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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지역 아이들이 넓은 마당에서 역할을 나누어 하는 술래잡기 놀이. ‘아기 때리기’ 놀이에 대하여 1990년 1월 15일 금남면 장재리의 김광휘가 제보한 내용이다. 아기 때리기 놀이는 어린이들이 사시사철 노는 놀이로, 평탄하고 넓은 곳에서 원을 두 개 겹쳐 그린다. 안쪽 가운데 원은 지름이 1m 정도 크기로 그리고 바깥 원은 30~50㎝ 정도 더 크게 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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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와 금남면 집현리를 잇는 금강의 교량. 아람찬교는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 출범과 함께 금강 구간에 네 번째로 건설된 가칭 금강4교이다. 세종특별자치시 시도제1호선 도로상의 교량이다. 2016년 1월 5일에 개통되었으며, 행정중심복합도시를 중심으로 한 환상형 내부순환도로상에 놓인 교량이다. 예부터 하늘·땅·사람을 상징하는 삼태극[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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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아름동에 있는 공립 고등학교. 아름고등학교의 교육 비전은 ‘세종의 중심! 명문 아름고!’이고, 교육 목표는 ‘지성·감성·덕성을 겸비한 창의적 아름인 육성’이다. 아름고등학교는 2014년 3월 3일 세종특별자치시 아름동에서 남녀 공학으로 개교하였다. 아름고등학교는 특색 교육활동으로 미소, 칭찬, 배려의 행복 바이러스 3 운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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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아름동에 있는 공립 고등학교. 아름고등학교의 교육 비전은 ‘세종의 중심! 명문 아름고!’이고, 교육 목표는 ‘지성·감성·덕성을 겸비한 창의적 아름인 육성’이다. 아름고등학교는 2014년 3월 3일 세종특별자치시 아름동에서 남녀 공학으로 개교하였다. 아름고등학교는 특색 교육활동으로 미소, 칭찬, 배려의 행복 바이러스 3 운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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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에 속한 법정동. 둘레가 한아름 넘치는 주민들의 풍족한 주거지역을 바라는 의미에서 아름이라는 한글 명칭이 지어졌다. 아름동은 범지기 마을로도 불리는데, 이는 아름동 지역의 고유어 전래명칭 가운데 범지기 마을을 활용한 것이다. 고정리에 자리한 범지기 마을의 모습이 범이 누워있는 형상과 닮았다고 보았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두잉지현, 고려시대에는 공주목과 청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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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아름동에 있는 책임행정기관. 세종특별자치시 아름동에서 처리하는 행정 업무 외에 세종특별자치시에서 위임받은 154개 업무를 처리하는 책임행정기관이다. 기존의 아름동에서 처리하던 사무에 더하여 기존에 시청에서 처리하던 154개 사무를 아름동장 책임 아래 처리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책임행정 관할구역은 아름동, 도담동, 고운동, 종촌동, 어진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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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아름동에 있는 책임행정기관. 세종특별자치시 아름동에서 처리하는 행정 업무 외에 세종특별자치시에서 위임받은 154개 업무를 처리하는 책임행정기관이다. 기존의 아름동에서 처리하던 사무에 더하여 기존에 시청에서 처리하던 154개 사무를 아름동장 책임 아래 처리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책임행정 관할구역은 아름동, 도담동, 고운동, 종촌동, 어진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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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아름동에 있는 공립 중학교. 아름중학교의 교육 비전은 ‘소중한 우리! 즐거운 배움! 꿈꾸는 학교!’이다. 교육 비전을 실현하기 위하여 ‘나’를 발견하고 ‘너’를 인정하며 함께 성장하는 ‘우리’, 하나가 만드는 우리, 우리가 만드는 하나, 함께 배우는 교실, 꿈꾸는 아름인을 교육목표로 삼고 있다. 학교장의 경영관은 학생 스스로 기획하고 실천하는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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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아름동에 있는 공립 중학교. 아름중학교의 교육 비전은 ‘소중한 우리! 즐거운 배움! 꿈꾸는 학교!’이다. 교육 비전을 실현하기 위하여 ‘나’를 발견하고 ‘너’를 인정하며 함께 성장하는 ‘우리’, 하나가 만드는 우리, 우리가 만드는 하나, 함께 배우는 교실, 꿈꾸는 아름인을 교육목표로 삼고 있다. 학교장의 경영관은 학생 스스로 기획하고 실천하는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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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아름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아름초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지혜로운 어린이, 더불어 나눔을 실천하는 어린이, 도전하는 어린이’이다. 교육 비전으로는 ‘나를 사랑하고 배려하는 행복한 아름공동체’를 제시한다. 2014년 3월 1일 13학급으로 개교하였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전문적학습공동체 선도학교로 지정·운영되었다. 특색교육으로 ‘따뜻한 무지개빛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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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아름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아름초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지혜로운 어린이, 더불어 나눔을 실천하는 어린이, 도전하는 어린이’이다. 교육 비전으로는 ‘나를 사랑하고 배려하는 행복한 아름공동체’를 제시한다. 2014년 3월 1일 13학급으로 개교하였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전문적학습공동체 선도학교로 지정·운영되었다. 특색교육으로 ‘따뜻한 무지개빛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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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아름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아름초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지혜로운 어린이, 더불어 나눔을 실천하는 어린이, 도전하는 어린이’이다. 교육 비전으로는 ‘나를 사랑하고 배려하는 행복한 아름공동체’를 제시한다. 2014년 3월 1일 13학급으로 개교하였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전문적학습공동체 선도학교로 지정·운영되었다. 특색교육으로 ‘따뜻한 무지개빛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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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좌를 시조로 하고 이명홍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이주좌(李周佐)[?~1040]를 시조로 하고 이석번(李碩磻)을 파조로 하는 아산이씨 아성군파(牙城君派)가 1600년대에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문주리 입향 이래 지금까지 살고 있다. 아산이씨의 시조 이주좌는 경주이씨(慶州李氏) 중시조 이거명(李居明)의 5세손이다. 고려 목종 때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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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익휴를 시조로 하고 신경환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신익휴(申益休)를 시조로 하고 신간(申幹)을 파조로 하는 아주신씨 직장공파가 1800년대 후반에 세종 지역인 연동면 송용리에 정착하여 살고 있다. 아주신씨는 평산신씨(平山申氏)에서 분관한 성씨이다. 시조는 평산신씨 12세손 신익휴로, 고려 때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문하시랑(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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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안광조(安光祚)[1884~1920]는 채응언의 의병부대에서 활동한 의병가이다. 1919년에 안광조가 36세인 점으로 미루어 1884년 무렵에 출생한 것으로 짐작된다. 출신 가문이나 성장 과정은 알려져 있지 않다. 안광조는 1907년 헤이그 특사 의거와 광무황제 강제 퇴위를 계기로 전국적으로 의병 전쟁이 격화되어 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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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에 속한 법정리. 마을 주변에 있던 나무로 된 넓은 다리에서 유래하는 명칭이다. 다리 이름은 너더리로, 마을 안쪽에 위치하여 안너더리 또는판교(板橋)·내판(內板)으로 불리었다. 내판리에는 너더리, 역전, 새말, 연못골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너더리는 널다리[板橋]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마을 앞에 널로 만든 다리가 있어 붙은 이름이다. 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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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행을 시조로 하고 권은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권행(權幸)을 시조로 하고 권은(權訔)을 입향조로 하는 안동권씨는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노장리와 청송리 등을 중심으로 번성하여 지금까지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는 전동 지역의 대표 성씨이자 유력 성씨이다. 안동권씨의 시조는 권행이지만 원래 이름은 김행(金幸)이며, 신라의 왕성(王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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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행을 시조로 하고 권은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권행(權幸)을 시조로 하고 권은(權訔)을 입향조로 하는 안동권씨는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노장리와 청송리 등을 중심으로 번성하여 지금까지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는 전동 지역의 대표 성씨이자 유력 성씨이다. 안동권씨의 시조는 권행이지만 원래 이름은 김행(金幸)이며, 신라의 왕성(王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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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승을 시조로 하고 김방경을 중시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김숙승(金叔承)을 시조로 하고 김방경(金方慶)[1212~1300]을 중시조로 하는 안동김씨는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미곡리, 소정면 운당리, 연동면 내판리에 정착하여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현재 전서공파(典書公派), 안렴사공파(按廉使公派), 익원군파(翼元公派) 후손들이 세종특별자치시 전 지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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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승을 시조로 하고 김방경을 중시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김숙승(金叔承)을 시조로 하고 김방경(金方慶)[1212~1300]을 중시조로 하는 안동김씨는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미곡리, 소정면 운당리, 연동면 내판리에 정착하여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현재 전서공파(典書公派), 안렴사공파(按廉使公派), 익원군파(翼元公派) 후손들이 세종특별자치시 전 지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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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양곡리에 있는 안동김씨 2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조선 후기에 세운 정려. 안동김씨 쌍효 정려는 안동김씨 집안의 김익정(金益精)[?~1436]과 김익정의 현손(玄孫) 김사준(金師俊)[1439~1520]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김익정은 김휴(金休)의 아들로, 호는 운암(雲庵)이다. 경기도 개성군 송도면에서 태어나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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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내판리에 있는 김기철의 처 밀양손씨와 김성흠의 처 창녕성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정려. 열녀 밀양손씨 창녕성씨 정려는 안동김씨 가문의 고부 밀양손씨(密陽孫氏)와 창녕성씨(昌寧成氏)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것이다. ‘양세정려기(兩世旌閭記)’와 ‘열녀정려기(烈女旌閭記)’에 의하면 밀양손씨는 어려서부터 부덕을 익혀 부모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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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에 있는 산등성이의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에 있는 낮은 통로. 고개는 대체로 산등성이를 넘는 곳을 말하며, 재[岾]·영(嶺)·마루·현(峴)·치(峙)·안부(鞍部)·티·항(項)이라고도 한다.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못한 옛날에 산으로 막힌 이웃 지역을 오가는 데 고개를 넘는 것이 가장 빠르고 편리하였다. 세종특별자치시는 차령산맥의 주맥과 지맥이 통과하는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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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지역에서 가정 주부가 집안 가신에게 가족의 건강과 무탈, 집안 번영 등을 기원하며 지내는 고사. 안택고사는 집안 안정, 가족 건강, 가정 번영 등을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고사이다. 유사한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의례로 안택굿을 꼽을 수 있지만 굿은 무당이 의례를 주도한다고 하는 점에서 안택고사와 구별된다. 안택고사는 해당 가정의 주부가 중심이 되어 비손[손을 비비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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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합강리 합호서원에 소장되어 있던 고려시대 주자학자 안향의 영정. 고려시대 문신 안향(安珦)[1243~1306]의 초상화로,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합강리에 위치한 합호서원(合湖書院)에 위패와 함께 모셔져 있었다. 초상은 현재 충청남도 역사문화연구원에서 소장 중이다. 안향은 고려시대 명신이자 학자이다. 호는 매헌(晦軒), 시호는 문성(文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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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지역에서 무당이나 법사가 앉은 채로 꽹과리와 북을 두드리고 무경을 구송하며 진행하는 무속 의례. 앉은굿이라는 용어는 무당이나 법사가 굿을 진행할 때 취하는 자세에 근거하여 나온 말이다. 본래 앉은굿은 여성 무당보다 경객(經客)이나 법사(法師)가 중심이 되어 행하였다. 경객이나 법사는 북이나 꽹과리를 앞에 두고 두드리면서 경문을 구송하는 방식으로 굿을 진행하였다. 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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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에 속한 법정리. 명학리는 마을과 주변의 형상이 학(鶴)과 닮아 원명학 또는 알봉골로 불리었다. 마을은 학이 앉아 있는 형국이고 뒷산의 바위는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다. 주변은 학이 날아가는 형국으로 뒷산은 머리에 해당하고 양쪽 산은 날개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명학리에는 명학, 황우재, 외태, 내태, 서당말, 원당골 등 자연 마을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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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지역에서 암석의 유래나 이름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세종특별자치시에는 다양한 종류의 암석설화가 전해진다. 암석의 형상에 이름을 붙인 유래담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역사적 인물보다 고단한 민중의 삶과 애환을 다루고 있다. 세종특별자치시에는 거암괴석이 상당하여 암석의 유래나 이름에 대한 설화가 다수 채집된 바 있다. 1970년대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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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와 세종특별자치시 반곡동을 이어 주던 금강의 나루. 앵청이나루는 금강 둑에 많이 심어져 있던 벚나무를 의미하는 한자 ‘앵화(櫻花)’에서 유래하였다. 과거 연기면 세종리[옛 남면 양화리]에 ‘앵청이’라는 아가씨가 주막을 하고 있었는데 주막에서 쉬어가곤 했던 뭇 사내들이 아가씨의 이름을 따서 나루에 붙인 데서 유래하였다고 전한다.