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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0569
한자 幸館
영어의미역 Haenggwan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역사/근현대
유형 지명/시설
지역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최병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극장
개관|개장 시기/일시 1903년 12월연표보기 - 행좌 개관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15년 12월 19일 - 행좌 폐관[이후 행관 신축]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30년 11월 10일 - 폐관
최초 설립지 행좌 -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동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동에 부산 최초로 세워진 극장.

[건립 경위]

1903년 당시 부산은 일본인의 증가와 이에 따른 시가지 계획이 추진되는 한편, 북항 매축이 시작되면서 항구 도시의 면모를 드러내었다. 행정 구역은 용두산을 중심으로 북빈정(北濱町), 남빈정(南濱町), 본정(本町), 변천정(辨天町), 행정(幸町), 대청정(大廳町), 상반정, 금평정(今平町), 서산하정, 서정(西町), 부평정(富平町) 등으로 정비되었다. 일본영사관, 경찰서, 조선전신국, 해관, 해안우편국, 어시장, 용미산과 용두산의 신사부터 고야산 대사당, 봉원사, 묘각사 등의 사찰이 자리하고, 일본인들의 묘지도 조성되었다. 그 가운데 일본인들의 상권과 주거 중심지였던 남빈정[현 중구 광복동]에 1903년 12월[추정] 극장 행좌(幸座)[후에 활동사진 상설관인 행관으로 신축]가 건립되어 근대식 극장이 대중문화 공연장으로 정착·경영되었다.

[변천]

행좌는 연극 전용 극장으로, 일본인 하자마 후사타로[迫間房太郞]에 의해 건축, 경영되었다. 1899년 마산 지역에 있었던 하자마 창고 광장에서 영화를 상영한 기록으로 보아 하자마 후사타로는 부산 지역 초기 영화 유입 과정에 개입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행좌의 실체를 확인시켜준 자료는 「부산항 시가 및 부근 지도」[1903년 12월]이다. 행좌는 1915년 12월 19일에 폐관되었다. 이곳에 활동사진 상설관인 행관(幸館)하자마 후사타로에 의하여 신축되었다. 이후 행관은 조선은 물론 만주까지 영화를 배급하던 흥행계의 손꼽히던 수완가이면서 남포동에 있었던 사쿠라바 후지오[櫻庭藤夫]에게로 넘어갔다. 행관은 1930년 11월 10일 소실되었다.

[구성]

극장 행좌에서는 1904년 활동사진과 환등이 상영되었으며, 공연물은 주로 일본 연극과 일본 씨름[스모], 마술, 비파, 죠루리 등이었다. 1929년 7월 18일에 행관에서 마키노프로덕션 제1회 발성 영화 일본 시대극 「돌아오는 다리」가 처음으로 공개되어 5일간 상영되었다. 이것은 1927년에 미국에서 제작된 최초의 발성 영화 「재즈 싱어」가 선보인 지 2년 만의 일이었다. 1927년 7월 16일자 『아사히 신문[朝日新聞]』 남조선판에는 “눈과 귀를 황홀하게 하는 선명함을 나타낸 마키노식 일본 토키 영화 상영은 조선에서 처음 시도되어 팬들은 굉장한 흥미를 갖고…….”라고 그 경이로움을 소개하였다. 비록 우리 손으로 만든 영화는 아니었지만 영화 탄생 이후 기술적인 대혁명 시대를 부산은 가장 빠르게 접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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