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045
한자 中區- 文化遺産
영어공식명칭 Cultural Heritages in Jung-gu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중구
시대 선사/선사,고대/고대,고려/고려,조선/조선,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배성혁

[정의]

대구광역시 중구의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 주요한 문화유산.

[개설]

중구에는 국가 지정 문화재인 보물 1건, 사적 5건, 대구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17건, 무형문화재 2건, 기념물 1건, 문화재자료 4건과 국가등록문화재 5건 등 모두 35건의 지정문화재가 있다. 비지정문화재로는 청동기시대의 분묘와 취락, 삼국시대 달성, 조선시대 대구읍성, 경상감영 관련 건물 등이 있으며, 일제강점기의 각종 교육시설과 개신교와 천주교와 관련된 종교 건물들이 잘 남아 있다. 한편, 보물 제516호인 대구 무술명오작비중구 대안동에서 발견되었으나 현재 경북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고 있어 북구의 문화재로 편입되어 있다.

한편,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등록문화재 및 지정문화재의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국가지정문화재]

1. 보물

전 윤효전 초상[보물 제1502호, 2006. 12. 29. 지정]: 윤효전[1563~1619]은 본관이 남원(南原), 자가 영초(永初), 호가 기천(沂川)으로 1605년 문과에 급제하고 1612년 익사공신(翼社功臣) 1등에 녹훈되었으나 인조반정[1623]으로 삭훈되었다. 1629년 아들 윤휴의 상소로 복관된 뒤 영의정에 추증되었을 때 이를 기념하여 그린 도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2. 사적

대구 달성[사적 제62호, 1963. 1. 21. 지정]: 달성은 신라가 대구 지역을 통치하기 위해 중심부에 쌓은 군사 및 공해시설로 처음에는 토성의 형태로 쌓았다가 5세기 이후 석축을 부가하여 토석혼축성을 완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초축은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 제2권 첨해이사금 15년(261) 2월에 달벌성(達伐城)이란 이름으로 축성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이후 1469년에 편찬된 『경상도속찬지리지』에는 고려 공양왕 2년(1390)에 개축한 기사가 있으며, 조선 선조 29년(1596)에 석축을 더하고 경상감영을 달성 내에 두고서, 이듬해 정유재란으로 파괴되어 안동도호부로 옮길 때까지 활용하였다는 기록이 확인된다. 이러한 문헌 기록과 달성 및 인접한 달성고분군의 조사 자료를 통하여 보면 3~4세기 대 축조된 이른 시기의 성곽임은 분명하다.

대구 경상감영지[사적 제538호, 2017. 4. 26. 지정]: 경상감영은 조선의 지방통치를 담당하던 8도제가 확립된 아래 경상도를 관할하던 감영으로 경상도를 다스리던 관찰사가 거처하던 곳이었다. 조선 초 경상도의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다가 임진왜란이 끝난 1601년(선조 34) 대구부경상감영이 설치되면서 정착되며, 갑오개혁으로 8도제가 폐지될 때까지 자리를 유지하였다. 당시 감영 건물은 관찰사가 집무를 보는 선화당과 살림집으로 쓰던 징청각만 남아 있다.

대구 계산동성당[사적 제290호, 1981. 9. 25. 지정]: 1886년 김보록[Achille Paul Robert] 신부가 1897년 현재 계산동 성당 자리에 있던 초가집을 임시 성당으로 사용하다가 1899년에 한식 목조 십자형의 성당을 지었으나, 다음 해에 화재로 소실된 후 1902년에 현재의 성당을 지었다. 당시 대구에서는 처음 세워진 서양식 건물로서 고딕양식이 가미된 로마네스크 양식이며, 입구에 두 개의 종각이 우뚝 솟아 있다. 대구 지방에서 유일한 1900년대 성당 건축물이다.

구 대구의학전문학교 본관[사적 제442호, 2003. 1. 28. 지정]: 경북대학교의 의과대학 본관이다. 1933년 대구 지역 의료인 양성을 위하여 공립 대구의학전문학교로 개교되었다. 3층의 붉은벽돌[조적조] 건물로 남향이며, 정면 중앙부에는 4층으로 된 사각탑을 두고 옥상에는 옥탑을 설치하였다.