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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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와 세종특별자치시 반곡동을 이어 주던 금강의 나루. 앵청이나루는 금강 둑에 많이 심어져 있던 벚나무를 의미하는 한자 ‘앵화(櫻花)’에서 유래하였다. 과거 연기면 세종리[옛 남면 양화리]에 ‘앵청이’라는 아가씨가 주막을 하고 있었는데 주막에서 쉬어가곤 했던 뭇 사내들이 아가씨의 이름을 따서 나루에 붙인 데서 유래하였다고 전한다.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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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와 세종특별자치시 반곡동을 이어 주던 금강의 나루. 앵청이나루는 금강 둑에 많이 심어져 있던 벚나무를 의미하는 한자 ‘앵화(櫻花)’에서 유래하였다. 과거 연기면 세종리[옛 남면 양화리]에 ‘앵청이’라는 아가씨가 주막을 하고 있었는데 주막에서 쉬어가곤 했던 뭇 사내들이 아가씨의 이름을 따서 나루에 붙인 데서 유래하였다고 전한다.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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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문신. 신후윤(愼後尹)[1640~1713]의 호는 야수(野獸)이다.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관정리 취촌·대곡리에서 살았으므로 모두 신후윤을 대곡선생이라 하였다. 숙종 대의 복잡다단한 정파적 이해관계 속에서 스승 타우 이상과 우암 송시열을 향한 사은(師恩)[스승의 은혜]으로 충효와 더불어 유자(儒者)[유학을 공부하는 선비]의 책무인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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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노송리의 약수터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약사골」 설화는 고려시대 연동면 노송리에 있던 강당[서당]의 서생인 박천석이 남편을 잃은 여인을 겁탈하려 하였고, 저항하던 여인이 자결하자 이후 약수터의 물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는 지명설화이다. 1988년 연기군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연기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연기군지』에는 최문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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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노송리의 약수터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약사골」 설화는 고려시대 연동면 노송리에 있던 강당[서당]의 서생인 박천석이 남편을 잃은 여인을 겁탈하려 하였고, 저항하던 여인이 자결하자 이후 약수터의 물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는 지명설화이다. 1988년 연기군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연기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연기군지』에는 최문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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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노송리의 약수터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약사골」 설화는 고려시대 연동면 노송리에 있던 강당[서당]의 서생인 박천석이 남편을 잃은 여인을 겁탈하려 하였고, 저항하던 여인이 자결하자 이후 약수터의 물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는 지명설화이다. 1988년 연기군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연기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연기군지』에는 최문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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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에 묘를 쓴 문신이자 양주조씨 입향조. 조계원(趙啓遠)[1592~1670]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병자호란 당시 군량을 보급하고 볼모로 심양(瀋陽)에 가 있던 소현세자(昭顯世子)를 보좌하였던 인물이다. 후손들의 전언에 따르면 1674년(현종 15)에 충청도관찰사로 부임하면서 현재의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송정리와 인연을 맺었고 첫째 아들인 조진석이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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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에 속한 법정리. 양곡리(陽谷里)는 압곡리·상세곡리·하세곡리·양지리를 병합하여 ‘양지’와 ‘압곡’의 이름을 따서 ‘양곡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가느실마을·봉두미마을·아래가느실마을·주막뜸마을 등이 있다. 가느실마을은 가는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며 세곡이라고도 불린다. 봉두미마을은 봉의 머리와 같이 생긴 산인 봉두산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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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지역 저명 성씨인 안동김씨의 전의면 양곡리 동족마을 동족조직과 운영 모습. 안동김씨 세종특별자치시 입향 중심인 전서공파의 시제 및 종회 조직·운영모습·절차를 통하여 세종 지역의 전통적인 동족마을 모습을 엿보게 한다. 안동김씨 전서공파의 시제(時祭)[음력 10월 5대 이상의 조상 무덤에 지내는 제사]는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미곡리 학당이 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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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광을 시조로 하고 이희년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이수광(李秀匡)을 시조로 하고 이인부(李仁富)를 파조로 하는 양성이씨는 1400년대 후반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유천리에 정착한 이래 전의면 서정리와 읍내리 등에 옮겨 살면서 양성이씨 이시중파를 형성하였다. 양성이씨 시조 이수광은 송나라 사람으로 고려에 귀화하여 문종 때 삼중대광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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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효자. 성이복(成爾復)[1713~1776]의 아버지는 성석장(成碩章)이고, 어머니는 전의이씨(全義李氏) 이태한의 딸이다. 큰아버지 절충장군 행용양위부호군 성규장(成奎章)에게 양자로 출계(出系)[양자로 들어가서 그 집의 대를 이음]하였다. 성이복은 효성이 지극하였다. 양부 성규장이 병들자 ‘하늘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없다.’하고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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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와촌리에 있는 성이복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정려. 효자 성이복 정려는 성이복(成爾復)[1713~1776]의 효행을 후세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남기고자 1891년(고종 28)에 명정을 받아 1892년에 건립되었다. 성이복은 본관이 창녕이고, 자는 양숙(陽叔)이다. 생부는 성석장(成碩章)[1689~1743], 생모는 전의이씨 이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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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문신. 최지성은 1795년에 장원급제하여 정조 재위 시 이조정랑과 사간원정언 등을 지내고 현풍현감을 지낸 문신이다. 최지성의 할아버지는 최고(崔暠)이고 아버지는 통정대부 최의경(崔義敬)이다. 어머니 청도김씨(淸道金氏)는 김헌재(金憲再)의 딸이다. 최지성(崔之聖)[1756~1805]의 본관(本貫)은 강화, 호는 환재(環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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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잠을 시조로 하고 조존외, 조계원, 조원희를 각각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시조 조잠(趙岑)은 고려 때 양주호장(楊州戶長)을 지내고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에 추증(追贈)[종2품 이상 벼슬아치의 죽은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에게 벼슬을 주던 일]되었다. 조잠의 증손대에 이르러 조계생(趙啓生)을 파조로 하는 정평공파(靖平公派), 조유중(趙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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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잠을 시조로 하고 조존외, 조계원, 조원희를 각각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시조 조잠(趙岑)은 고려 때 양주호장(楊州戶長)을 지내고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에 추증(追贈)[종2품 이상 벼슬아치의 죽은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에게 벼슬을 주던 일]되었다. 조잠의 증손대에 이르러 조계생(趙啓生)을 파조로 하는 정평공파(靖平公派), 조유중(趙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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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원성리에 있는 양주조씨 3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조선 후기에 세운 정려. 양주조씨 삼효 정려는 양주조씨 조수빈(趙秀彬)[1745~1824]과 조명빈(趙命彬)[1749~1832] 형제, 조수빈과 조명빈의 팔촌인 조만빈(趙萬彬)의 손부 조백규(趙百逵) 처 경주김씨(慶州金氏)[1764~1816]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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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원성리에 있는 양주조씨 3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조선 후기에 세운 정려. 양주조씨 삼효 정려는 양주조씨 조수빈(趙秀彬)[1745~1824]과 조명빈(趙命彬)[1749~1832] 형제, 조수빈과 조명빈의 팔촌인 조만빈(趙萬彬)의 손부 조백규(趙百逵) 처 경주김씨(慶州金氏)[1764~1816]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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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도담동에 있는 공립 고등학교. 양지고등학교의 교육 비전은 ‘지·덕·체를 갖춘 민주시민 양성’이다. 교육 비전을 실현하기 위하여 자신의 진로와 삶을 개척하는 자주적인 사람, 발상과 도전으로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창의적인 사람, 문화를 향유하고 발전시키는 교양있는 사람,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더불어 사는 사람을 교육 목표로 삼고 있다. 교훈은 ‘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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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도담동에 있는 공립 고등학교. 양지고등학교의 교육 비전은 ‘지·덕·체를 갖춘 민주시민 양성’이다. 교육 비전을 실현하기 위하여 자신의 진로와 삶을 개척하는 자주적인 사람, 발상과 도전으로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창의적인 사람, 문화를 향유하고 발전시키는 교양있는 사람,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더불어 사는 사람을 교육 목표로 삼고 있다. 교훈은 ‘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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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도담동에 있는 공립 중학교. 양지중학교의 교육 목표는 ‘교육공동체 모두가 행복한 학교’이다. 교육 목표를 실현하기 위하여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행동하는 사람, 소통하고 배려하는 성숙한 민주시민 육성, 멀리 보고 크게 생각하는 사람을 추진 과제로 삼고 있다. 교훈은 ‘새로운 생각’, ‘따뜻한 마음’, ‘올곧은 행동’이다. 2015년 3월 1일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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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도담동에 있는 공립 중학교. 양지중학교의 교육 목표는 ‘교육공동체 모두가 행복한 학교’이다. 교육 목표를 실현하기 위하여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행동하는 사람, 소통하고 배려하는 성숙한 민주시민 육성, 멀리 보고 크게 생각하는 사람을 추진 과제로 삼고 있다. 교훈은 ‘새로운 생각’, ‘따뜻한 마음’, ‘올곧은 행동’이다. 2015년 3월 1일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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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도담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양지초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나눔과 배려로 행복을 실천하는 학생, 심신을 단련하고 능력을 계발하는 학생, 문화적 소양을 기르는 품위있는 학생, 창의성과 도전정신으로 창조하는 학생’이다. 학교 비전은 ‘새롭고·조화로운·행복한 학교’이다. 교훈은 ‘따뜻한 마음, 올곧은 행동, 넓고 깊은 생각’이다. 2012년 10월 15일 공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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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도담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양지초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나눔과 배려로 행복을 실천하는 학생, 심신을 단련하고 능력을 계발하는 학생, 문화적 소양을 기르는 품위있는 학생, 창의성과 도전정신으로 창조하는 학생’이다. 학교 비전은 ‘새롭고·조화로운·행복한 학교’이다. 교훈은 ‘따뜻한 마음, 올곧은 행동, 넓고 깊은 생각’이다. 2012년 10월 15일 공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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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도담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양지초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나눔과 배려로 행복을 실천하는 학생, 심신을 단련하고 능력을 계발하는 학생, 문화적 소양을 기르는 품위있는 학생, 창의성과 도전정신으로 창조하는 학생’이다. 학교 비전은 ‘새롭고·조화로운·행복한 학교’이다. 교훈은 ‘따뜻한 마음, 올곧은 행동, 넓고 깊은 생각’이다. 2012년 10월 15일 공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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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선문을 시조로 하고 허돈, 허징을 각각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허선문(許宣文)을 시조로 하는 양천허씨 승지공파(承旨公派)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부용리에 터를 이루었고, 덕천공파(德川公派)와 초당공파(草堂公派)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집현리에 정착한 이래 서로 이웃한 마을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왔다. 양천허씨의 시조 허선묵은 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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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서 근대기에 활동하며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의 덕성서원에 배향된 학자. 전우(田愚)[1841~1922]의 자는 자명(子明), 호는 구산(臼山)·추담(秋潭)·간재(艮齋)·고옹(蠱翁)·양하왕인(陽下尫人)이다. 초명은 경륜(慶倫)·경길(慶佶)이다. 21세에 당시의 거유(巨儒|鉅儒)[뭇사람의 존경을 받는 이름난 유학자] 신응조(申應朝)의 권유로 서울에서 직접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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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에 있는 수령 약 650년의 은행나무. 연기 세종리 은행나무는 암수 두 그루가 서로 마주 보고 심어져 있다. 은행나무 옆에는 임난수 장군의 사당인 숭모각[세종특별자치시 향토유적 제35호]이 있다. 은행나무는 불교와 함께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곳곳에 심어졌다.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매우 뛰어나 우리나라 전역에서 잘 자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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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아름동 어서각 역사공원에 있는 조선시대 왕들의 친필이 봉안된 건물. 어서각(御書閣)은 조선의 태조(太祖)[1335~1408], 영조(英祖)[1724~1776], 정조(正祖)[1752~1800], 고종(高宗)[1852~1919]이 직접 쓴 글씨를 모신 서각(書閣)이다. 태조의 친필은 1395년(태조 4) 12월 22일 이성계의 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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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어진동에 있는 공립 중학교. 어진중학교의 교육 비전은 ‘나’를 사랑하고 ‘너’를 존중하며 함께 성장하는 행복배움터이다. 