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310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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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山貯水池 |
이칭/별칭 | 용산제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용호리 36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옥희,조장호 |
준공 시기/일시 | 1932년 8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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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설립지 | 용산저수지 -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용호리 361 |
현 소재지 | 용산저수지 -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용호리 361![]() |
성격 | 저수지 |
면적 | 221만㎡[수혜면적] |
[정의]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용호리에 있는 관개용 저수지.
[개설]
용산저수지는 국가에서 설립 인가를 받아 축조한 진도군 최초의 저수지로, 용산수리조합이 관리 및 운영하였다.
[건립 경위]
용산저수지 건립에 관한 경위가 『조선일보』 1931년 8월 9일 자에 「용산수리조합개관」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기사를 통해 일제 강점기 진도 지역의 간척사업 현황, 용산수리조합 건립 경위, 사업을 주도한 진도 지주 조병수(曺秉洙)와 일본인 복도이랑(福島二郞)의 이력 등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조병수와 복도이랑이 진도읍과 임회면에 대규모 간척지를 조성하고 용산저수지 축조를 위해 용산수리조합을 결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병수는 진도군 제일의 재산가로서 운수 사업과 교육 사업을 한 인물로, 복도이랑은 전라북도 정읍과 전라남도 진도에서 간척지를 조성한 실업가이자 용산수리조합장, 진도우편소장을 역임한 인물로 설명하고 있다.
“본조합은 당지(當地)[그곳] 유지(有志) 조병수[부조합장], 복도이랑[조합장] 양씨의 발기로 소화 3년[1928년] 4월 5일에 동군 임회면 용호리 조병수 씨 댁에서 창립발기회를 개최한 후 이래 4년 동안 그의 창립기성에 물적, 심적으로 활동노력하든바, 금년 2월 10일로서 설립인가가 된 바, 복도이랑 씨[1910년대부터 간척 사업 제일 장구포 지구[200여 정보], 그 후 제이 포산 지구[200여 정보], 제삼 해창 지구[100여 정보]의 간척 사업을 완료하였고, 용산저수지 축조의 총책임자임]가 그의 대표자 조합장이 되었으며 차몽리 구역[이번에 물의 혜택 보는 땅] 총면적 답(畓) 162정보와 전(田) 38정보 계 200정보의 총예산액 22만 233원으로서 경성한강 통11번지 청부인 진내무길의 대리인 전북 정읍 등서정태랑 씨 담당으로 거(去) 5월 14일에 기공하였다는데 그 후 공사의 과정은 아무 지장이 없이 착착 잘 진행 중이라 한다. 사업가 조병수 씨는 군내 제일위의 재산가로서 일찍이 지방 개발사업에 많은 포부와 공적이 있는바 군내에 있어서는 이익도 없이 희생적으로 진도자동차부를 경영하여서 군내 각 선로 교통 편의를 주고 또는 완전한 제이세(第二世) 인간을 양성하기 위하여 많은 금전을 희생하셔서 현 진도유치원을 설립하고 우리의 장래 일꾼의 많은 어린이를 보육하는데 그의 만반설비와 보육과정의 성적이 양호하다. 그리고 목포에 있어서는 선남(鮮南)상회라는 기관으로서 남해 다도 각 연안의 교통사업을 경영하는데 제일, 제이, 제삼, 제사의 용해환(龍海丸) 발동기선을 두고 남으로는 멀리 제주도 해안과 동으로는 보성 해협까지 많은 하객(荷客) 교통의 편의를 준다는 바 불원간(不遠間)에 동해선로에 있어서는 여수 부산까지 통항(通航)하리라는데 씨의 사업 장래에 있어서 공적 사적 많은 공헌과 성공있으리라고 일선은 기대하는 바이다. 실업가 복도이랑씨는 일본 웅본현의 본적으로 거금 22년 전에 조선에 건너와서 조선 미곡의 본점인 전북 정읍 방관에서 토지실책을 경영함. 그 후 거금 17년 전에 진도에 들어와서 간척지 개척 사업에 제1은 진도군 임회면 장구포 200여 정보, 진도면 포산리 간척지 200여 정보와 동읍내만의 간척지 100여 정보를 개척한바, 동 3개소의 농장에서 수입하는 소작료가 1,800여 석, 진도우편소장 역임, 현 진도 용산수리조합장이다.
