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310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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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冶鐵場 |
영어공식명칭 | Yachuljang |
이칭/별칭 | 대장쟁이,성양쟁이,한영섭,십일시 대장간,원당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주언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2년 2월 2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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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5월 17일 - 야철장 진도군 향토문화유산 무형유산 제3호에서 진도군 향토무형유산으로 변경 |
십일시 대장간 -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십일시길 23-3[석교리 24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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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번호 | 진도군 향토무형유산 |
[정의]
전라남도 진도 지역에서 쇠로 각종 농기구를 만드는 장인.
[진도 성냥간]
진도 지역에서는 대장간을 성냥간이라고 하고 대장쟁이를 성냥쟁이 「야철장」라고 부른다. 성냥간에서는 쇠를 녹이거나 변형시켜 농기구와 어구를 만드는데, 이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불과 불을 일구는 풀무와 강도를 조절하는 물이다. 진도 지역의 성냥쟁이들은 이러한 시설을 자기 집 안에 두고 작업을 하였다. 서양에서는 산업혁명기 농기구의 철제화에 따른 직업을 독점한 사람들을 야철장 혹은 대장쟁이라고 불렀다.
과거 진도에서 성냥간 주인들은 거래처 농민들과 특별한 단골 관계를 맺고, 새 농기구는 돈을 받고 팔지만 간단한 수리는 무료로 해 주면서 1년에 한 번 ‘원당’이라는 식량을 받아 갔다. 대부분의 성냥간 주인들은 자기의 관할구역을 독점적인 마을 단위로 소유하였으며, 이러한 양자 관계는 다른 대장간이 침범할 수 없는 불문율로 유지되어 왔다. 이런 관계는 세습무들의 형태와도 같은데, 단골판이라는 종교적 독점 구역에서 단골은 공식적인 굿은 상호 협의하여 돈을 받으나, 간단한 비손은 무료로 해 주면서 1년에 한 번 ‘도부’라고 하는 식량을 받아 간 것이다. 광복 직후 진도 전역에는 40여 곳의 성냥간이 있었다고 한다.
야철장은 2012년 2월 29일 진도군의 향토문화유산 무형유산 제3호로 지정되었으며, 기능보유자로 진도군 임회면 십일시길 23-3[석교리 249-1]에서 십일시 대장간을 운영하는 한영섭이 지정되었다. 야철장은 2024년 5월 17일 관련 조례에 따라 진도군 향토무형유산으로 변경되었다.
[진도군 향토무형유산 야철장 기능보유자 한영섭]
한영섭은 1949년 진도군 임회면 봉상리 송정마을에서 태어났다. 두 살 때 대장업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임회면 석교리 십일시 장터로 이사를 왔다. 십일시 장터는 열흘 만에 열리는 장터를 말한다. 영업장을 장터로 옮긴 셈이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아버지를 도와 야철 일을 시작하였는데, 한영섭이 일을 시작하고 9년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대장간을 물려받았다. 할아버지 대부터 대장간을 하였으니 3대째 가업을 이어 가는 것이다. 이후 한영섭은 호미, 낫, 삽, 갈퀴 , 괭이 등 농기구와 조세, 갈괭이 등 어구, 그리고 경첩, 지도리, 춘새못, 대패, 끌, 큰자귀, 대패까지 다 만들고 있다. 요즘은 공장에서 나오는 대량생산물이 시장을 점유한 편인데 그래도 멋을 아는 사람들은 한영섭의 제품을 고집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