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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0023
한자 樓亭文學
영어의미역 Literature of Tower and Pavilion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근대/개항기
집필자 엄경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869년연표보기 - 「봉래별곡」
특기 사항 시기/일시 1282~1348년 - 적취정에 대해 지은 시
특기 사항 시기/일시 1701~1759년 - 망미루에 대해 지은 시
특기 사항 시기/일시 1679~1759년 - 대변루에 대해 지은 시
특기 사항 시기/일시 1333~1382년 - 겸효대에 대해 지은 시
관련 장소 누정 문학 - 부산광역시 일대

[정의]

고려 후기부터 개항기까지 부산 지역에 있는 누정을 노래한 고전 문학 작품.

[개설]

누정은 풍광이 뛰어난 곳이나 주변의 풍경들을 두루 조망할 수 있는 지대가 높은 곳, 즉 산이나 언덕 등에 세워지며 명승(名勝) 조망, 주거(住居), 추모(追慕), 감시(監視), 수비(守備), 강학(講學), 군사 훈련 등의 다양한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부산은 한반도의 동남 해안을 낀 아름다운 경관과 울산과 양산의 지맥을 모아 뻗어 내린 금정산(金井山), 황령산(荒嶺山), 장산(萇山), 백양산(白楊山), 구봉산(九峯山) 등의 산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낙동강(洛東江) 하구와 온천천(溫泉川), 사천(絲川), 수영천(水營川)의 물줄기가 빚어낸 풍경 또한 빼어나다. 따라서 예로부터 바다와 강, 산을 끼고 경관이 빼어난 누정이 많이 발달하였고, 시인 묵객들은 이 풍광을 놓치지 않고 문학 작품을 창작하였다.

또한, 부산은 오랜 세월 해안 경비와 외교를 담당한 경상좌도 수군절제영(慶尙左道水軍節制營), 왜관(倭館) 등 해안 관방(關防) 및 외교 시설들이 많았다. 이에 따라 관방 시설 및 외교 수단으로서의 누정 또한 매우 많았다. 시인 묵객들은 부산의 지정학적, 외교적 특성을 간직한 이러한 누정에서 임진왜란 등 일본과의 관계에 대해 회고하거나 국방의 중요성에 대해 느낀 바를 기록하거나 읊었다.

[부산의 누정]

현재 많은 누정들은 사라졌으나 가덕도의 연대(烟臺), 사하구 다대동몰운대(沒雲臺), 영도구 동삼동태종대(太宗臺), 남구 용호동이기대(二妓臺), 남구 용당동신선대(神仙臺), 수영구 민락동의 첨이대(覘夷臺), 해운대구 중동해운대(海雲臺), 기장군 기장읍 시랑리시랑대(侍郞臺)는 부산에서 손꼽히는 8대 명소이다.

이외에도 망미정(望美亭)[금강 공원 아래에 있는 본디 동래부 동헌 입구에 있던 정자], 반화루(攀化樓)[동래 향교 입구], 수영정(水營亭)[수영구 광안동], 선덕정(宣德亭)[강서구 미음동], 와룡정(臥龍亭)[강서구 미음동 와룡 마을], 풍화루(風化樓)[기장군 기장읍 교리에 있는 기장 향교 입구] 등이 남아 있다. 특히 일본 통신사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던 영가대(永嘉臺)[동구 좌천동]가 복원되어 자성대(子城臺) 아래에 있다.

[누정을 노래한 작품]

부산에는 다양한 누정이 존재하였던 만큼 현재 많은 누정 문학들이 남아 있다. 작자와 대상 누정을 살펴보면, 작자 미상의 공진루(拱辰樓)에 대한 시 및 학산정(鶴山亭)에 대한 시, 식파루(息波樓)에 대한 시, 김한철(金漢喆)[1701~1759]의 망미루에 대한 시, 정포(鄭誧)[1309~1345]·정추(鄭樞)[1333~1382]·윤훤(尹暄)[1573~1627]·이춘원(李春元)[1571~1634]·이원진(李元鎭)[1594~?] 등의 소하정(蘇嘏亭)에 대한 시, 박내정(朴乃貞)[1664~1735]의 읍승정(揖升亭)에 대한 시, 안축(安軸)[1282~1348]·정포의 적취정(積翠亭)에 대한 시 등이 있다.

