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965
한자 金柱鶴
영어음역 Gim Juhak
분야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 7가 20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나종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정치인
성별
대표관직 부산시 시장
활동 시기/일시 1950년 4월 21일 - 부산 시장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52년 5월 7일 - 부산 시장 퇴임
부임|활동지 부산시청 -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 7가 20지도보기

[정의]

1950~1952년 제3대 부산 시장을 지낸 정치인.

[활동 사항]

김주학(金柱鶴)이승만(李承晩)을 총재로 하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지부장을 지낸 인물로, 제2대 부산 시장 정종철(鄭鐘哲)의 뒤를 이어 1950년 4월 21일 제3대 부산 시장에 임명되었다. 정종철은 일제 강점기에 진주부청에서 근무한 관료 출신으로, 시장 취임 6개월 만에 해임되었다.

김주학이 시장이 되고 약 2개월 후에 6·25 전쟁이 발발하여 곧바로 전시 행정 체제에 돌입하였다. 6·25 전쟁 중 정부는 수원·대전·대구를 거쳐 1950년 8월 8일 부산으로 수도를 옮김으로써 부산시는 약 3년 동안 임시 수도 역할을 하면서 피난민 구호 행정에 주력하게 되었다. 부산시가 임시 수도일 때 일어난 가장 큰 정치적 변화는 지방자치제 실시였다. 지방 자치는 제헌 헌법에 명시되어 있었으나 계속 연기되다가 195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전격 실시하게 되었다. 전쟁의 혼란 속에서 지방 자치를 밀어붙인 이유는 이승만(李承晩)의 개인적인 권력욕 때문이었다. 국회 의원이 대통령을 뽑는 간접 선거로는 재선될 자신이 없었기에 직선제 개헌을 위한 사전 작업으로서 자방 자치를 강행한 것이다.

1952년 4월 25일 시·읍·면 의원 선거가 치러져 35명의 초대 부산 시 의원이 선출되고, 이어서 5월 5일 김낙제(金洛濟)를 초대 의장으로 하는 부산시의회가 구성되었다. 5월 9일 시 의원들이 참여한 지방 자치 단체장 선거에서 손영수(孫永壽)가 제4대 부산 시장에 선출됨으로써 김주학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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