교육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자아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사람[자주인],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인성인], 다양한 발상과 도전으로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사람[창의인], 긍정적 사고로 몸과 마음이 조화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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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어진동에 있는 공립 중학교. 어진중학교의 교육 비전은 ‘나’를 사랑하고 ‘너’를 존중하며 함께 성장하는 행복배움터이다. 교육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자아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사람[자주인],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인성인], 다양한 발상과 도전으로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사람[창의인], 긍정적 사고로 몸과 마음이 조화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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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지역의 언론·출판 역사. 1945년 해방이 되자 『인민보』, 『민중일보』, 『자유신보』, 『중앙신문』 등이 발간되기도 하였으나 컬프 충남지사가 시설을 환수하여 『동방신문(東邦新聞)』으로 이름을 고쳐 신문을 발행하게 되어 『동방신문』이 충청남도 지역 유일의 우리말 신문으로 활약하였다. 한편 온양에서는 『경남신보(京南新報)』라는 주간신문이 1946년 7월에 나왔으나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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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을 시조로 하고 김천만을 파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김선(金鐥)을 시조로 하고 김천만(金天萬)을 파조로 하는 언양김씨 통정공파(通政公派)가 1800년대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내판리에 입향한 이래 일가를 이루며 살아오고 있다. 언양김씨의 시조는 김선이다. 신라 경순왕의 일곱째 아들이며 고려 태조의 외손자로, 언양군(彦陽君)에 봉해져 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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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지역에서 사용되는 언어 및 언어 상황. 세종특별자치시는 한반도 남쪽의 중앙부이자 충청남도와 충청북도의 접경 지역에 있다. 세종특별자치시로 독립하였지만 2012년 이전까지만 하여도 충청남도 연기군 지역이었다. 그러므로 세종특별자치시의 언어는 충청남도 방언, 그중에서도 연기군의 방언을 토대로 한다. 또한 세종특별자치시는 동쪽에 충청북도 청주시, 서쪽에 충청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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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동학사 숙모전의 전신인 초혼단을 만들고, 세종 지역에 은거한 충신이자 효자. 정지산(鄭之産)[1396~1467]의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언평(彦平), 호는 포신(逋臣) 또는 포옹(逋翁)이다. 세조의 계유정난 때 화를 당한 우의정 정분(鄭苯)의 양자이다. 양어머니는 원주변씨(原州邉氏)[1396~1467]이다. 1445년(세종 27) 사마시에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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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효자. 김종철(金宗喆)[1755~1817]의 본관은 강릉이고, 자는 여명(汝明)이다. 김상기(金尙基)의 둘째 아들이다. 어린 시절부터 효성이 남달리 지극했던 김종철은 8세가 되던 해 어머니가 병으로 눕게 되자 어린 나이에도 곁을 떠나지 않았고, 찬 이슬을 맞아 가며 하늘에 기도하는 등 지성으로 봉양하였다. 모친이 식사하는 수저의 각도를 살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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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익을 시조로 하고 송인남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송유익(宋惟翊)을 시조로 하고 송서(宋瑞)[?~1353]를 파조로 하는 여산송씨 정가공파(正嘉公派)가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봉대리 고소재 마을에 입향한 이래 현재까지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여산송씨의 시조 송유익은 고려시대에 진사(進士)로서 여산군(礪山君)에 봉하여졌다. 송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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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에 묘를 쓴 무신. 윤각(尹慤)[1665~1724]은 조선 후기 무신으로,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여성(汝誠)이다. 비변사낭관, 도총부도사, 초계군수, 전주영장, 전라도수군절도사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특히 함경남도 병마절도사가 되어 백두산 경계를 사정(査定)[조사하거나 심사하여 결정함]하고, 백두산 남쪽 산천의 형태를 그려 올린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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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에서 지정한 보호수로, 소나무목 소나뭇과에 속하는 상록침엽 교목. 소나무는 소나무과의 상록 침엽교목으로 학명은 Pinus densiflora Siebold & Zucc이다. 다 자란 나무의 높이 35m는 지름 2m 정도까지 자라며 가지가 넓게 퍼진다. 나무껍질은 적갈색 또는 짙은 갈색으로 거북이 등처럼 세로로 깊게 갈라진다. 나뭇잎은 바늘 모양으로 2개씩 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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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총후를 시조로 하고 진한번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여양진씨는 집의공파(執義公派) 진한번(陳漢藩)[1526~1572]이 1500년대에 현재의 세종특별자치시 반곡동인 옛 연기군 금남면 반곡리에 입향한 이래 480여 년 동안 세거하며 집성촌을 이룬 세종특별자치시의 대표적인 성씨이다. 여양진씨는 진총후(陳寵厚)를 시조로 한다. 고려 예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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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보람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여울초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즐거운 배움 꿈이 움트는 행복 여울’이다. 교훈은 ‘생각하고 느끼며 실천하는 여울인’이다. 2017년 3월 1일 7학급[특수학급 1학급 포함]을 편성하여 2017년 3월 3일 개교하였다. 2017년 9월 1일 16학급[특수학급 1학급 포함], 2018년 3월 1일 23학급[특수학급 1학급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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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보람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여울초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즐거운 배움 꿈이 움트는 행복 여울’이다. 교훈은 ‘생각하고 느끼며 실천하는 여울인’이다. 2017년 3월 1일 7학급[특수학급 1학급 포함]을 편성하여 2017년 3월 3일 개교하였다. 2017년 9월 1일 16학급[특수학급 1학급 포함], 2018년 3월 1일 23학급[특수학급 1학급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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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보람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여울초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즐거운 배움 꿈이 움트는 행복 여울’이다. 교훈은 ‘생각하고 느끼며 실천하는 여울인’이다. 2017년 3월 1일 7학급[특수학급 1학급 포함]을 편성하여 2017년 3월 3일 개교하였다. 2017년 9월 1일 16학급[특수학급 1학급 포함], 2018년 3월 1일 23학급[특수학급 1학급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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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부용리 일대에 있는 산. 부용산은 연화부수형의 명당이 있는 높이 222m의 산으로, 정상에 오르기 전 구덩이가 있는 곳까지를 부용봉이라고 한다. 부용리 마을 뒤에 있는 산으로, 연꽃이 물에 뜬 형국의 명당이라 하여 명산으로 꼽힌다. 연꽃 형국인 부용봉이 무거워서 가라앉는다 하여 전해오는 풍수지리적 생각에 따라 부용봉 주위에 묘를 쓸 때는 비석이라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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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칭도를 시조로 하고 민후건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여흥민씨는 민후건이 17세기 초반에 연기현 월하방에 입향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흥민씨(驪興閔氏) 시조는 고려시대에 중국에서 사신으로 왔다가 귀화한 민칭도(閔稱道)이다. 민칭도는 공자의 10제자 중 한 사람인 민손(閔損)의 후손으로, 고려 중엽에 사신으로 왔다가 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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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지역의 역사에 대한 개관. 세종특별자치시 관련 역사기록은 『삼국사기』 지리4 백제편에 ‘두잉지현과 구지현’이라는 지명으로 처음 등장한다. 따라서 역사 기록을 기준으로 본다면 세종특별자치시의 역사시대는 백제시대부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선사시대 유물이 출토된 것을 기준으로 본다면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이러한 요소들을 고려하여 세종특별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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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전의현과 연기현을 관통하는 역로에 세워 통신, 교통 및 숙박 기능을 담당하던 역과 원. 역(驛)은 전근대 사회의 교통·통신 기관으로, ‘우역(郵驛)’이라고도 한다. 역에는 기본적으로 말[馬匹]과 역장(驛長)·역정(驛丁) 등 관리 인원을 두고 국가 명령과 공문서 전달 업무를 맡았으며, 공무(公務)로 인한 여행자에게 필마(匹馬)를 제공하고 숙식 알선을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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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세종 지역의 역로에 설치되어 통신·교통·숙박 기능을 담당하던 교통·통신 기관. 역(驛)은 전근대 사회에서의 교통·통신 기관으로, ‘우역(郵驛)’이라고도 한다. 역에는 기본적으로 말[馬匹]과 역장(驛長)·역정(驛丁) 등 관리 인원을 두고 국가 명령 및 공문서 전달, 공무(公務)로 인한 여행자에 대한 필마(匹馬) 제공 및 숙식 알선을 담당하였다. 이외에도 사신 왕래에 따른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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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에 묘를 쓴 문신이자 학자. 송명흠(宋明欽)[1705~1768]은 조선시대 학자이다. 자는 회가(晦可), 호는 역천(櫟川)이다.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1606~1672]의 현손(玄孫)[증손자의 아들]이며, 도암(陶菴) 이재(李縡)의 문인이었다. 임성주(任聖周), 신소(申韶), 김양행(金亮行), 송명휘(宋明輝), 송환기(宋煥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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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나성동에 있는 원삼국시대~백제시대 유적. 나성리 유적은 금강의 북쪽에 형성된 충적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세종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에 앞서 확인된 유적이다. 세종특별자치시 나성동 일원에 위치하고 있다. 세종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시행에 앞서 발굴된 유적이다. 발굴조사 결과 원삼국시대 널무덤[토광묘(土壙墓)], 삼국시대 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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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봉산리에 있는 수령 약 400년의 향나무. 연기 봉산동 향나무는 조선 중종 때 최완이 봉산동 지역에 정착한 뒤 숨지자, 최완의 아들 최중룡(崔重龍)이 서울에서 내려와 시묘살이를 하고 효성을 후손에게 보이기 위하여 심었다고 전하여진다. 향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정원수 등으로 널리 심어져 왔으며 향의 원료나 가구의 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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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에 있는 수령 약 650년의 은행나무. 연기 세종리 은행나무는 암수 두 그루가 서로 마주 보고 심어져 있다. 은행나무 옆에는 임난수 장군의 사당인 숭모각[세종특별자치시 향토유적 제35호]이 있다. 은행나무는 불교와 함께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곳곳에 심어졌다.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매우 뛰어나 우리나라 전역에서 잘 자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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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한솔동에 있는 백제의 주거지 유적. 송원리 유적은 세종특별자치시 한솔동에서 삼국시대 백제의 대규모 횡혈식석실묘와 석곽묘가 발견된 유적이다. 세종특별자치시 한솔동 일원에 위치하고 있다. 세종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사업 시행에 앞서 발견된 유적이다. 발굴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주거지, 백제 횡혈식석실분·석곽묘·토광묘·주구토광묘·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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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와촌리 기와말 마을에 있는 백제시대 유물산포지. 연서면소재지에서 남동쪽으로 약 4㎞ 지점에 연서면 와촌리 기와말 마을이 위치한다. 마을 입구에서 북쪽으로 인접한 지역에 옛 와촌초등학교가 있었으며, 백제토기 출토지는 와촌초등학교 뒤쪽으로 형성되어 있는 나지막한 능선의 하단부에 해당한다. 현재 유물산포지는 대부분 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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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연기리에 있는 개항기 흥선대원군이 서양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을 경계하기 위하여 세운 비석. 척화비는 1866년(고종 3) 병인양요(丙寅洋擾)와 1871년 신미양요(辛未洋擾)를 겪은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쇄국의 결의를 굳히고 온 국민에게 외세의 침입을 경계하기 위하여 1866년 비문을 짓고 1871년 4월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의 각처에 세운 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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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에 현재의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일대를 포함하는 지역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두잉지현(豆仍只縣)은 백제시대 지명으로, 오늘날 정부세종청사를 포함한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일대의 백제시대 지명이다. ‘두잉지’의 어의와 어형에 대한 언어학 연구를 통하여 ‘두 내가 합쳐진다’는 뜻을 나타내는 것으로 파악된 바 있다. 연기면이 ‘미호천’과 ‘금강’이 합류하는 지역에 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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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일대의 옛 행정 구역. 연기현(燕岐縣)은 조선 건국 이후 1413년(태종 13) 전국적인 지방제도 개편 때 제정되어 조선 말까지 유지되었으며, 1895년(고종 32) 현(縣)을 군(郡)으로 일괄 개칭할 때 연기군으로 개칭되어 유지되다가 2012년 7월 1일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하면서 세종특별자치시에 흡수·폐지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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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충청남도 연기를 중심으로 편성되어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로 통합된 옛 행정 구역. 1895년(고종 32) 5월 26일 칙령 제98호로 충청도를 폐지할 때연기와 전의의 행정 지위가 군으로 승격되었다.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에 따라 부제를 다시 개정하고 각 부와 군을 5등급으로 차등하여 연기군·전의군이 충청남도에 속하게 되었다. 2010년 12월 ‘세종특별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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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충청남도 연기를 중심으로 편성되어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로 통합된 옛 행정 구역. 1895년(고종 32) 5월 26일 칙령 제98호로 충청도를 폐지할 때연기와 전의의 행정 지위가 군으로 승격되었다.