구 도립대구병원[사적 제443호, 2003. 1. 28. 지정]: 경북대학교 의과대학병원 본관이다. 1928년 도립 대구의원으로 지은 2층의 붉은벽돌 건물이다. 한국 근대 병원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건물로 일부 철거되거나 증축된 부분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국가등록문화재]

구 대구사범학교 본관과 강당[국가등록문화재 제5호, 2002. 2. 28. 지정]: 1922년 조선총독부가 제정한 사범학교 규정에 의거하여 1923년 초등교원 양성학교인 경상북도 공립사범학교를 대구에 설치하였다. 이때 지은 건물로 본관은 1923년, 강당은 1925년 축조되었다. 이후 1929년에 관립대구사범학교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대구 동산병원 구관[국가등록문화재 제15호, 2002. 5. 31. 지정]: 동산병원은 대구 최초의 서양의학병원인 제중원을 전신으로 하여 1931년 선교사 플레처가 건립하였다. 태평양전쟁 때는 일본군들이 경찰병원으로, 한국전쟁 때는 국립경찰병원 대구분원으로 사용하였다.

대구화교협회[국가등록문화재 제252호, 2006. 6. 19. 지정]: 대구의 부호인 서병국의 주택으로 1929년 건립되었다. 대구의 대표적인 근대 건축물로 현재 대구화교협회로 사용하고 있다.

대구 구 교남 YMCA 회관[국가등록문화재 제570호, 2013. 10. 29. 지정]: 1914년에 건립된 2층의 붉은벽돌 건물이다. 3·1운동 당시 주요 지도자들의 회합 공간이었으며, 물산장려운동, 기독교농촌운동, 신간회운동 등 민족운동의 거점 공간으로서 사용된 역사적 장소이다.

대구 삼덕초등학교 구 관사[국가등록문화재 제581호, 2013. 12. 20. 지정]: 1939년 대구덕산공립심상소학교 교장 관사로 건축된 목조건축물이며, 외관을 비늘판 붙임으로 하는 등 일본식 주거건축의 특징을 잘 갖추고 있다. 근대 대구에 건립된 교육 관련 시설 가운데 소수 남아 있는 관사 건물로서 가치가 있다.

대구 동인초등학교 강당[국가등록문화재 제798호, 2020. 11. 6. 지정]: 1935~1937년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이다. 강당 건물로서의 필요한 층고 확보를 위하여 만사드지붕을 채용하는 등 근대의 발전된 건축적 수법을 잘 보여 주는 대구 구도심의 오래된 학교 시설이다.

[대구광역시 지정문화재]

1. 유형문화재[조선시대]

선화당[유형문화재 제1호, 1982. 3. 4. 지정]: 경상도관찰사가 집무를 보던 건물로 원래 안동에 있던 것을 조선 1601년(선조 34)에 김신원이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그 뒤 세차례의 화재로 소실된 후 1807년(순조 7)에 경상도관찰사 윤광안이 다시 지은 것이다. 그 후 경상북도 도청으로 사용되다가 1966년 도청이 옮겨진 후 1970년 중앙공원[현 경상감영공원]을 만들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고치게 되었다.

징청각[유형문화재 제2호, 1982. 3. 4. 지정]: 경상도관찰사가 살림채로 쓰던 건물로 선화당과 같이 세 차례나 화재를 입었는데 지금의 건물은 1807년(순조 7) 경상도관찰사 윤광안이 중건하였다. 1970년 중앙공원 조성 시 원형을 찾아 옛 모습대로 보수하였다.

금보[유형문화재 제64호, 2012.01.30 지정) : 백호 윤휴(尹鑴)[1617~1680]의 후손가에 전하여진 것이며,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되며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윤희손초상[유형문화재 제65호, 2012. 1. 30. 지정]: 윤희손(尹喜孫)[1547~1579]의 본관은 남원으로 사후에 아들인 윤효선(尹孝先)[1563~1619]에 의하여 초상이 제작되었다.