또한 이제현(李齊賢)[1287~1367]·유숙(柳淑)[1324~1368]·정추·이숭인(李崇仁)[1347~1392]·한수(韓脩)[1333~1384]·윤훤·이춘원·성진선(成晋善)[1557~?]·이원진 등의 정과정(鄭瓜亭)에 대한 시, 한배주(韓配周)[1657~1712]·이세근(李世瑾)[1664~1735]·박내정·오명신(吳命新)·이형만(李衡萬)[1711∼?]·이유신(李裕身)·오명서(吳命瑞)[1688~1740]·이정신(李正臣)[1660~1727]의 정원루(靖遠樓)에 대한 시, 이복(李馥)[1625~1688]·유수(柳綏)[1678~?]·전성천(全性天)·박사해(朴師海)[1711~?]·이해문(李海文)의 진남정(鎭南亭)에 대한 시, 정추·윤훤·이춘원겸효대(謙孝臺)에 대한 시 등이 있다.

그리고 산문으로는 이경일(李敬一)[1734~1820]의 「반화루기(攀化樓記)」, 백금용(白金湧)의 승가정(勝嘉亭)의 기문인 「잠삽삭청기(岑揷削靑記)」, 최명상(崔命相)의 「우빈정기(耦賓亭記)」, 이중협(李重恊)[1681~?]의 「읍승정기」, 권순성(權順性)의 「장관루기(壯關樓記)」, 정원루의 기문인 신숙주(申叔舟)[147~1475]의 「동래현성문루기(東萊縣城門樓記)」와 한배하(韓配夏)[1650~1722]·한사맹(韓師孟)의 기(記) 등이 있다.

[누정 문학의 유형]

부산을 노래한 고전 문학의 유형을 크게 3가지로 구분하면, 첫째 누정이나 누정에서 바라본 풍경을 읊은 작품, 둘째 관방 시설로서 그 의미를 되새긴 작품, 셋째, 신선과 연계하여 노래한 작품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1. 누정에서의 풍경과 여유를 읊은 작품

1) 정현덕의 「봉래별곡」 중에서

소하정 들어가니 처사는 간데 없고……/ 유선대(遊仙臺) 올라가니 도사는 어데 간고……/ 정원루 하래보니 노교수 어데 옌고……/ 해운대, 몰운대는 승리라 이르니라……/ 영가대 높은 집은 부산 경개 제일이다……/ 자성대 일편석은 만고사적 그 뉘 아리……/ 강선대(降仙臺) 어대매오 신선이 노단 말가……/ 벌목 겨경 찾아가서 태종대 다달으니…….

정현덕(鄭顯德)[1810~1883]이 지은 「봉래별곡(蓬萊別曲)」에는 소하정, 유선대 를 비롯하여 여러 누정들이 언급되고 있다. 「봉래별곡」에서 부산 누정 문학의 대략적인 성격을 알 수 있다.

2) 안축의 「적취정」에 대한 시

벽옥천우밀작위(碧玉千竽密作圍)[벽옥 같은 대나무 빽빽이 둘러 이고]

만공창취적헌지(滿空蒼翠積軒墀)[공중에 가득한 푸른 빛 마루 뜰에 쌓여 있다]

우천유환왕봉평(雨天唯喚王逢平)[비오는 날 뉘가 왕봉의 솜씨를 빌려다가]

관가래요일국기(官暇來饒一局棊)[공무 보는 여기에 바둑이나 한 판 두어보세].

이 시는 적취정에서 바라본 풍경과 작자의 감정을 노래한 작품이다. 안축은 적취정에서 바라본 풍경이 좋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바둑을 잘 두는 친구라도 있으면 청하여 신선의 도를 얻고자 노래하고 있다.

3) 김한철의 「망미루」에 대한 시

봉래루관쇄연운(蓬萊樓觀鎖烟雲)[봉래의 누각 아지랑이 구름에 쌓였고]

조어관인진일문(鳥語關人盡日聞)[새소리 재잘재잘 하루 종일 들리네]

일망동남양공벽(一望東南漾空碧)[동남쪽 바라보니 바다와 하늘 푸르러]

천광수색혼불분(天光水色渾不分)[하늘과 물빛 섞여 나뉘어지지 않았네].

