산동·회동동, 강서구 강동동·녹산동, 수영구 망미동·수영동 등지에서 세거하고 있다.
[관련 유적]
김해 김씨의 재실은 많다. 서강파의 재실은 의열사(義烈祠)[기장군 철마면 와여리]인데, 입향조 김보문과 임진왜란 공신인 김일개(金一介)[1561~1627], 김일덕(金一德)[1562~1602], 김일성(金一誠) 삼형제 등을 모시고 있다. 이외에도 선황사[좌동 좌동 마을], 덕송재[우동 장지 마을], 성지재[회동동 회동 마을] 등의 김해 김씨의 재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