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에 따라 부제를 다시 개정하고 각 부와 군을 5등급으로 차등하여 연기군·전의군이 충청남도에 속하게 되었다. 2010년 12월 ‘세종특별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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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세종 지역에서 일어난 기미년 만세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후학들에게 전승하기 위한 기념식. 묵재(黙齋) 홍일섭(洪日燮)[1878~1935]과 경호(鏡湖) 장재학(張在學)[1862~1919]은 만세운동 당시 민족혼을 되살리는 데 노력한 인물들이다. 홍일섭은 시종원주사로 일하다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고종황제가 양위하자 고향으로 돌아와 있다가 조치원 시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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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2월 29일 조치원읍 공회당에서 신탁통치를 반대하는 단체를 조직한 사건.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미·소 군정이 38도선을 경계로 각각 남과 북에서 실시되었다. 1945년 12월 소련 모스크바에서 열린 3국[미국, 영국, 소련] 외상 회의에서 연합국의 전후 처리 문제를 논의하여 공동 위원회와 임시 정부가 최고 5년간의 신탁 통치 협정을 맺을 것에 합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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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2월 29일 조치원읍 공회당에서 신탁통치를 반대하는 단체를 조직한 사건.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미·소 군정이 38도선을 경계로 각각 남과 북에서 실시되었다. 1945년 12월 소련 모스크바에서 열린 3국[미국, 영국, 소련] 외상 회의에서 연합국의 전후 처리 문제를 논의하여 공동 위원회와 임시 정부가 최고 5년간의 신탁 통치 협정을 맺을 것에 합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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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2월 30일 신탁통치에 찬성하는 연기군 좌익 세력 중심의 운동. 연합국은 카이로 회담, 얄타 회담, 포츠담 회담 등을 연쇄적으로 개최하였음에도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기 전에 유럽과 아시아 지역 전후 처리 문제에 대하여 합의를 이루지 못하였다. 결국 전후 처리 문제에 대한 합의는 1945년 12월 소련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미국, 영국, 소련 간 3국 외상회의에서 결정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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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노장리에 있는 농공 단지. 국토의 균형 개발과 지방화시대에 부응하는 지역경제 기반 육성 및 지방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산업용지 수요 증대에 대비한 용지 확보 및 체계적인 개발계획 수립을 위하여 개설하였다. 노장농공단지는 세종특별자치시 북부 지역의 농촌경제 활성화를 통한 고용 창출 및 소득 증대를 도모하기 위하여 1986년부터 1987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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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1년 세종 지역 정좌산 일대에서 원나라 반란군인 합단적을 물리친 전투. 침략의 원인은 원나라 내부의 황위 계승전에 있었다. 즉 1259년 몽고제국의 헌종[몽케]이 사망하자 동생들인 쿠빌라이[忽必烈]와 아리크부카[阿里不哥]가 후계자 자리를 둘러싸고 싸움을 벌였다. 이 싸움에서 쿠빌라이가 승리하여 황위에 올라 세조가 되었다. 그리고 1271년 국호를 원이라 하였다. 그러나 아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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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용암리 고복자연공원 내에 있는 공원. 연기대첩비공원은 연기대첩을 기념하는 연기대첩비와 현대 추상 조각작품을 설치한 공원 시설이다. 충청남도 연기군이 조성하였으며, 세종특별자치시 출범 후 세종특별자치시의 시립 공원으로 변경되었다. 연기대첩비공원은 고려시대의 연기지역 구국 전투 중 하나인 연기대첩을 기리기 위하여 고복저수지의 월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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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용암리의 연기대첩비공원에서 매년 6월 지내는 제례행사. 1993년 8월 조치원문화원장[현 세종문화원장]을 주축으로 39명의 연기대첩제 추진위원을 구성하였다. 1994년 3월 연기대첩 재조명을 위하여 문화체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에 청원서를 제출하고, 국사편찬위원회[현 경기도 과천시 교육원로]를 방문하여 조언을 구하였다. 1994년 3월 29일 연기군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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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에 속한 법정리. 조선시대에 연기현(燕岐縣)의 읍터였으며, 마을 명칭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옛 고을 연기현의 이름을 따서 연기리(燕岐里)가 되었다. 연기리에는 교촌, 구향교골, 환재골, 옥터, 위사티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교촌(校村)은 현재 연기향교(燕岐鄕校)가 있으며, 구향교골은 조선 후기까지 향교가 있어서 붙여진 명칭이다. 환재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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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에 속하는 법정면. 예전의 고을 명칭인 연기현과 세종특별자치시 출범 이전의 연기군 남면 연기리 등을 유지한 명칭이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두잉지현, 조선시대는 연기현에 속하였다. 189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연기군 군내면 연기리에 군청이 소재하였지만, 1911년에 군청이 북면(현 조치원읍)으로 이전되어 중심지도 바뀌었다. 1914년에는 군내면을 개칭하여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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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에 속하는 법정면. 예전의 고을 명칭인 연기현과 세종특별자치시 출범 이전의 연기군 남면 연기리 등을 유지한 명칭이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두잉지현, 조선시대는 연기현에 속하였다. 189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연기군 군내면 연기리에 군청이 소재하였지만, 1911년에 군청이 북면(현 조치원읍)으로 이전되어 중심지도 바뀌었다. 1914년에는 군내면을 개칭하여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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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에 세거한 부안임씨 집성촌.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는 전서공(典書公) 임난수(林蘭秀)의 정착 이후 600여 년을 이어 오는 부안임씨의 동족적 유서가 깃들어 있는 집성촌이다. 세종리에 거주하는 주민들 성씨는 대부분이 부안임씨이다. 임난수의 둘째 아들인 임목은 양양공파, 임서는 사직공파, 임흥은 위의공파로 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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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에 거주하는 문인과 출향 문인을 아울러 결성된 문학 단체. 연기문학동인회는 백수문학에서 활동하던 동인 중 내부 분규(紛糾)[이해나 주장이 뒤얽혀서 말썽이 많고 시끄러움]로 인해 진보적 성향의 젊은 동인 중심으로 갈라져 나온 문학 단체이다. 백수문학 때와 같은 제목인 『백수문학』을 중복 발행하였다. 재판을 통한 법의 제재로 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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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어진동에 있는 공립 중학교. 어진중학교의 교육 비전은 ‘나’를 사랑하고 ‘너’를 존중하며 함께 성장하는 행복배움터이다. 교육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자아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사람[자주인],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인성인], 다양한 발상과 도전으로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사람[창의인], 긍정적 사고로 몸과 마음이 조화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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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어진동에 있는 공립 중학교. 어진중학교의 교육 비전은 ‘나’를 사랑하고 ‘너’를 존중하며 함께 성장하는 행복배움터이다. 교육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자아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사람[자주인],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인성인], 다양한 발상과 도전으로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사람[창의인], 긍정적 사고로 몸과 마음이 조화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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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 원수산에서 지낸 산제와 관련된 고문헌.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 원수산(元帥山)[254m] 중턱에 위치한 산제당에서 매년 동짓달 초이틀[음력 11월 2일] 자시에 마을의 안녕과 동네사람 모두가 한 해 무사하기를 원수산 산신께 비는 산제가 이루어졌다. 수백 년 전부터 이루어진 전통 세시로, 원수산 산신제를 기록한 자료가 원수산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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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의 연기향교에 개설된 검정고시 대비 민간 사회 교육 시설. ‘굳건한 인내, 꾸준한 노력, 참된 결실’을 학교 교훈으로 삼았다. 1969년 현재의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에 있는 연기향교에서 하재동이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모아 검정고시 대비반을 개설하였다. 1년 후 인근 항공대대 병사들의 봉사로 교사를 모집하고 교실 2칸을 지어 검정고시 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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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서창리에 있는 공립 남자 중학교. 조치원중학교의 교육 지표는 ‘품성과 실력을 조화롭게 갖춘 행복한 아이들’이다. 교육 지표를 실현하기 위하여 자율과 협력으로 성장하는 창의적 인재 육성,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따뜻한 인재 육성, 소통과 공감으로 상생하는 글로벌 인재 육성, 꿈과 끼를 발휘하는 예술·체육 인재 육성을 교육 목표로 삼고 있다. 교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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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서창리에 있는 공립 남자 중학교. 조치원중학교의 교육 지표는 ‘품성과 실력을 조화롭게 갖춘 행복한 아이들’이다. 교육 지표를 실현하기 위하여 자율과 협력으로 성장하는 창의적 인재 육성,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따뜻한 인재 육성, 소통과 공감으로 상생하는 글로벌 인재 육성, 꿈과 끼를 발휘하는 예술·체육 인재 육성을 교육 목표로 삼고 있다. 교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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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의 연기향교에 개설된 검정고시 대비 민간 사회 교육 시설. ‘굳건한 인내, 꾸준한 노력, 참된 결실’을 학교 교훈으로 삼았다. 1969년 현재의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에 있는 연기향교에서 하재동이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모아 검정고시 대비반을 개설하였다. 1년 후 인근 항공대대 병사들의 봉사로 교사를 모집하고 교실 2칸을 지어 검정고시 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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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수산리에서 발원하여 미호천으로 합류하는 하천. 연기천은 금강의 제2 지류이며,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수산리에서 발원하여 세종리에서 미호천으로 흘러 들어간다. ‘연기(燕岐)’라는 지명은 옛 고을 이름인 ‘연기현(燕岐縣)’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연기천이라고 명명된 것으로 추정된다. 연기천 주변의 지질은 중생대 쥐라기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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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연기리에 있는 조선시대 관립 교육기관. 연기향교는 1416년에 현유(賢儒)[어진 선비 또는 훌륭한 유학자] 위패를 봉안, 배향(配享)[학덕이 있는 사람의 신주를 문묘나 사당, 서원 등에 모시는 일]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연기향교는 연기면 연기리의 당산성 서남쪽에 남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연기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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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청라리에 있는 사립 박물관. 세종특별자치시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고 세종 지역 인근에서 발굴된 유적 4,500점을 소장하고 있는 향토박물관이다. 세종특별자치시 옛 연기군 지역의 향토 자료를 수집하고 기존의 마을 주택을 개조하여 1996년 8월 14일 연기향토박물관을 개관하였다. 세종특별자치시 연기향토박물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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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일대의 옛 행정 구역. 연기현(燕岐縣)은 조선 건국 이후 1413년(태종 13) 전국적인 지방제도 개편 때 제정되어 조선 말까지 유지되었으며, 1895년(고종 32) 현(縣)을 군(郡)으로 일괄 개칭할 때 연기군으로 개칭되어 유지되다가 2012년 7월 1일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하면서 세종특별자치시에 흡수·폐지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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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충청도 연기현에 토착하고 있던 씨족 집단의 성씨.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조선 전기 연기현의 토성(土姓)[지방에 토착하고 있던 재지 씨족집단의 성씨에 대한 총칭]으로 위(魏)·하(河)·전(全)·경(耿)·장(萇)씨, 내성(來姓)[토박이 성씨가 아닌 다른 고장에서 들어온 성씨]으로 서울에서 온 왕(王)씨, 속성(續姓)[이전의 문서에 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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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2년 이후에 편찬된 충청도 연기현의 읍지. 충청도 연기현[현 세종특별자치시] 읍지로, 조선 후기 편찬본이지만 연대는 미상이다. 다만 열녀 가운데 영종조(英宗條)라는 기록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정조대 이후에 편찬된 것을 알 수 있다. 표제명은 연기현읍지이다. 1책 필사본이다. 표지는 ‘연기현읍지(燕岐縣邑誌)’로 되어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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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의 연기향교에 개설된 검정고시 대비 민간 사회 교육 시설. ‘굳건한 인내, 꾸준한 노력, 참된 결실’을 학교 교훈으로 삼았다. 1969년 현재의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에 있는 연기향교에서 하재동이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모아 검정고시 대비반을 개설하였다. 1년 후 인근 항공대대 병사들의 봉사로 교사를 모집하고 교실 2칸을 지어 검정고시 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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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의 연기향교에 개설된 검정고시 대비 민간 사회 교육 시설. ‘굳건한 인내, 꾸준한 노력, 참된 결실’을 학교 교훈으로 삼았다. 1969년 현재의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에 있는 연기향교에서 하재동이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모아 검정고시 대비반을 개설하였다. 1년 후 인근 항공대대 병사들의 봉사로 교사를 모집하고 교실 2칸을 지어 검정고시 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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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연기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연남초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생각을 키우는 학생, 감성을 채우는 학생, 함께 어울리는 학생’이다. 