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75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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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加德島洞船倉-慶山全氏世居地 |
영어의미역 | Gadeokdo-dong Gyeongsan Jeon Ancestral Village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도동 선창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상기 |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도동에 있는 경산 전씨 세거지.
경산 전씨(慶山全氏)의 시조는 백제의 개국 공신이자 전국 전씨(全氏)들의 도시조(都始祖)인 전섭(全攝)의 27세손 전영령(全永齡)이다. 전영령은 고려 신종(神宗) 때 신호위 대장군(神號衛大將軍)으로 공을 세워 옥산군(玉山君)에 봉해졌다. 옥산(玉山)은 경산(慶山)의 옛 지명이다. 그 뒤 후손들이 전영령을 시조로 하여 정선 전씨(旌善全氏)에서 분적(分籍)하여 본관을 옥산으로 하여 세(世)를 이어 오고 있다.
가덕도동 선창(先艙) 마을은 가덕도(加德島) 최북단에 있는 마을로 본래 배를 고치고 건조(建造)하던 곳이 있었고, 조선 시대에는 병기 창고(兵器倉庫)가 있어 ‘선창(船倉)’이라고 하였는데, 육지인 용원에서 가덕도로 들어오는 첫 번째 배를 대는 곳이라 하여 지금과 같은 한자 표기로 바뀌었다.
옥산군 전영령을 1대조로 하는 경산 전씨는 2세 전공양(全公亮)이 문림랑(文林郞) 시어사(侍御史)가 되었고, 3세 전윤재(全允宰)가 검교 군기감(檢校軍器監)을 하였으며, 4세 전효량(全孝良)이 청도 감무(淸道監務)를 지냈고, 5세 전문주(全文柱)는 중정대부 전객령(中正大夫典客令)을 하였으며, 6세 전의룡(全義龍)은 고려 광정대부(匡靖大夫) 판밀직부사(判密直副使) 상호군(上護軍)을 지내는 등 고려 시대에 많은 인물이 대를 이어 활약하였다. 7세 전백종(全伯宗)이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밑에서 수학하여 하동 감무(河東監務)를 하였으나 고려가 망하자 경산에서 대구 파금동으로 은거하였다.
강서구 가덕도동에 거주하는 경산 전씨는 7세 전백종을 파조로 하며, 그의 후손인 20세 전록흥(全錄興)이 1750년경 김해(金海)에서 가덕도로 이거하였다. 전록흥의 손자 22세 전대배(全大培)가 참봉이 되었고, 뒤이어 23세 전능수(全能秀)는 통정대부(通政大夫) 이조 참의(吏曹參議)까지 올랐으며, 24세 전인우(全寅佑)는 통정대부 좌부승지(左副承旨) 겸 참찬관(參贊官)에 올라 경산 전씨 가덕도 문중을 명문(名門) 집안으로 이끌었고, 조선 말 25세 전덕병(全德炳)은 정릉 참봉(貞陵參奉)이 되어 집안을 지켜 왔다. 이후 후손들이 옆 마을인 동선 마을, 성북 마을, 천성 마을 등으로 이거하였다.
선창 마을은 남쪽을 제외한 삼면이 모두 바다와 인접하고 있다. 마을 서쪽에 있는 갈마봉을 지나면 바로 바다와 닿는다. 남쪽으로 구곡산과 불미골 소류지가 있다.
가덕도의 경산 전씨가 한창 번창할 때는 선창 마을에 30여 가구를 비롯하여 강서구 동선동 동선 마을·강서구 성북동 성북 마을에 20여 가구, 강서구 천성동 천성 마을에 10여 가구 등 약 60가구가 집성촌을 이루었으나 지금은 젊은이들이 외지로 나가고 2013년 현재 30가구 이하로 줄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