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3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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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永煥 |
영어음역 | Bak Yeongwhan |
이칭/별칭 | 노석(奴石)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구모룡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시인이자 사회 운동가.
박영환(朴永煥)[1913~1995]은 1913년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서 태어났다. 호는 노석(奴石)이다. 일제 말 함양에서 『조선 일보』 지국을 운영하다가 광복 후 부산으로 이주, 『자유 민보』 창간에 참여하여 논설위원을 지냈다. 이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경남본부 기획 조직국장, 대한독립촉성경남협의회 연락 선전부장, 신탁통치반대결사투쟁위,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경남지부 사업 선전부장을 지내는 등 정치 사회적 편력이 다채롭다.
1948년 『영남 문학』, 『경남 공론』 등에 「불씨」, 「무제(無題)」, 「님에게」를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6·25 전쟁 때는 문총구국대 경상남도 사무국장을 지내고, 1953년 휴전 후에는 진주에서 『경남 일보』 편집국장, 『영남 문학』 주간,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진주지부 문학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경상남도에서 활동하다가 1956년 부산으로 이사하였다. 박영환은 스스로를 무정부주의자 혹은 아나키스트라 부르고, 통일 언론인을 자처하면서 무정부주의 사상을 전파하고자 노력하였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는 박영환이 정치적 삶을 포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박영환의 마지막 구원은 시였다. 시로 인해 몽매에도 그리던 무정부주의자로서의 삶도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것이다. 1978년 『갈숲』 동인이 되었고, 이듬해 도시를 떠나 경상남도 기장군 정관읍 두명리 백운 공원묘지 옆에 백운 산장이라는 두 평 남짓한 슬레이트 집을 지어 이주하였다. 부인과 둘이 살면서 가난하지만 고고한 시혼을 불태우다 1995년 세상을 떠났다. 무남독녀 외딸 박은아(朴銀亞)는 미국에 살고 있으며, 부인 이경옥(李敬玉)은 미국과 부산을 오가며 살았다.
박영환의 시는 초기작 몇 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부산에서 써서 발표한 것들이다. 1973년 첫 시집 『바위의 염원』을, 1983년 시와 수필을 모은 『백운산 뻐꾸기』를 발간하였다. 1993년 프랑스의 초기 무정부주의자 프루동(Pierre-Joseph Proudhon)의 『소유란 무엇인가』를 번역, 출간하였다. 1994년에는 문단 후배들이 나서서 팔순 기념 시문집인 『행운유수(行雲流水)』를 펴냈다.
사후 화장되어 백운 공원묘지[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두명리 산46번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