꿈을 가꾸고 성장시키는 어울림 배움터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1908년 4월 1일 연기공립배달학교로 개교하였다가 1911년 5월 10일 연기공립보통학교로 변경, 1938년 4월 1일 연기공립심상소학교로 변경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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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연기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연남초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생각을 키우는 학생, 감성을 채우는 학생, 함께 어울리는 학생’이다. 꿈을 가꾸고 성장시키는 어울림 배움터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1908년 4월 1일 연기공립배달학교로 개교하였다가 1911년 5월 10일 연기공립보통학교로 변경, 1938년 4월 1일 연기공립심상소학교로 변경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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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연기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연남초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생각을 키우는 학생, 감성을 채우는 학생, 함께 어울리는 학생’이다. 꿈을 가꾸고 성장시키는 어울림 배움터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1908년 4월 1일 연기공립배달학교로 개교하였다가 1911년 5월 10일 연기공립보통학교로 변경, 1938년 4월 1일 연기공립심상소학교로 변경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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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송용리에 있는 고려시대 마애여래입상. 연동 송용리 마애여래입상은 내판역 근처 얕은 구릉에 자리하고 있는 마애여래입상으로, 광배와 불상을 하나의 돌에 조각한 것이다. 상호 일부가 훼손되었지만 전체적으로 수인이나 옷주름 표현이 간략화되고 도식화된 부분도 있어 고려시대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연동 송용리 마애여래입상은 커다란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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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합강리에 있는 조선시대 사설 교육기관. 합호서원은 문성공(文成公) 안향(安珦)[1243~1306]의 후손인 순흥안씨들이 1716년(숙종 42) 안향의 영정을 봉안하고 친필을 보관하기 위하여 후손인 안경신(安景信)·안경정(安景精) 등이 세운 영당으로, 안향 영정을 봉안하고 봄·가을에 제향을 지내 왔다. 연동면 합강리에 세거한 순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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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명학리 황룡사에 있는 조선 후기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복장유물. 조선 후기인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목조아미타여래좌상 1구와 불상 내부에서 출토된 복장유물 11점이다. 복장유물은 후령통 1점과 『진언집』, 『육경합부』 등 불교전적 10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중형 목조불상 형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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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에 속한 법정면. 조선시대에 연기현 관아의 동쪽에 있다하여 동일면(東一面)과 동이면(東二面)으로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두 면을 통합하여 동면이라고 하였다. 2012년 7월에는 충청남도 연기군 동면이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으로 변경되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두잉지현에 속하였다. 조선 전기에는 연기현으로 있다가 1414년 전의현과 합쳐져 전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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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노송리에 세거한 경주김씨 상촌공파 집성촌.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노송리 노산은 경주김씨 상촌공파(桑村公派) 집성촌이다. 노송리는 1구와 2구로 나뉜다. 노송1구의 중심 마을은 노리미와 웅동이며, 노송2구의 중심 마을은 강당이다. 경주김씨 상촌공파는 노리미와 웅동에 살고 있다. 경주김씨 상촌공파는 고려 공민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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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노송리에 세거한 경주김씨 상촌공파 집성촌.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노송리 노산은 경주김씨 상촌공파(桑村公派) 집성촌이다. 노송리는 1구와 2구로 나뉜다. 노송1구의 중심 마을은 노리미와 웅동이며, 노송2구의 중심 마을은 강당이다. 경주김씨 상촌공파는 노리미와 웅동에 살고 있다. 경주김씨 상촌공파는 고려 공민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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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명학리에 세거한 장수황씨 집성촌. 장수황씨가 세종특별자치시로 입향한 이후 집안을 유지하기 위한 모임과 조직, 유서(由緖)[예로부터 전하여 오는 내력과 이유] 등의 기록이 남아 있다. 장수황씨 세종특별자치시 입향조 황첩(黃堞)의 시제(時祭)는 음력 10월 10일로, 묘소에서 지낸다. 묘소는 부강면 등곡리에 있다. 제사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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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내판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연동중학교의 교육 목표는 ‘참된 인성과 역량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 육성’이다. 교육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학생 중심의 수업 전개, 꿈을 디자인하는 맞춤형 진로활동, 〈자존감 더하기 역량 충전〉 나·나 맞춤형 자기 성장 프로젝트, 더불어 읽고 나누는 인문·소양 독서, 창의·융합·탐구 중점 과학교육, 기초·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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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내판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연동중학교의 교육 목표는 ‘참된 인성과 역량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 육성’이다. 교육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학생 중심의 수업 전개, 꿈을 디자인하는 맞춤형 진로활동, 〈자존감 더하기 역량 충전〉 나·나 맞춤형 자기 성장 프로젝트, 더불어 읽고 나누는 인문·소양 독서, 창의·융합·탐구 중점 과학교육, 기초·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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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내판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연동초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개성을 살려 진로를 개척하는 어린이(튼튼한 성장), 기초능력의 바탕위에 새롭게 생각하는 창의적인 어린이(새로운 생각), 우리 문화와 다양한 가치를 이해하는 교양 있는 어린이(즐거운 배움), 세계와 소통하며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어린이(더불어 가는 삶)’이다. 모두가 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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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내판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연동초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개성을 살려 진로를 개척하는 어린이(튼튼한 성장), 기초능력의 바탕위에 새롭게 생각하는 창의적인 어린이(새로운 생각), 우리 문화와 다양한 가치를 이해하는 교양 있는 어린이(즐거운 배움), 세계와 소통하며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어린이(더불어 가는 삶)’이다. 모두가 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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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내판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연동초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개성을 살려 진로를 개척하는 어린이(튼튼한 성장), 기초능력의 바탕위에 새롭게 생각하는 창의적인 어린이(새로운 생각), 우리 문화와 다양한 가치를 이해하는 교양 있는 어린이(즐거운 배움), 세계와 소통하며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어린이(더불어 가는 삶)’이다. 모두가 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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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봉암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연봉초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꿈이 빛나는 어린이, 생각이 새로운 어린이, 마음이 향기로운 어린이’이다. 비전은 ‘꿈·생각·마음이 자라는 행복한 학교’이다. 1946년 9월1일 연봉국민학교로 개교하였으며, 1981년 3월 12일 연봉국민학교 병설유치원을 개원하였다. 1996년 3월 1일 연봉초등학교로 교명이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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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봉암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연봉초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꿈이 빛나는 어린이, 생각이 새로운 어린이, 마음이 향기로운 어린이’이다. 비전은 ‘꿈·생각·마음이 자라는 행복한 학교’이다. 1946년 9월1일 연봉국민학교로 개교하였으며, 1981년 3월 12일 연봉국민학교 병설유치원을 개원하였다. 1996년 3월 1일 연봉초등학교로 교명이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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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봉암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연봉초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꿈이 빛나는 어린이, 생각이 새로운 어린이, 마음이 향기로운 어린이’이다. 비전은 ‘꿈·생각·마음이 자라는 행복한 학교’이다. 1946년 9월1일 연봉국민학교로 개교하였으며, 1981년 3월 12일 연봉국민학교 병설유치원을 개원하였다. 1996년 3월 1일 연봉초등학교로 교명이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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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세종 지역으로 낙향하여 은거한 고려 후기 문신. 김휴(金休)[1350~?]의 자는 연부(鍊夫), 호는 학당(學堂)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김방경(金方慶)[1212~1300]의 현손이다. 아버지는 고려시대에 공조전서를 지낸 김성목(金成牧)이다. 김휴는 정몽주의 문하생이며, 공민왕 때 검교근시(檢校近侍)를 지냈다. 이후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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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일대의 옛 행정 구역. 문의현(文義縣)은 충청북도 청원군 부강면 일대가 소속되어 있던 조선시대 행정구역으로, 백제 때 일모산군(一牟山郡)이었으나 757년(신라 경덕왕 16) 연산군(燕山郡)으로 고쳐지고 고려시대인 1260년(고종 46)에 문의현으로 고쳐졌다. 그 뒤 여러 차례 변천을 거쳐 1895년(고종 32) 군으로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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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신대리 학림사에 소장된 개항기 신중도. 연서 학림사 신중도(燕西鶴林寺神衆圖)는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 신중(護法神衆)의 모습을 묘사한 불화이다. 중앙의 위태천(韋駄天)을 중심으로 신장(神將)과 천자(天子)가 좌우 협시로 구성되어 있다. 중앙 하단에 위치한 화기에 따르면 1891년에 조성되었다. 2014년 12월 22일 세종특별자치시 문화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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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기룡리에 있는 조선 후기 남양홍씨 5대 9효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 연서 효교비는 조선시대 5대에 걸쳐 9명의 효자가 나온 남양홍씨 집안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이들 9명의 효자들은 홍연경(洪延慶)[1579~1647]과 아들 홍정설(洪廷卨)[1615~1671], 손자 홍우적(洪禹績)[1634~1701]·홍우평(洪禹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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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쌍전리에서 조치원읍 번암리를 잇는 시도. 2012년 7월 1일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하면서 지방도 제604호가 세종특별자치시 시도(市道) 제23호로 편입·승격되었다. 노선명은 연기~조치원선이다. 2018년 기준 개통 도로는 58,620m[46,770m는 2차로 포장 도로, 11,850m는 미포장 도로]이며 1,000m는 미개통 상태인 지방 도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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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에 속한 법정면.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연기군청의 서쪽에 있다하여 서면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2012년 7월에는 충청남도 연기군 서면이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으로 변경되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두잉지현, 통일신라시대에는 연산군의 영현에 속한 연기현, 조선 전기에는 연기현, 조선 후기에는 연기군 북면 지역이었다. 1914년에는 행정구역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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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에 세거한 남양홍씨 남양군파 집성촌.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신대1리에 입향하여 300 여년간 뿌리른 내린 남양홍씨(南陽洪氏)는 홍주(洪澍)를 파조로 하는 남양군파(南陽君派)로, 입향조는 홍순손(洪順孫)이다.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의 신대리와 이웃한 성제리에는 남양홍씨 남양군파가 세거하고 있다. 예로부터 연기 지역은 ‘천홍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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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신대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연서중학교는 교육 비전을 ‘함께 성장하는 행복한 학교’로 정하고, 교육지표로 ‘나를 찾고 너와 나누는 우리’로 정하고 있다. 교육 비전을 실현하기 위하여 미래의 꿈을 품고 자기주도적 삶을 설계하는 사람[자주인], 참된 학력으로 미래 핵심 역량을 준비하는 창의적 사람[창의인], 문화예술 체험으로 바른 인성과 따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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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신대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연서중학교는 교육 비전을 ‘함께 성장하는 행복한 학교’로 정하고, 교육지표로 ‘나를 찾고 너와 나누는 우리’로 정하고 있다. 교육 비전을 실현하기 위하여 미래의 꿈을 품고 자기주도적 삶을 설계하는 사람[자주인], 참된 학력으로 미래 핵심 역량을 준비하는 창의적 사람[창의인], 문화예술 체험으로 바른 인성과 따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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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신대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연서초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스스로 탐구하교 배우며 꿈을 키우자(배움), 사랑하고 배려하며 나눔을 실천하자(나눔), 다양한 가치와 문화를 존중하며 더불어 살자(협력)’이다. 교육 비전은 배움이 즐겁고 나눔이 행복한 함께하는 연서교육이다. 교훈은 ‘스스로 새롭게 끝까지’이다. 1935년 5월 30일 연서공립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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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신대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연서초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스스로 탐구하교 배우며 꿈을 키우자(배움), 사랑하고 배려하며 나눔을 실천하자(나눔), 다양한 가치와 문화를 존중하며 더불어 살자(협력)’이다. 교육 비전은 배움이 즐겁고 나눔이 행복한 함께하는 연서교육이다. 