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31082 |
---|---|
한자 | 海倉-堂 |
영어공식명칭 | HeachangGaksidang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유적/민간 신앙 유적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해창리 1001-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주언 |
현 소재지 | 해창각시당 -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해창리 1001-1![]() |
---|---|
성격 | 제당 |
소유자 | 진도읍 해창리 |
관리자 | 해창리 이장 |
문화재 지정 번호 | 진도군 향토유형유산 |
[정의]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해창리에서 음력 1월 14일 밤 당각시 제사를 지내는 당집.
[개설]
해창리는 진도읍에서 서쪽으로 난 뱃길 수로 변에 군 창고가 세워지면서 번성한 마을이다. 이 항구에는 많은 배가 출입하여 정월 대보름에 마을 제사로 모시는 거리제와 함께 안전 항해와 풍어를 기원하는 뱃서낭 고사를 당집에서 지냈다. 신체로 서낭각시를 안치하고 당제를 모시는데, 평시에도 찾아와 당각시에게 수시로 소원을 빌기도 한다.
해창각시당은 원래 보호수로 지정된 이팝나무 거목이 있는 숲속에서 바다를 가까이 내려다보고 있었으나 간척사업 후에는 주변이 농지가 되면서 들녁을 마주하고 있다. 당각시 제사에는 거리제와는 별도로 여자 제관이 선임되고 거리제보다 앞서 밤 10시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위치]
[의례]
음력 1월 14일이면 마을 청년회를 중심으로 주민들이 오전 일찍부터 마을 안길 청소를 시작한다. 마을 입구의 샘물을 모두 퍼내고 깨끗한 새 물을 받아 이 물로 젯밥과 국, 음식을 장만한다. 거리제 제청은 샘가에 지으며, 돼지를 잡아서 주위 도로변에 피와 황토를 뿌려 잡귀와 액을 막는다. 엄선한 제관과 두 명의 임사가 밤 11시 30분이 지나 제상을 차려서 절을 올리고 독축을 한 뒤 철상한다. 마을회관으로 옮긴 음식으로 다음 날 마을잔치를 한다. 제관은 부정을 타면 안 되기 때문에, 제관으로 뽑힌 후에 길을 가다가 죽은 쥐를 보았거나 집에 임신한 딸이 오면 다시 뽑는다.
당제사는 이에 앞서 밤 10시에 엄선한 여자 제관 1명과 임사 1명이 지낸다. 음식은 제관이 자신의 집에서 장만하며 대문에 금줄을 쳐서 부정을 안 타게 타인의 출입을 막는다. 전에는 생기복덕을 가려 제관을 뽑았으나 수년 전부터는 마을 입구에 자리한 집의 여성부터 순서대로 제관을 맡는다.
예전에는 나무로 당각시를 만들어 모셨으나, 평소 소원을 비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 기도를 하면서 세수를 시키거나 목욕을 시키기 때문에 금방 썩어서 석조 신상으로 바꾸었다.
[현황]
해창리에서는 지금까지 거리제와 당제사를 함께 지냈는데 2025년부터는 당제사만 지내기로 마을 사람들이 합의하였다. 그러나 다른 마을들처럼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거리제를 지낼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해창각시당은 2012년 2월 29일 진도군의 향토문화유산 유형유산 제22호로 지정되었다가 2024년 5월 17일 관련 조례에 따라 진도군 향토유형유산으로 변경되었다.
[의의와 평가]
해창리의 해창각시당과 진도군 임회면 굴포리 할머니당, 진도군 조도면의 가사도 할머니 당나무 등에서 모시는 신들은, 진도군 고군면 금계리 회동마을에서 지내는 영등제의 주신인 영등할머니[영등신]의 하위 신으로 모셔지는 여신들이다. 영등신이 바다를 대하는 다수 어민들의 항해와 어로의 안전을 기원한다면 여신들은 각 마을 단위에 소속된 각각의 배들을 지켜 주는 서낭신 역할이 더 강했다고 볼 수 있다. 옛날에는 배마다 뱃서낭을 행했는데 일본의 해안가 지역에서는 지금도 뱃서낭을 행하는 편이다.
해창리는 진도의 관창이 설치되어 많은 배가 드나들었던 항구 지역으로, 간조 시 큰 수로와 연결되는 작은 수로를 준설하여 배들을 정박시켰으며, 연안에 통나무 벽을 설치하여 수심을 유지시켰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