태을산분정아국주군분야도[유형문화재 제66호, 2013. 10. 30. 지정]: 이기정(李基晶)이 1850년 작성한 천문도로 내용은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28수와 관련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분야도를 표기한 천문자료로서 중요한 학술적 가치가 있다.

2. 유형문화재[근대/일제강점기]

선교사스윗즈주택[유형문화재 제24호, 1989. 6. 15. 지정]: 1906년부터 1910년경에 건축된 사택으로 스윗즈 부인을 비롯하여 계성학교 4대 교장인 헨더슨, 계명대학교 초대학장인 캠벨 등의 선교사들이 거주하였다. 1981년 1981년 계명대학교 동산병원에서 인수하여 현재 선교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선교사챔니스주택[유형문화재 제25호, 1989. 6. 15. 지정]: 선교사 라이너(Reiner)가 살던 집으로 1910년경 지어진 것으로 보이며 이후 챔니스(Chamness) 등 선교사의 사택으로 사용되었다. 1981년 계명대학교 동산병원에서 인수하여 현재 의료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선교사블레어주택[유형문화재 제26호, 1989. 6. 15. 지정]: 선교사인 블레어(Blair)와 라이스(Rice)가 살던 집으로 1910년경에 지어진 건물이다. 1981년 계명대학교 동산병원에서 인수하여 교육·역사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대구제일교회[유형문화재 제30호, 1992. 1. 7. 지정]: 1895년(고종 32) 부산의 북장로교 선교본부가 대구로 옮겨지고, 1898년(광무 2)에 기와집 4동을 교회당으로 사용하였다. 이후 1908년에 재래양식과 서구 건축양식을 합한 새로운 교회당을 지었으며, 1933년에 교회당을 새로 짓고 ‘제일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후 1937년 초에는 높이 33m의 종탑이 세워졌다.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건물이다.

성모당[유형문화재 제29호, 1990. 12. 15. 지정]: 대구 천주교회 1대 교구장이었던 안세화[Florian Demange] 주교가 프랑스의 루르드 성모굴을 본 따 만든 성당으로 1918년에 건축되었다.

샬트르성바오로수녀원성당[유형문화재 제43호, 2003. 4. 30. 지정]: 1927년 초대 천주교대교구장인 안세화 주교가 샬트르성바오로수녀원 코미넷관 우측면의 아케이드에서 북쪽으로 이어 증축한 성당 건물이다.

남산초등학교 강당[유형문화재 제44호, 2003. 4. 30. 지정]: 1936년에 지은 대구 남산정공립보통학교의 강당 건물로 현재까지 당시의 건물 유형과 특징이 잘 유지되고 있다.

계성학교아담스관[유형문화재 제45호, 2003. 4. 30. 지정]: 대구 최초의 선교사인 아담스(Adams)가 미국 선교부로부터 건축비를 지원받아 1908년에 건립한 영남 최초의 양옥(洋屋) 교사(校舍)이다.

계성학교 맥퍼슨관[유형문화재 제46호, 2003. 4. 30. 지정]: 계성학교 제2대 교장이었던 라이너(Reiner) 선교사가 미국에 있던 맥퍼슨(McPherson)에게 자금 지원을 받아 1913년 9월에 건립한 건물이다.

계성학교핸더슨관[유형문화재 제47호, 2003. 4. 30. 지정]: 계성학교 제4대 교장이었던 핸더슨블레어 선교사가 미국에서 염출한 자금으로 1931년 건립한 건물이다.

구대구상업학교본관[유형문화재 제48호, 2003. 4. 30. 지정]: 1923년 구 대구공립상업학교의 본관으로 건축된 붉은벽돌 2층 건물로 당시의 건축적 상황과 서양건축의 유입 과정을 잘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한국산업은행대구지점[유형문화재 제49호, 2003. 4. 30. 지정]: 1932년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으로 건립되었으며 1954년부터 한국산업은행 대구지점으로 이용되었다. 경상감영공원 내에 위치하며, 대구광역시가 2008년 대구도시공사로부터 기증받아 2011년부터 대구근대역사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3. 무형문화재

단청장[무형문화재 제14호, 1999. 1. 9. 지정]: 단청은 불교미술의 한 분야이자 전통적인 공예기술로서 조정우가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어 맥을 이어 가고 있다.