교훈은 ‘스스로 새롭게 끝까지’이다. 1935년 5월 30일 연서공립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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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신대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연서초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스스로 탐구하교 배우며 꿈을 키우자(배움), 사랑하고 배려하며 나눔을 실천하자(나눔), 다양한 가치와 문화를 존중하며 더불어 살자(협력)’이다. 교육 비전은 배움이 즐겁고 나눔이 행복한 함께하는 연서교육이다. 교훈은 ‘스스로 새롭게 끝까지’이다. 1935년 5월 30일 연서공립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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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종 지역 연기김씨의 시조. 김준손(金俊孫)은 1506년 중종반정 때 공(功)을 세워 정국공신(靖國功臣) 4등에 책록(策錄)[국가나 군주 등을 위하여 공훈을 세운 사람의 이름과 공훈을 문서에 기록함]되고 연성군(燕城君)에 봉하여졌으며, 연기김씨 시조(始祖)가 되었다. 김준손은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후예이며,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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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어진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연세초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진로와 삶을 개척하는 사람,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사람,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전시키는 사람,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이며 함께 배우며 꿈을 키우는 행복 배움터를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 교훈은 ‘뿌리 깊은 나무’는 용비어천가 2장의 내용으로 학생들이 배움을 깊고 넓게 익히고, 인성을 바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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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어진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연세초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진로와 삶을 개척하는 사람,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사람,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전시키는 사람,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이며 함께 배우며 꿈을 키우는 행복 배움터를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 교훈은 ‘뿌리 깊은 나무’는 용비어천가 2장의 내용으로 학생들이 배움을 깊고 넓게 익히고, 인성을 바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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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어진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연세초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진로와 삶을 개척하는 사람,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사람,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전시키는 사람,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이며 함께 배우며 꿈을 키우는 행복 배움터를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 교훈은 ‘뿌리 깊은 나무’는 용비어천가 2장의 내용으로 학생들이 배움을 깊고 넓게 익히고, 인성을 바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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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섬한을 시조로 하고 김개신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연안김씨는 김개신이 광해군 때 사화를 피해 전의현[현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송성리]에 입향한 것으로 추정되며, 송성리에 후손들이 살고 있다. 연안김씨(延安金氏) 시조는 고려 명종 때 사문박사(四門博士)를 지낸 김섬한(金暹漢)이다. 신라 김알지의 후예인 두 왕자가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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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어진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연양초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꿈을 찾아가는 사람, 튼튼한 기초학력으로 생각하는 힘을 가진 사람, 배려와 나눔으로 더불어 사는 사람, 예술을 즐기는 문화적 감수성이 있는 사람’이다. 비전은 건강한 나, 배려하는 우리, 행복한 연양교육이다. 교훈은 가꾸자 ‘꿈을, 이루자 희망을’이다. 1939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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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어진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연양초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꿈을 찾아가는 사람, 튼튼한 기초학력으로 생각하는 힘을 가진 사람, 배려와 나눔으로 더불어 사는 사람, 예술을 즐기는 문화적 감수성이 있는 사람’이다. 비전은 건강한 나, 배려하는 우리, 행복한 연양교육이다. 교훈은 가꾸자 ‘꿈을, 이루자 희망을’이다. 1939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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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어진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연양초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꿈을 찾아가는 사람, 튼튼한 기초학력으로 생각하는 힘을 가진 사람, 배려와 나눔으로 더불어 사는 사람, 예술을 즐기는 문화적 감수성이 있는 사람’이다. 비전은 건강한 나, 배려하는 우리, 행복한 연양교육이다. 교훈은 가꾸자 ‘꿈을, 이루자 희망을’이다. 1939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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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경을 시조로 하고 정현득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연일정씨는 정원공파의 정현득이 임진왜란 때 전의현에 입향한 것으로 추정된다. 무과 집안인 정현득과 후손들의 묘소는 전의면 신정리 운주산에 있다. 연일정씨(迎日鄭氏) 시조인 정종은(鄭宗殷)은 진한(辰韓) 사로(斯盧) 취산진지부(嘴山珍支部) 촌장 지백호(智伯虎)의 원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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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에서 세종특별자치시를 거쳐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을 잇는 국가지원 지방 도로. 지방도 제96호는 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 신진도리 안흥항을 기점으로 세종특별자치시를 지나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의 중부고속도로 오창 나들목을 연결하는 국가지원지방도이다. 노선명은 태안~청원선이다. 세종 지역은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금암리에서 부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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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월하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사찰. 연화사는 1893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전통사찰이다. 1988년에 문화체육관광부 전통사찰로 지정되었고, 세종특별자치시 전통사찰 제2호로도 지정되어 있다. 연화사 창건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설화가 있다. 조선시대에 참선 수행을 하던 승려들이 공역(公役)[국가나 공공 단체가 지우는 의무]에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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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월하리 연화사에 봉안된 통일신라시대 불비상. 세종시 연화사 무인명불비상 및 대좌는 칠존불비상과 함께 발견되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모두 생천사지(生千寺址)라는 곳에서 가져온 것이라 한다. 생천사지는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기축명아미타불비상, 미륵보살 반가사유비상이 출토된 비암사와 산 하나를 두고 2㎞ 떨어진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생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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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봉암리에 있는 윤태풍의 처 경주최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일제강점기에 세운 정려. 열녀 경주최씨 정려는 경주최씨[1842~1866]의 열행을 기리고자 유림과 주민들의 노력으로 1930년에 건립된 유적이다. 경주최씨는 최규(崔珪)의 딸로 옛 대덕군 신탄진에서 태어나 파평윤씨 윤태풍(尹泰豊)에게 출가하였다. 후손들의 전언에 의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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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응암리에 있는 박기정의 처 광산김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 열녀 광산김씨 정려는 박기정(朴基鼎)[1792~1830]의 처 광산김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광산김씨는 광성군 김국광의 후손인 김구택(金龜澤)의 딸로, 무안박씨 가문으로 출가하였다. 광산김씨가 혼례를 치른 사흘 후 뜻밖에도 남편이 병을 얻어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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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석곡리에 있는 신이초의 처 기계유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조선 후기에 세운 정려. 열녀 기계유씨 정려는 거창신씨 신이초(愼爾初)[1663~1719] 처 기계유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기계유씨[?~1719]는 시남(市南) 유계(兪棨)[1607~1664]의 종손녀이다. 유계는 조선 중기 호서지역의 대표적인 서인 노론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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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내판리에 있는 김기철의 처 밀양손씨와 김성흠의 처 창녕성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정려. 열녀 밀양손씨 창녕성씨 정려는 안동김씨 가문의 고부 밀양손씨(密陽孫氏)와 창녕성씨(昌寧成氏)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것이다. ‘양세정려기(兩世旌閭記)’와 ‘열녀정려기(烈女旌閭記)’에 의하면 밀양손씨는 어려서부터 부덕을 익혀 부모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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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등곡리에 있는 김정의의 처 삼척진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조선 후기에 세운 정려. 열녀 삼척진씨 정려는 학생 김정의(金貞義) 처 삼척진씨(三陟陳氏)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열녀인 삼척진씨는 경주김씨 계림군파 17세손인 김정의와 혼인하였다. 두 사람이 약혼하자 곧 남편이 병이 들어 서둘러 혼례를 올렸다. 삼척진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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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양곡리에 있는 김환의 처 남양홍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정려. 열녀 남양홍씨 정려는 안동김씨 김환(金瓛) 처 남양홍씨[?~1736]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1738년(영조 14)에 명정을 받아 건립한 것이다. 남양홍씨는 홍처한(洪處漢)의 딸로, 양친을 잃고 남매가 의지하며 길쌈으로 생계를 이어 가다 이웃 마을에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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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보덕리에 있는 김진창의 처 나주나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조선 후기에 세운 정려. 열녀 나주나씨 정려는 강릉김씨 김진창(金震敞) 처 나주나씨(羅州羅氏)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명정을 받아 건립한 것이다. 나주나씨는 1600년 중반 현종대의 인물로, 나응수(羅應壽)의 딸이다. 나주나씨는 나이가 차자 강릉김씨 김진창에게 시집가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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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양곡리에 있는 김환의 처 남양홍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정려. 열녀 남양홍씨 정려는 안동김씨 김환(金瓛) 처 남양홍씨[?~1736]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1738년(영조 14)에 명정을 받아 건립한 것이다. 남양홍씨는 홍처한(洪處漢)의 딸로, 양친을 잃고 남매가 의지하며 길쌈으로 생계를 이어 가다 이웃 마을에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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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내판리에 있는 김기철의 처 밀양손씨와 김성흠의 처 창녕성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정려. 열녀 밀양손씨 창녕성씨 정려는 안동김씨 가문의 고부 밀양손씨(密陽孫氏)와 창녕성씨(昌寧成氏)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것이다. ‘양세정려기(兩世旌閭記)’와 ‘열녀정려기(烈女旌閭記)’에 의하면 밀양손씨는 어려서부터 부덕을 익혀 부모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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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응암리에 있는 박기정의 처 광산김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 열녀 광산김씨 정려는 박기정(朴基鼎)[1792~1830]의 처 광산김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광산김씨는 광성군 김국광의 후손인 김구택(金龜澤)의 딸로, 무안박씨 가문으로 출가하였다. 광산김씨가 혼례를 치른 사흘 후 뜻밖에도 남편이 병을 얻어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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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와촌리에 있는 유언하의 처 부안임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일제강점기에 세운 정려. 열녀 부안임씨 정려는 유언하(兪彦夏)[1749~1819] 처 부안임씨(扶安林氏)의 시어머니에 대한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887년(고종 24)에 명정을 받아 건립되었다. 부안임씨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임두칠(林斗七)의 손녀이자 임시윤(林時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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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등곡리에 있는 김정의의 처 삼척진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조선 후기에 세운 정려. 열녀 삼척진씨 정려는 학생 김정의(金貞義) 처 삼척진씨(三陟陳氏)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열녀인 삼척진씨는 경주김씨 계림군파 17세손인 김정의와 혼인하였다. 두 사람이 약혼하자 곧 남편이 병이 들어 서둘러 혼례를 올렸다. 삼척진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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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송용리에 있는 장응헌의 처 언양김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조선 후기에 세운 정려. 열녀 언양김씨 정려는 결성장씨 장응헌(張應軒)[1609~?]의 처 언양김씨(彦陽金氏)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지은 것이다. 언양김씨는 첨정(僉正) 김징(金澄)의 딸로, 16세에 장응헌에게 출가하여 시아버지와 남편을 정성껏 섬겼다. 1636년(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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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봉암리에 있는 윤태풍의 처 경주최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일제강점기에 세운 정려. 열녀 경주최씨 정려는 경주최씨[1842~1866]의 열행을 기리고자 유림과 주민들의 노력으로 1930년에 건립된 유적이다. 경주최씨는 최규(崔珪)의 딸로 옛 대덕군 신탄진에서 태어나 파평윤씨 윤태풍(尹泰豊)에게 출가하였다. 