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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동 구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6017
한자 大泉洞 求乞
영어공식명칭 Daecheon-dong Gugeol
이칭/별칭 대천동 지신밟기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놀이/놀이
지역 대구광역시 달서구 대천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심도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멸 시기/일시 1973년연표보기 - 대천동 구걸 중단
놀이 장소 대천동 - 대구광역시 달서구 대천동 지도보기
성격 민속놀이|세시놀이
노는 시기 정월대보름

[정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대천동에서 정월대보름 무렵에 행하는 민속놀이.

[개설]

대구광역시 달서구 대천동에서는 해마다 정월 14일 밤에 동제를 지낸 후에 대보름이 되면 마을 사람들이 제사 음식을 나누어 먹고 마을 회의를 한다. 회의를 마치고 나면 본격적으로 풍물을 치면서 집집마다 방문하여 액을 물리치고 복을 기원하는 지신밟기를 행하였다. 이렇게 대천동에서 행하여지는 지신밟기대천동 구걸이라 하는데, 대구광역시에서는 ‘지신밟기’를 ‘구걸’이라 하기 때문이다.

[연원]

대천동 구걸은 마을의 지신을 위로하고 악귀를 몰아내며 선신(善神)을 불러들이는 굿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놀이 도구 및 장소]

대천동 구걸 연행자의 편성과 복색은 다음과 같다. 매구[꽹과리] 2명, 북 2명, 징 2명, 장구 2명, 소북 5~6명, 양반 1명, 색시 1명, 포수 1명으로 구성된다. 이때 매구와 징, 북, 장구, 소북은 복색에 차이가 없이 전부 흰 꼬깔을 쓰고 흰옷을 입었으며, 모두 양어깨와 허리에 각각 청, 홍, 황색의 띠를 두르고 운동화를 신는다. 잡색인 양반과 색시, 포수는 각각의 특징에 맞는 복색을 하였다. 대천동 구걸은 풍물패가 행렬을 이루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지신을 밟아 주고 걸립을 하였다.

[놀이 방법]

대천동 구걸은 풍물패가 풍물을 치면서 문굿을 하고, 집에 들어가서 대청에 올라 성주풀이를 한다. 성주풀이를 하고 나서는 조왕풀이, 장고방, 샘, 디딜방아풀이 등의 순서로 연행한다. 사설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쥔네 쥔네 문 여소, 나그네 손님 드갑니다. 오호이로 지신호, 성주 제신아 지신노. 성주본이 어디며, 경상도 안동 땅, 제비원에 솔씨 받아, 육모산천에 던졌더니 그 솔이 점점 자라나 소목이 되었네. 소목이 자라나 대목이 되었네, 대목이 자라나 이 집 재목이 되었네. ……” 구걸의 사설이 풀이 순서에 따라 연행되다가 마지막에는 “둘이 찧는 가래 방해, 하루아침에 천석 만석, 백옥 같은 흰쌀이야, 잡구 잡신은 물알로, 만복은 이 집으로”라고 하면서 마무리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대천동 구걸을 비롯한 지신밟기는 집 안의 곳곳마다 신이 있어서 그 집을 보살펴 주는 것이라 믿고, 정초에 집 안의 신들에게 의례를 올리는 민간신앙을 바탕에 두고 있다. 풍물패가 마을의 집집을 돌며 지신을 위로하는 한바탕 풀이를 하고 놀면, 집주인은 풍물패에게 술과 돈·곡식 등을 내어 주었다. 이때 풍물패가 모은 기금은 다시 마을의 공동기금으로 쓰였다. 해마다 정초에 행하여진 대천동 구걸은 마을의 번영과 가정의 안녕을 기원하는 전통적인 세시풍속을 잘 계승하였다고 할 수 있다.

[현황]

대천동 구걸은 1972년까지 해마다 연행되었으나 현재는 중단된 상태이다. 대천동 구걸의 전통이 사라진 이유는 마을이 도시화되고 마을 구성원들도 다른 곳으로 이주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마을에서 동제를 지내거나 지신밟기를 연행할 주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대천동 구걸은 마을의 동제가 사라지면서 같이 쇠퇴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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