수건춤[무형문화재 제18호, 2015. 5. 11. 지정]: 하규일-정소산-백년욱의 전승 계보로 194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대구 무용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던 정소산의 춤 원형이 보존된 입춤 형식의 작품이다. 현재 보유자로 인정된 백년욱이 전승하고 있다.

4. 기념물

건들바위[기념물 제2호, 1982. 6. 29. 지정]: ‘건들바위’라는 이름의 유래는 잘 알 수 없지만 바위 모양이 ‘갓 쓴 노인’ 같다고 하여 ‘삿갓바위’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200년 전에는 바위 앞으로 맑고 깊은 냇물이 흘러 서거정이 노래한 대구10경 중 입암조어(笠巖釣魚)의 장소로도 잘 알려져 있다.

라. 문화재자료

대구향교대성전[문화재자료 제1호, 1982. 3. 4. 지정]: 대구향교는 1398년(태조 7) 교동에 처음 건립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전소된 것을 1599년(선조 32)에 달성공원에 재건하였다. 이후 1605년(선조 38)에 다시 교동으로 이건하였으며 1932년에 지금의 위치로 오면서 대성전도 함께 옮겨졌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10철(十哲), 송조 6현(宋朝六賢), 한국 18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관풍루[문화재자료 제3호, 1982. 3. 4. 지정]: 경상감영의 정문으로 1601년(선조 34)에 건축된 정면 2칸, 측면 2칸의 중층누각 겹처마 팔작지붕건물이다. 현재 달성공원 북쪽에 옮겨 세워져 있는데 1906년 관찰사 박중양대구읍성 철거할 때 건물만 옮긴 것이다.

성유스티노신학교[문화재자료 제23호, 1990. 12. 15. 지정]: 대구 천주교회 초대 교구장이었던 안세화 주교가 1913년에 착공하여 1914년에 완공한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에 가까운 서구식 건물이다. 1946년 대건학교에 인수되었고 1991년에는 가톨릭신학대학에 편입되었다.

샬트르성바오르수녀원 코미넷관[문화재자료 제24호, 1990. 12. 15. 지정]: 1915년 대구 천주교회 초대 교구장이었던 안세화 주교가 김보록 신부의 도움을 받아 지은 수녀원이다.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에 가까운 서양식 건물로 땅은 대구 국채보상운동의 주역이었던 천주교 신자 서상돈이 기증하였고 한다.

[비지정문화재]

문헌기록에 없는 중구의 역사를 잘 보여 주는 유적들로 지표조사와 60여 차례 진행된 발굴 조사를 통하여 소개되어 있다. 신석기시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적들이 분포하는데, 그중에서도 청동기시대 분묘와 취락, 삼국시대 달성, 조선시대 대구읍성경상감영 관련 공해 건물, 일제강점기의 각종 교육시설과 개신교와 천주교와 관련된 종교 건물 등이 중구를 대표하는 유적이다.

1. 선사시대

중구의 선사시대는 늦어도 신석기시대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대봉동 마을 유적에서는 신석기시대 주거지 2기에서 다양한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되었는데, 후기에서 말기에 걸치는 것이다. 그리고 인접한 대봉동 21-7유적에서도 동시기의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된 바 있다.

청동기시대 유적은 분묘와 취락과 관련된 생활 유적이 주류를 이루며, 달성과 신천 사이의 충적지 일대에 넓은 범위로 분포한다. 분묘는 고인돌과 돌널무덤이 확인되는데, 고인돌 상석은 일제강점기에 보고되고 일부 조사된 바 있지만 현재에는 남아 있지 않다. 당시 교동 지석묘, 대봉동 지석묘①·②, 동문동 지석묘①·②, 봉산동 월견산 지석묘, 삼덕동 지석묘, 칠성동 지석묘①, 태평로[칠성동] 지석묘② 등 9개소가 소개되어 있다. 그 외 최근 발굴조사를 통해 동문동 38-6유적, 삼덕동 188-1유적, 용덕동 5-13, 5-21유적에서 각각 1~3기의 석관묘가 확인된 바 있다. 청동기시대 취락 관련된 주거지, 수혈, 구, 집석 등은 전역에서 확인된다. 대부분 주거지 1~5동과 수혈 등으로 구성된 소규모 취락들이며, 대봉동 마을 유적과 같이 주거지 33기로 구성된 대규모 취락의 모습도 확인된다. 유적은 공평동 68유적, 대봉동 187-3유적, 대봉동 21-7유적, 대봉동 23-1유적, 대봉동 마을 유적, 봉산동 185-4유적, 삼덕동 188-1유적, 수동 53유적 등 20여 개소가 조사되었다.