이 시는 망미루에서 바라본 풍경과 작자의 감정을 노래한 작품이다. 김한철은 동헌의 입구에 세워져 있던 망미루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앞이 툭 트이고 강과 산과 바다가 조화를 이뤄 아름답다고 경치를 읊고 있다.

2. 관방 시설과 관련된 작품

* 권상일의 「대변루」에 대한 시

종사위망제(宗社危亡際)[종묘사직 위급하고 망하려 할 때]

군민시석변(軍民矢石邊)[군사와 백성들 전쟁에 휩싸였네]

황조화일자(皇朝和一字)[명나라의 화해라는 글자 한 자에]

동토한천년(東土恨千年)[우리나라 묵은 한은 천년이로다]

창해파공활(滄海波空濶)[큰 바다 물결치고 하늘 넓은데]

부산월독현(釜山月獨懸)[부산의 달은 외로이 떠있네]

불망수양책(不忘修攘策)[국력 갈고닦아 물리칠 계책 잊지 못해]

루하유장선(樓下有藏船)[누각 아래엔 배를 감춰 두었다네].

권상일(權相一)[1679~1759]은 전쟁에 대비해 병선을 관리하던 정자인 식파정에 올라, 옛 임진왜란 때 종묘와 사직이 멸망의 위기에 놓였을 때를 떠올렸다. 나라가 위기에 몰리자 군사들과 백성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싸웠지만 결국 성을 내주고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했던 착잡한 심경을 읊고 있다.

그리고 그토록 나라를 지키려고 피를 흘린 많은 선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철저하게 응징하지도 못한 채, 명나라와 일본 사이에 이루어진 화해 조약 때문에 전쟁을 그만 두어야 했던 옛 일을 떠올리면 착잡함을 넘어서 온 민족의 원통함으로 가슴 속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이 식파정을 세우고 병선을 누각 아래에 둔 것은, 국력을 길러 옛날의 그 원한을 갚기 위한 것이니, 언젠가는 철저히 저 침략자를 쳐부수고야 말 것이라고 작자는 굳게 믿는 마음을 담아냈다.

3. 신선과 연계된 작품

누정이 정서나 김겸효, 소하 등과 같이 인물의 명칭을 따서 지어진 곳이 많은 만큼 이들을 신선화하여 노래한 시들이 대표적이다. 다음의 시는 정추가 김겸효와 관련한 겸효대를 노래한 작품이다.

*정추의 「겸효대」에 대한 시

겸효탁탁이연화(謙孝濯濯以蓮花)[겸효의 깨끗한 모습 연꽃과도 같은데]

흉탄팔황기릉진(胸呑八荒氣凌震)[가슴 속엔 온 누리 삼킬 것 같고 그 기개보다도 높구나]

회수긍선만호읍(回首肯羨萬戶邑)[머리를 돌려서 만호 고을 봉하는 것 부러워하랴]

편편래왕신선가(翩翩來往神仙家)[훨훨 신선의 집으로만 왕래를 하네].

겸효대는 신선 김효대가 놀았던 곳에 세워진 누정인데, 그곳에서 바라본 풍경과 겸효의 삶을 생각하고 새삼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노래하였다.

[의의 및 특성]

부산은 풍광을 중심으로 한 누정 문학이 넉넉히 생산될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 부산 근교는 유배지이기도 하였으니 정서, 정추, 윤선도 등의 인물이 이곳을 거쳐 갔다. 그들이 유배되어 지내던 누정은 후대 시인들에게 중요한 시의 소재가 되었다. 부산은 지정학적으로 일본과의 외교 및 긴장 관계를 위한 관방 시설로서의 누정이 많이 있었다. 이러한 누정에서 창작된 문학 작품은 여타 지역의 그것과 완전히 구별될 수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부산은 일반적인 누정에서의 풍광에 대한 감상은 물론이고, 여타 지역과 구별되는 풍광·유배의 정서·한일 관계의 감정이 함께 어우러지는 누정 문학적 특성을 갖추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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