후손들의 전언에 의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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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부동리에 있었던 이성호의 처 의성김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 열녀 의성김씨 정려는 이성호(李聖浩) 처 의성김씨(義城金氏)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1980년에 건립한 것이다. 이성호는 예전에 있었던 정려 현판에는 이문근(李文根)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후손의 전언으로는 이문백(李文柏)이 맞다고 한다. 정려기에 의하면 의성김씨는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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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부동리에 있었던 이성호의 처 의성김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 열녀 의성김씨 정려는 이성호(李聖浩) 처 의성김씨(義城金氏)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1980년에 건립한 것이다. 이성호는 예전에 있었던 정려 현판에는 이문근(李文根)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후손의 전언으로는 이문백(李文柏)이 맞다고 한다. 정려기에 의하면 의성김씨는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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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송용리에 있는 장응헌의 처 언양김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조선 후기에 세운 정려. 열녀 언양김씨 정려는 결성장씨 장응헌(張應軒)[1609~?]의 처 언양김씨(彦陽金氏)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지은 것이다. 언양김씨는 첨정(僉正) 김징(金澄)의 딸로, 16세에 장응헌에게 출가하여 시아버지와 남편을 정성껏 섬겼다. 1636년(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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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노송리에 있는 장이상의 처 한양조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정려. 열녀 한양조씨 정려는 장이상(張彛相)[1816~1884]의 처 한양조씨(漢陽趙氏)[1812~1884]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것이다. 한양조씨는 조우규(趙禹圭)의 딸로, 결성장씨 가문에 출가하였다. 남편 장이상은 판윤 장전(張詮)의 10세손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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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봉산리에 있는 최지철의 처 전주이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조선 후기에 세운 정려. 열녀 전주이씨 정려는 최지철(崔之喆)[1759~1778]의 처 전주이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것이다. 전주이씨[1759~1779]는 이대형(李大亨)의 딸로, 이미 1769년(영조 45) 11세의 나이에 모친상을 당하여 3년 시묘살이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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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노호리에 있는 오상정의 처 진주정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일제강점기에 세운 정려. 열녀 진주정씨 정려는 오상정(吳尙井) 처 진주정씨(晉州鄭氏)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진주정씨는 문영공(文英公) 정수(鄭需)의 후손으로, 정계서(鄭繼緖)의 딸이다. 보성오씨(寶城吳氏) 오현필(吳賢弼)의 14세손 월송처사 오유립(吳裕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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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도담동에 있었던 전오복의 처 창녕성씨와 전오륜의 처 결성장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조선 후기에 세운 정려. 열녀 창녕성씨 결성장씨 정려는 창녕성씨와 결성장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것이다. 창녕성씨와 결성장씨는 각각 옥천전씨 전오복(全五福)[1714~1735]과 전오륜(全五倫)[1717~1753] 형제의 처로, 동서지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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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봉산리에 있는 최지철의 처 전주이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조선 후기에 세운 정려. 열녀 전주이씨 정려는 최지철(崔之喆)[1759~1778]의 처 전주이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것이다. 전주이씨[1759~1779]는 이대형(李大亨)의 딸로, 이미 1769년(영조 45) 11세의 나이에 모친상을 당하여 3년 시묘살이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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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노송리에 있는 장이상의 처 한양조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정려. 열녀 한양조씨 정려는 장이상(張彛相)[1816~1884]의 처 한양조씨(漢陽趙氏)[1812~1884]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것이다. 한양조씨는 조우규(趙禹圭)의 딸로, 결성장씨 가문에 출가하였다. 남편 장이상은 판윤 장전(張詮)의 10세손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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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석곡리에 있는 신이초의 처 기계유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조선 후기에 세운 정려. 열녀 기계유씨 정려는 거창신씨 신이초(愼爾初)[1663~1719] 처 기계유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기계유씨[?~1719]는 시남(市南) 유계(兪棨)[1607~1664]의 종손녀이다. 유계는 조선 중기 호서지역의 대표적인 서인 노론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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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에 있는 산등성이의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에 있는 낮은 통로. 고개는 대체로 산등성이를 넘는 곳을 말하며, 재[岾]·영(嶺)·마루·현(峴)·치(峙)·안부(鞍部)·티·항(項)이라고도 한다.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못한 옛날에 산으로 막힌 이웃 지역을 오가는 데 고개를 넘는 것이 가장 빠르고 편리하였다. 세종특별자치시는 차령산맥의 주맥과 지맥이 통과하는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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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영곡리 마을에서 음력 정월 열나흗날 마을 평안을 기원하기 위하여 나무에 지내는 마을제사.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영곡1리 마을에서는 수령 210년 정도 된 느티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지낸다. 주민들은 마을 평안과 화합을 기원한다.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영곡1리에서는 예전부터 샴제[샘제]를 지내었다. 영곡1리가 1반과 2반으로 분리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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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영곡리 한양말에서 매년 음력 정월 초승에 마을의 평안과 주민들의 단합을 기원하며 은행나무에 지내는 마을제사.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영곡2리 한양말에서 음력 정월 초승에 택일하여 은행나무에 제사를 지낸다. 은행나무는 평산신씨 중시조인 신준미가 낙향하면서 심었다고 전하여지며, 동네 가운데를 흐르는 내를 사이로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다. 목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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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속한 법정리. 영곡리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있는 법정리다. 관할구역이 방아다리, 호병골, 버드내골이 있는 영곡1리와 한양 등이 속한 영곡2리로 나누어진다. 자연마을 버드네골은 한양궁 남동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며 냇가에 버드나무가 많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양궁은 영구골 서쪽에 있는 마을로 중종 때 한림학사 신준미가 기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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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에 속한 법정리. 영당리(靈堂里)는 영성리·당리·상만곡리·하만곡리를 병합하고 ‘영성’과 ‘당리’의 이름을 따서 ‘영당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당마루마을·말미마을·마상곡마을·하만곡마을 등이 있다. 당마루마을은 마을에 산제당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말미마을은 말처럼 생긴 산이 마을 앞에 있다 하여 불리는 이름이며, 마상곡마을은 말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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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속한 법정리. 영대리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속하는 법정리다. 영대1리에는 둔대와 밤절 그리고 서태, 영대2리에는 우려울과 검배 그리고 삼박골 등의 마을이 있다. 동네가 10리가 넘도록 길다고 하여 영대(永垈)라고 불렀으며 길이 빛날 터라 하여 영대리(永垈里)라 하였다고 한다. 『한국지명총람』에서 영대리는 우려울 위쪽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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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영대리에서 매년 음력 정월 열나흗날에 마을과 주민들의 평안 및 안녕을 위하여 나무에 지내는 제사. 영대리 목신제의 유래와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마을 주민들은 왕버드나무와 느티나무 고목의 수령을 고려하여 수백 년 넘게 내려 왔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목신제를 올리는 고목은 영대2리 마을회관 바로 앞에 있는 우려울 왕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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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금암리에 있는 사립 전문 대학교. 건학 이념은 실용주의 정신에 입각한 철저한 직업 교육과 온전한 인격체 형성을 위한 전인교육을 통하여, 미래국가사회의 중추적 인재로서 다양화된 산업사회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직업의식이 투철한 창의적 전문인을 양성하고자 함이다. 교육 목표는 4가지로 직무수행 완성도 높은 전문 직업인 양성, 융·복합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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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암을 시조로 하고 천만리를 중시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입향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영양천씨(潁陽千氏)는 좌윤공파의 통덕랑공파가 부여 은산에서 살다가 금강 수운을 이용한 상업 활동과 파평윤씨와의 혼인을 인연으로 1900년경 남면 연기리로 입향하였다. 영양천씨는 중국에서 유래한 성씨이다. 시조 천암(千巖)은 명나라 때 도총장(都總將)과 판도승상(版圖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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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속한 법정리. 영치리(永峙里)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있는 법정리로 자연마을 안골, 불곡, 사양 등이 있다. 영재라는 고개가 있어 영재 또는 영티라고 부르다가 영치리가 되었다. 조선 후기까지 공주군 양야리면(陽也里面)에 속하였다. 1914년에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공주군 양아리면 와룡동, 내동, 사양리, 영티리를 합쳐 연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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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영치리 안골 마을에서 매년 음력 정월 열나흗날 오전에 느티나무 고목에 지내는 마을 제사. 매년 음력 정월 열나흘에 마을의 평안과 안녕을 위하여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영치리 안골 마을에서 마을의 수호신인 느티나무에 지내는 목신제이다. 신목인 느티나무는 수령 550년으로 세종특별자치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말엽에 벼락을 맞아 나뭇가지가 잘린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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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신달을 시조로 하고 윤려, 윤기환, 윤해를 각각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파평윤씨는 연서면 봉암리에 태위공파 윤기환, 전의면 신정리에 소정공파 윤해, 장군면 하봉리에 윤려 등이 입향하여 후손들이 세거하게 되었다. 파평윤씨(坡平尹氏)의 시조 윤신달(尹莘達)은 왕건을 도와 후삼국을 통일하는 데 공을 세워 고려 개국공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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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산학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마곡사의 말사. 영평사는 마곡사의 말사로, 문화재급 6동의 전통 건물과 3동의 토굴을 갖춘 대한민국 전통사찰 제78호 수행 도량(道場)[도를 얻으려고 수행하는 곳]이다. 스승이 머물고 있는 도량으로 영원하고 궁극적인 행복을 선사하는 곳이며, 또한 도량에서 추구해야 할 일이 바로 중생의 행복과 세계의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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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을 시조로 하고 김삼섭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예안김씨는 1600년대에 동면 합강리에 입향하여 살기 시작하였으며 입향조는 김삼섭이다. 시조 김상(金尙)은 고려 때 예안(禮安)의 호장(戶長)을 지냈다. 예안의 옛 이름이 선성(宣城)이었기 때문에 선성김씨(宣城金氏)라고도 한다. 동면 합강리 예안김씨 입향조는 좌부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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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을 시조로 하고 이영길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예안이씨는 동고파의 이영길이 17세기 중엽 전의현[현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송성리]에 입향하여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예안이씨는 전의이씨(全義李氏)에서 분적된 성씨이다. 전의이씨 시조인 이도(李棹)의 9세손 이혼(李混)[1252~1312]이 고려 원종 때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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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을 시조로 하고 이영길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예안이씨는 동고파의 이영길이 17세기 중엽 전의현[현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송성리]에 입향하여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예안이씨는 전의이씨(全義李氏)에서 분적된 성씨이다. 전의이씨 시조인 이도(李棹)의 9세손 이혼(李混)[1252~1312]이 고려 원종 때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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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에 속한 법정리. 예(禮)를 기르고[養] 배우는 곳이라 하여 예양리(禮養里)가 되었다. 예부터 충신(忠臣)이 많이 배출되었고, 오부자(五父子)가 충신인 박천붕(朴天鵬)과 아들들의 충신문(忠臣門)이 있다. 예양리에는 양골, 미꾸지, 산속골, 강촌, 물미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양곡(養谷)마을은 덕을 기르는 예양리의 중심 마을로, 인동·양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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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세종 지역 출신의 애국 순절지사. 오강표(吳剛杓)[1843~1910]는 1843년(헌종 9) 옛 충청남도 공주군 사곡면 월가리 도덕골에서 부친 오치국(吳治國)과 모친 파평윤씨(坡平尹氏)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오강표는 일제의 강요로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분노해서 “임금의 신자(臣子)가 되어 이러한 때에 구태여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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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문신. 