초기 철기시대 유적은 거의 확인되지 않으며, 동인동1가 235-20유적에서 수혈 1기가 확인된 바 있다.

2. 원삼국 및 삼국시대

원삼국 유적은 확인된 바 없지만 달성과 접하여 조성된 달성고분군 내에서 3세기 말~4세기 초로 편년되는 목곽묘가 확인된 바 있어 중구에도 동시대 유적이 확인될 가능성이 있다.

삼국시대 유적은 사적 제62호인 대구 달성과 생활 유적이 일부 알려져 있다. 그 외 518년 또는 578년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보물인 대구 무술명오작비중구 대안동에서 발견된 바 있다. 생활 유적은 태평로2가 12-2유적에서 주거지 1기, 대봉동 124-1유적에서 구 3기가 확인된 바 있다.

3. 통일신라~고려시대

통일신라시대 유적은 건물지와 주거지, 수혈 등 생활유구와 경작유구인 논이 알려져 있다. 건물지는 태평로2가 12-2유적에서 조사되고, 주거지는 수동 53유적과 전동 23-2유적에서 확인된 바 있다. 그 외 용덕동 5-13, 5-21유적에서는 수혈, 달성동 218-11유적에서는 논이 확인되었다.

고려시대 유적은 거의 확인되지 않으며, 발굴 조사를 통하여 5개소 정도가 알려져 있다. 달성동 294-1유적에서는 고려시대 달성 성벽을 일부 개축한 석축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생활유구로 공평동 25-11유적에서 건물지 1기와 수혈 2기, 전동 23-2유적에서 주거지 1기와 수혈 1기, 동인동 77유적과 태평로2가 12-2유적에서 각각 수혈 1기가 조사되었다.

