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25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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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梵魚寺靑龍巖詩木板 |
영어의미역 | Fretted Woodblock with a Poet of Cheongryongam Temple at Beomeosa Temple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조원영 |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범어사에 있는, 조선 후기 동래부사 이안눌(李安訥)의 시를 판각한 목판.
범어사 청룡암시 목판(梵魚寺靑龍巖詩木板)은 1608년(선조 41) 2월부터 1609년(광해군 1) 7월까지 동래부사를 역임한 동악(東岳) 이안눌[1571~1637]이 자필로 쓴 「청룡암 시(靑龍巖詩)」와 「범어사 증도원산인(梵魚寺贈道元山人)」을 판각(板刻)한 것이다. 1999년 9월 3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되었으며,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범어사(梵魚寺)에서 소유하여 관리하고 있다.
이안눌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29세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쳤으며,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왕을 따라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온 뒤 병이 심해져 세상을 떠났다. 시를 짓는 데 뛰어나 문집에 4,379수의 많은 양의 시를 남겼다. 이안눌은 동래부사 재임 시 자주 범어사를 찾았는데, 당시 범어사의 혜정 장로(惠晶長老)가 이안눌에게 훗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시를 한 수 지어 바위에 새길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이안눌이 시를 지어 바위에 새긴 것이 바로 「청룡암 시」인데, 현재 범어사 지장전(梵魚寺地藏殿) 옆에 있는 청룡암 전면에 새겨져 있다.
목판에 새겨진 「청룡암 시」와 「범어사 증도원산인」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청룡암 시」
덕수이거사(德水李居士)[덕수 땅 이 거사]
내산정상인(萊山晶上人)[동래산 혜정 상인]
구학양한신(丘壑兩閑身)[산수 즐기는 한가한 두 사람]
소석태점극(掃石苔粘珖)[바위를 밟으니 신발[나막신]에 이끼 파랗고]
관송로숙건(觀松露塾巾)[소나무를 보느라 두건에 이슬 젖는다]
창애백천겁(蒼崖百千劫)[수만 겁 내려온 푸른 바위에]
신집시전신(新什是傳神)[이제 새로이 문장을 새기네]
「범어사 증도원산인(梵魚寺贈道元山人)」
석애태경입연비(石崖苔逕入烟비)[바위 벼랑 이끼 낀 길은 안개 속으로 접어들고]
좌의송근간석휘(坐倚松根看夕暉)[소나무 뿌리에 기대 앉아 석양을 바라본다]
촉백일성산적적(蜀魄一聲山寂寂)[접동새 우는 소리에 산사는 적막하고]
전두삼십구년비(轉頭三十九年非)[돌이켜 생각하니 삼십구 년 내 인생이 어리석구나]
17세기 초에 판각된 것으로 추정되는 범어사 청룡암시 목판은 연대가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부산 지역에서 동래부사를 지낸 이안눌이 직접 쓴 시를 목판으로 판각하였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또한 조선 후기 지방사 연구에 기초 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문화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