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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동 농악과 지신밟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6019
한자 東仁洞 農樂- 地神-
영어공식명칭 Dongin-dong Jisinbapgi|Farmers’ Performance and Ritual for the God of the Earth in Dongin-dong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놀이/놀이
지역 대구광역시 중구 동인동1가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심도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놀이 장소 동인동 - 대구광역시 중구 동인동 지도보기
성격 민속놀이
노는 시기 정월 초

[정의]

대구광역시 중구 동인동에서 해마다 정월 초에 행하는 민속놀이.

[연원]

과거 대구광역시 중구 동인동 지역에서 해마다 정월 초가 되면 행하던 민속놀이인 동인동 농악과 지신밟기는 그 유래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동인동이 예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하던 지역이었고 인구의 이동도 심한 상가 지역이라서, 지역의 사정을 잘 아는 토박이들을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1987년 대구직할시가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동인1가동동인2가동에는 경로당이나 노인회가 없었지만, 주거지역인 동인3가동동인4가동에서는 노인회가 있었고 이 동네들은 노인회가 중심이 되어 정초에 농악과 지신밟기를 연행하였다고 한다.

[놀이 도구 및 장소]

동인동 농악과 지신밟기는 풍물패가 동네에서 보유한 풍물 악기로 연주하면서 집집마다 지신밟기를 하였다. 연행자의 구성는 동인3가동동인4가동이 서로 차이가 조금 있지만 대체로 매구[꽹과리], 징, 북, 장구, 소북, 채복, 상모, 고깔, 기 등이다. 동인4가동은 양반과 포수가 있었던 반면에, 동인3가동은 없었다고 한다.

[놀이 방법]

동인동 농악과 지신밟기는 정초에 동인3가동동인4가동에서 연행하였다. 동인3가동은 정월 초사흗날부터 사흘 정도를 지신밟기를 하면서 풍물을 친다. 놀이의 구성원은 같은 동민들로 이루어지고 상쇠인 김상도[남, 1987년 당시 63세]가 선소리를 하면서 풍물패를 이끌었다. 동인4가동은 상쇠가 없어서 외부에서 초청하기도 하였다. 주로 경상북도 경산 지역 등에서 일당을 주고 상쇠를 데려왔는데, 이들은 자신의 채복과 쇠, 상모 등을 갖고 와서 놀아 주었다. 동인동 농악과 지신밟기는 다른 동네와 비슷하게 연행하였지만, 지신밟기의 사설을 아는 사람은 없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동인동 농악과 지신밟기는 노인회를 중심으로 연행되었다. 동인동에서는 마을 제사를 지내지 않았기 때문에 제의의 성격이 약하고 놀이의 성격이 강하였다. 동인동 농악과 지신밟기는 집집마다 잡귀를 쫓아내고 가정의 안녕과 즐거운 새해를 맞기 위한 놀이이며, 마을 기금을 모으는 걸립 형태의 농악이다. 동인4가동처럼 상쇠를 외부에서 초청할 경우, 상쇠가 풍물을 잘 치고 사람들의 흥을 잘 돋울수록 걸립이 잘 이루어졌다. 마을 사람들이 형편에 따라 걸립한 돈은 노인회 기금이나 마을 필요 경비로 썼다.

[현황]

동인동 농악과 지신밟기는 농악을 위한 농악계나 특별한 조직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주로 경로당의 회원들을 중심으로 행하여졌다. 1960년대 해도 동인동에 풍물계가 있었는데, 그 규모가 크고 지신밟기도 잘하였다고 한다. 당시의 풍물패는 근처에 있는 향촌동약전골목까지 지신을 밟아 주고 걸립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1987년 대구직할시가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풍물계나 농악계에서 행하는 체계 있는 풍물놀이는 전승되는 것이 없었다고 한다. 현재는 마을의 도시화와 함께 동인동 농악과 지신밟기의 주체인 노인들도 고령화 되면서 노인회 주도의 놀이도 전승되지 않고 맥이 끊겼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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