4. 조선시대~근대

조선시대 유적은 대부분 대구읍성 내에 있던 경상감영 및 대구부사와 관련된 공해 건물이나 관리와 일반 백성들이 살던 생활유구의 흔적들이다. 대구읍성은 1591년(선조 24) 처음 토성으로 축조되었으나 1년 뒤인 1592년 임진왜란 때 파괴되고 1736년(영조 12)에 새로 석성이 축조되었다. 축성비에 따르면 성에는 동서남북의 네 정문에는 문루를 세웠는데, 동문은 진동문, 서문은 달서문, 북문은 공북문이라 부르고, 남문에는 영남제일관(嶺南第一關)의 편액을 달았다고 한다. 이밖에 동서에 두 개의 암문이 있었다. 1906년(광무 10)과 1907년(융희 1) 사이 당시 경상북도관찰사 서리 겸 대구군수였던 친일파 박중양 등에 의하여 불법 철거되었다. 현재는 남아 있지 않으며, 북성로2가 61유적에서 대구읍성의 체성 기저부 일부와 그 부속시설, 북성로1가 96-2유적에서는 체성의 기저부와 암거시설이 확인된 바 있다. 공해건물로는 사적으로 지정된 경상감영지와 감영을 구성하던 건물인 선화당, 징청각, 관풍루가 남아 있는데, 모두 대구광역시의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전동 23-2유적에서는 경상감영의 주 진입도로와 정문인 관풍루지, 중문인 중삼문지의 적심과 암거 배수로 등 기초시설과 함께 중삼문에서 선화당[정청]으로 이어지는 보도(步道)의 끝부분이 확인된 바 있다. 그리고 감영 부속건물인 도훈도청지 및 군뢰청지와 관련 건물지와 화장실, 석렬 등의 기초시설이 일부 확인되어 감영의 범위를 알려 주고 있다. 그 외 관찰사의 업적을 담은 남산동 상덕사비가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대구읍성이 해체되고, 대구의 중심부가 도심화되면서 조선시대의 흔적은 급속하게 사라졌는데, 발굴 조사에서 확인된 26개소의 유적들을 통하여 일부 살펴볼 수 있다. 유적에서는 도로, 건물지, 암거, 집석, 주거지, 수혈, 우물 등 생활유구가 확인되는데, 대다수가 대구읍성 내에 해당한다. 당시 유적으로 계산동2가 141유적, 공평동 46-5유적, 공평동 58-1유적, 남성로 13-2유적, 남성로 31유적, 대안동 15-2유적, 동문동 38-6유적, 동인동 77유적, 수동 53유적, 태평로2가 12-2유적, 포정동 73-1유적 등이 대표적이다. 한편, 읍성을 조금 벗어난 대봉동 739-20유적에서는 기와가마와 폐기장 등이 확인되어 생산된 기와를 읍성 내로 공급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 외 조선 초부터 대구의 중심지였던 만큼 수령 200~400년 정도의 동산동 이팝나무, 서문로 회화나무, 달성동 회화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근대 유적으로는 일찍부터 대구에 선교사들이 들어오면서 지은 많은 종교 건물들과 일제강점기 기관에서 지은 병원 및 교육시설, 개인 건물 등이 잘 남아있다. 특히 계산동, 남산동 일대에는 천주교와 관련된 종교시설이 많으며, 동산동대신동에는 개신교 관련 병원 및 사택, 학교 사택 등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계산동에는 계산동 성당[사적 제290호, 1902년], 독립운동가 이상정 생가이상화 고택이 남아 있다. 남산동에는 천주교 관련되어 안세화 주교에 의하여 설립된 샬트르성바오로수녀원성당[유형문화재 제43호, 1927년], 코미넷관[문화재자료 제24호, 1915년], 수련원[1938년], 성요셉병원[1931년]이 있고, 동쪽에는 장해숙 주택[1937년]이 남아 있다. 그리고 천주교 대구교구 내에는 성모당[유형문화재 제29호, 1918년], 성유스티노신학교[문화재자료 제23호, 1914년]가 있다. 그리고 개신교 관련 건물인 남산교회[1932년]가 남아 있다. 동산동에는 동산병원 구관[국가등록문화재 제15호, 1931년]과 병원 내 선교사들의 사택으로 1910년 지어진 선교사스윗즈주택[유형문화재 제24호], 선교사챔니스주택[유형문화재 제25호], 선교사블레어주택[유형문화재 제26호]이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도로 건너 대신동에는 계성학교아담스관[유형문화재 제45호, 1908년], 계성학교 맥퍼슨관[유형문화재 제46호, 1913년], 계성학교핸더슨관[유형문화재 제47호, 1931년]이 있으며, 남성로에는 대구제일교회[유형문화재 제30호, 1933년]가 있다.

개인 건물로는 남일동정소아과의원[1937년], 대구화교협회[국가등록문화재 제252호, 1929년]가 있고, 동성로의 엘지상사[1932년], 북성로의 경북자동차 매매사업소[1920년경], 광명페인트상회[1920년경], 대원석유주식회사[1938년]가 있으며, 서문로 부산비닐상사[1937년], 태평로구성운[1934년], 포정동교장 관사[1930년] 등 서구식의 붉은벽돌 건물들이 대부분이다.

기관에 의하여 지어진 학교와 병원시설로는 종로2가대구화교 소학교[1925년], 동인동구 대구의학전문학교 본관[사적 제442호, 1933년], 삼덕동구 도립대구병원[사적 제443호, 1928년]과 대구 구 교남 YMCA 회관[국가등록문화재 제570호, 1914년], 포정동의 구 대구금융조합[1925년]과 한국산업은행 대구지점[유형문화재 제49호, 1932년], 남산동남산초등학교 강당[유형문화재 제44호, 1936년], 대봉동구대구상업학교본관[유형문화재 제48호, 1923년], 경북대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강당[1925년]과 경북대사범대학부설중학교 본관[1923년] 등이 잘 남아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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