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633
한자 朴南俊
영어공식명칭 Park Namjun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대구광역시 중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2년연표보기 - 박남준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19년 - 박남준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4학년 재학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0일 - 박남준 대구 동문시장 만세 시위 참여
출생지 정상리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정상리
학교|수학지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 지도보기
활동지 대구 - 대구광역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박남준(朴南俊)[1892~?]은 1892년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정상리에서 태어났다.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3월 10일 동문시장에서 열린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활동 사항]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대구에서도 계성학교·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신명여자고등보통학교·대구 성경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3월 8일 서문시장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은 3월 9일에 학교와 서문시장 인근의 달성공원에서 2차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였으나 시위 계획이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무산되었다. 이에 박남준계성학교 학생들 및 김윤덕(金潤德)·김재병(金在炳) 등과 협의하여 3월 10일 덕산정[현 중구 덕산동 일대] 동문시장에서 2차 만세 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박남준 등은 3월 10일 오후 4시 30분 무렵 장꾼으로 가장한 채 동문시장에서 태극기를 꺼내 들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100여 명의 시위 군중이 박남준 등 시위 주동자들을 따라 열을 지어 행진하려 하자 대구경찰서 소속 일제 경찰이 출동하여 폭력적으로 시위대를 해산하였다.

이때 박남준은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1919년 4월 1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월형을 언도받았고, 5월 3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되어 출감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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