[변천]
용산저수지를 축조하고 10년 후인 1941년에 조합원들이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준공 기념비가 임회면 용호리 산95-3번지에 있다. 1996년 4~12월까지 한국농어촌공사에서 저수지 준설 공사를 하였다.
[구성]
용산저수지의 제방 길이는 137m, 제방 높이는 14.8m이다. 총저수량은 989만㎥이며 수혜면적은 221만㎡이다.
[용산저수지 기념비]
용산저수지 기념비의 비신(碑身)은 육각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념비는 전면을 기준으로 우측은 기념비를 세운 일자, 좌측은 비문을 새겼다. 기념비 받침대 사각형 돌에는 전면은 개요, 우측은 현 임원 명단, 좌측은 건립 당시 임원 명단이 새겨져 있다.
1. 전면
力農報國[힘을 다해 농사지어 국가에 보답함]
全羅南道知事 武永憲樹(전라남도지사 다케나가 가즈키)
2. 전면 아래
組合設立-昭和 六年 三月[1931年], 工費總高-拾七萬圓, 蒙利地區-百九十七町, 工事監督-川崎忠景, 曺秉祚, 請負者-陳內組, 工事竣工-昭和 七年 八月[1932年], 組合員-百五十四名.[조합은 1931년에 설립되었으며, 공사비는 17만 원이다. 몽리구역은 197정이다. 가와사키 다다케와 조병조가 공사 감독을 맡았고, 진내조가 현장소장을 맡았다. 1932년 8월에 준공되었으며 조합원은 154명이다.]
3. 오른쪽 면
建之紀元 二千六百一年三月[1941年 3月] 龍山水利組合[건립 연대는 1941년 3월이다. 용산수리조합]
4. 오른쪽 면 아래
組合長-福島二郞, 副組合長-曺秉洙, 書記-金基洙, 平議員-河大賢,曺學祿,朴義培,曺秉俊,曺秉喆,朝鮮興業會社. 現職員[1941年][조합장: 복도이랑, 부조합장: 조병수, 서기: 김기수, 평의원: 하대현, 조학록, 박의배, 조병준, 조병철, 조선흥업회사. 현 임원]
5. 왼쪽 면
龍山堤ノ完成以來區內ハ年々豊穰ラ重ネ住民ノ生活ハ安定向上シ非常時國家食糧難ニ際シ又聯力ノ功獻ラナセリ是本堤ノ恩惠也而シテ今組合ハ設立滿十週年ラ迎ヘ其基礎愈々堅シ仍テ組合員一同歡喜感激ニ愖ヘズ玆ニ碑ラ建テ之ラ紀念ス[용산제가 완성된 이래로 구역에 해당된 논은 해마다 풍작이 거듭되어 주민 생활은 안정적으로 향상되었고, 비상시에 국가의 식량이 어려울 즈음에 또 힘을 합친 공로였으니, 이는 본 제방의 혜택이다. 이제 조합을 설립하고 10주년을 맞아, 그 기초가 더욱 견고하여 거듭 조합원 일동은 환희와 감격에 진정한 마음으로 여기에 비를 세워 기념하다.]
6. 왼쪽 면 아래
組合長-福島二郞, 副組合長-曺秉洙, 書記-河 三 弘, 平議員-朴義培,曺秉喆, 河千洪, 朴永萬, 金尙烈, 曺馨煥. 初代職員[1931年][조합장: 복도이랑, 부조합장: 조병수, 서기: 하삼홍, 평의: 박의배, 조병철, 하천홍, 박영만, 김상열, 조형환. 초대 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