오대곤(吳大坤)의 자는 풍지(豊之)로 충청북도 청원군 현도면 시목리(枾木里)에서 출생하였다. 15세기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에 입향하였던 보성오씨 오익승의 현손(玄孫)[증손자의 아들]으로 보성오씨 월송정 진사공파의 파조인 오유립(吳裕立)[1575~1658]의 인봉비(印峰碑) 건립에 관련이 있다. 오대곤의 본관(本貫)은 보성(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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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부강리의 용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오룡기」는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의 북쪽 넓은 평야를 용뜰이라 하는데 용뜰을 다섯 마리의 용이 서식하고 있던 곳이라 하여 오룡기라 부른다는 지명전설이다. 원래 명칭은 조선 영조[1724~1776] 후반까지 오룡정리(五龍亭里)라고 하였다는 점에서 지명유래가 오래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오룡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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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부강리의 용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오룡기」는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의 북쪽 넓은 평야를 용뜰이라 하는데 용뜰을 다섯 마리의 용이 서식하고 있던 곳이라 하여 오룡기라 부른다는 지명전설이다. 원래 명칭은 조선 영조[1724~1776] 후반까지 오룡정리(五龍亭里)라고 하였다는 점에서 지명유래가 오래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오룡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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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송곡리 일대에 있는 산.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송곡리에 있는 산으로, 조치원읍의 서북쪽에 위치한다. 오봉산(五峰山)[262.5m]은 산이 다섯 봉우리로 이루어져 붙여진 이름이다. 다섯 봉우리 중 제1봉은 목형봉(木形峰)으로 정상봉, 제2봉은 화형봉(火形峰)으로 우각봉 또는 평상봉, 제3봉은 토형봉(土形峰)으로 성주봉, 제4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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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세종 지역에 있던 교육기관. 오성의숙(五星義塾)은 1924년 충청남도 연기군 금남면 달전리(達田里)의 지루고개에서 개교되었다. 건립 재원은 달전리의 성주찬(成周讚)·성경운(成景運), 금남면 남곡리(南谷里)의 임병〇(林炳〇), 금남면 대박리의 송덕수(宋德秀)·유진영(柳鎭瀯)·조의보(趙義普)·성일룡(成一龍)·성주룡(成周龍)·이승철(李承哲)·임헌순(林憲順) 등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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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학자. 오유립(吳裕立)[1575~1658]의 본관(本貫)은 보성(寶城)이다. 초명은 효립(孝立), 자는 백원(百源), 호는 남산처사(南山處士)와 월송정(月松亭)이다. 15세기 부강면에 입향한 보성오씨(寶城吳氏)의 후손이자 부강면 보성오씨 월송정 진사공파의 파조이다. 오유립은 어려서부터 학식과 문장이 탁월하였다. 1613년(광해군 5)에 벼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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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유를 시조로 하고 전세승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옥천전씨는 1600년대 후반에 전세승(全世承)이 입향하여 거주하기 시작하였으며, 세거지인 남면 방축리[현 세종특별자치시 어진동·도담동 일대]에 후손들의 유적들이 있다. 옥천전씨의 도시조는 백제 십제공신 전섭(全聶)이다. 전섭의 27세손 전유(全侑)가 고려 충숙왕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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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도담동에 있었던 전오복의 처 창녕성씨와 전오륜의 처 결성장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조선 후기에 세운 정려. 열녀 창녕성씨 결성장씨 정려는 창녕성씨와 결성장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것이다. 창녕성씨와 결성장씨는 각각 옥천전씨 전오복(全五福)[1714~1735]과 전오륜(全五倫)[1717~1753] 형제의 처로, 동서지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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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고운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온빛초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나를 사랑하고 서로 공감하는 우리, 새롭게 생각하고 즐겁게 배우는 우리, 스스로 참여하고 함께 살아가는 우리’이다. 교육 비전으로는 따뜻한 감성과 밝은 지성의 민주학교를 제시하고 있다. 2014년 12월 세종특별자치시 교육청의 인증형 혁신학교로 지정되면서 2015년 3월 1일 18학급(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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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고운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온빛초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나를 사랑하고 서로 공감하는 우리, 새롭게 생각하고 즐겁게 배우는 우리, 스스로 참여하고 함께 살아가는 우리’이다. 교육 비전으로는 따뜻한 감성과 밝은 지성의 민주학교를 제시하고 있다. 2014년 12월 세종특별자치시 교육청의 인증형 혁신학교로 지정되면서 2015년 3월 1일 18학급(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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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고운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온빛초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나를 사랑하고 서로 공감하는 우리, 새롭게 생각하고 즐겁게 배우는 우리, 스스로 참여하고 함께 살아가는 우리’이다. 교육 비전으로는 따뜻한 감성과 밝은 지성의 민주학교를 제시하고 있다. 2014년 12월 세종특별자치시 교육청의 인증형 혁신학교로 지정되면서 2015년 3월 1일 18학급(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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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에 속한 법정동. 해밀동은 비가 온 뒤 맑게 갠 하늘이 있는 주거지역을 가리키는 한글 명칭이다. 해밀동은 올목마을로도 불리는데, 해밀동 지역의 고유어 전래 명칭 가운데 올목 고개를 활용한 것이다. 갈운리에 있는 올목 고개는 오리 목처럼 생겨 중요하고 좁은 곳을 의미한다. 해밀동 지역에는 원사골마을·양지말마을·김새마을 등의 자연 마을이 있었다. 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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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에 속한 법정리. 와촌리는 기와[瓦]와 관련이 있는 마을 명칭이다. 와촌리에 부유한 사람들이 살던 기와집에 많아 와촌(瓦村)으로 불리었다. 기와를 굽던 장소이기도 하다. 와촌1리·와촌2리·와촌3리에는 대실, 기와말, 은암, 중말, 효방동, 번암터, 밤나무골[栗村] 등 자연 마을이 있다. 대실(大室)마을은 와촌1리에서 가장 큰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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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와촌리 기와말 마을에서 음력 정월 열나흗날에 왕버드나무 고목에 개인이 지내는 제사. 매년 정월 열나흗날 밤에 마을의 안녕과 수해를 막기 위하여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와촌리 기와말 마을에서 마을 입구 삼거리에 있는 버드나무 고목에 지내는 마을 제사로 지내오다가 현재는 개인 치성으로 전승되고 있다. 1950년대 현재 치성을 올리는 성○○의 증조할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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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와촌리 기와말 마을에 있는 백제시대 유물산포지. 연서면소재지에서 남동쪽으로 약 4㎞ 지점에 연서면 와촌리 기와말 마을이 위치한다. 마을 입구에서 북쪽으로 인접한 지역에 옛 와촌초등학교가 있었으며, 백제토기 출토지는 와촌초등학교 뒤쪽으로 형성되어 있는 나지막한 능선의 하단부에 해당한다. 현재 유물산포지는 대부분 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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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와촌리 번암터 마을에서 매년 정월 열나흗날에 느티나무 고목에 지내는 마을제사. 와촌리 번암터 목신제는 흥덕장씨 집성촌인 번암터 마을에서 마을 수호신으로 여기는 수령 480년의 느티나무 고목에 매년 정월 열나흗날 마을의 평안과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이다. 번암터 느티나무는 풍흉을 점치는 나무로도 알려져 있다. 나뭇잎이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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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에서 지정한 보호수로, 버드나뭇과의 낙엽활엽 교목. 왕버들은 버드나뭇과에 속하는 낙엽활엽 교목이다. 학명은 Salix Chaenomeloides Kimura이고 한자 이름은 선류(腺柳)이다. 일부 문헌에는 학명을 Salix Glandulosa SEEM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껍질은 회갈색이고 깊게 갈라지는 특징을 보인다. 암수딴그루 나무로 꽃은 5~6월 중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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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의초수(全義椒水)는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관정리 상대부 마을, 차령산맥의 흑성산 줄기인 월조산 아래에 자리한다. 세종은 충청도 온양과 강원도 이천(伊川)의 온천에서 풍증(風症)과 눈병 치료를 위하여 봄철마다 여러 차례 온천 요양을 하였다.[세종 15년(1433) 봄 풍증 치료차 한 달 동안 온천 요양, 세종 23년(1441) 봄 어두운 곳은 지팡이를 짚고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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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지역의 특성과 인물 콘텐츠를 활용하여 창작한 뮤지컬극. 세종특별자치시 공연장상주단체육성사업의 일환으로 창작 및 기획 공연을 활용하였다. 기존 「왕의 물」이라는 작품을 재창작하여 발표한 것으로, 기존 작품이 연극이었다면 2016년 이후 총체극(總體劇)[전체 연극], 뮤지컬 등으로 확장하여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2016년 초연공연을 하였고 2018년 7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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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관정리 전의초수 일원에서 매년 개최되는 축제.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에서 열리는 왕의물 축제는 세종대왕의 눈병을 고친 신비의 약수로 불리는 ‘전의초수(全義椒水)[물맛이 후추와 같은 맛이 난다 하여 붙여진 이름]’를 전국에 널리 알리기 위하여 전의 왕의물 선양위원회가 주관하여 매년 열리는 행사이다. 세종(世宗)[1397~1450]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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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문인으로, 살아 있을 때 효자 정려를 받은 인물. 김충열(金忠烈)[1585~1668]은 충청도 전의현[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일대]에 세거한 강릉김씨 인물이다. 부친에 대한 지극한 효성이 알려져 살아 있을 때 효자 명정(銘旌)[충·효·열을 행한 사람에게 나라에서 주는 최고의 포상]을 받았다. 김충열은 강릉김씨 전의현 입향조인 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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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일원에서 생산되는 무로 담근 일본식 짠지. ‘단무지’는 일본식 무 짠지를 일컫는 말이다. 단무지는 일본에서 전래하여 오던 채소절임식품이 일제강점기 한국에 전파되어 대중화된 반찬류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다꽝 또는 다쿠앙으로 불리었으나 광복 후 ‘단맛 나는 무 짠지’라는 뜻의 ‘단무지’로 순화하여 부르고 있다. 세종특별자치시 지역에는 일제강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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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강점기 세종 지역의 역사. 조선총독부는 토지조사사업과 지방의 재정 안정화를 위하여 1914년 군·면 통폐합을 실시하였다. 전의군은 연기군에 병합되고 세종 지역은 연기군 동면·서면·남면·북면·금남면·전의면·전동면의 7개 면, 공주군 장기면·의당면·반포면, 충청북도 청주군 강외면·부용면으로 편제되었다. 이후 조치원역이 개통되어 급격히 성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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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신흥리에 있는 마을 박물관. ‘외딴말’은 박물관이 있는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신흥리 지역의 조선시대 지명인 신대리(新垈里)에 농기구를 만드는 대장간 등 집 몇 채만 있는 ‘외딴 마을’이라고 부르던 데서 유래한 명칭이다. 2015년 10월부터 주민들이 직접 전시대를 만들고 도색을 하면서 전시물품을 기증 받아 2016년 2월 22일 세종특별자치시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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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종촌동에 있는 장애인 종합 복지 센터. 세종특별자치시 종촌종합복지센터 내 5개 시설 중 하나이다. 장애인주간보호센터에서는 기초서비스 지원, 일상서비스 지원, 건강서비스 지원, 자립서비스 지원, 여가서비스 지원 등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세종특별자치시 장애인주간보호센터는 자비의 빛으로 나눔과 사랑을 실천하며 서로의 치유·자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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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속한 법정리. 용담리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있는 법정리이다. 용담1리에는 자연마을 비룡소, 용담2리는 자연마을 벌말[평촌] 등이 있다. 용담리는 용이 하늘로 올라간 큰 연못이 있다 하여 얻은 이름이다. 옛날에 맹사성이 이곳에 와서 낚시질을 하다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것을 보고 ‘비룡소’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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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에 속한 법정리. 달전리(達田里)는 용두미고룡골 또는 구능골이라고도 하며 능성구씨의 묘가 많다. 자연마을로는 암곡마을·사거리마을·용두미마을·상달전마을·하달전마을 등이 있다. 암곡마을은 바위가 많은 곳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사거리마을은 마을에 네 갈래 길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용두미마을은 용의 머리처럼 생긴 산 앞에 자리를 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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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용호리에서 매년 음력 10월 초 이튿날에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용산(龍山) 아래 마을에는 하룡·중용·상용 마을이 있다. 용호리 산신제는 하룡 마을 사람들이 매년 음력 10월 초 이튿날 추수에 대한 감사와 마을의 안녕과 집집마다 한 해 무사하기를 비는 산제이다. 마을 사람들이 전하는 말에는 200여 년 전부터 산제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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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용호리 용산에서 지낸 산제와 관련된 고문헌.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용호리에는 용산(龍山)이 있다. 옛날 도인이 동진강을 건너다 용산의 모습을 보고 산이 영산(靈山)이니 산제를 지내면 마을이 평안하고 자손이 번창할 것이라 하여 산제를 지내기 시작하였다. 실제로 마을에 액이 사라지고 집집마다 자식이 늘어나 자손이 번창하였다. 하룡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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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 일대에 있는 산. 용수산(龍帥山)[223.4m]은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에 있는 구릉성 산지로, 봉수대가 있던 곳이다.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용수산에 봉수대가 있었다는 기록이 『세종실록지리지』 149권 연기현편에 “봉화가 1곳이니 연기현의 남쪽 용수산이다[熢火一處 在縣南 龍帥山]”라고 실려 있다. 또 “동쪽으로 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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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성강리에서 발원하여 금강으로 합류하는 하천. 용수천은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의 중부 및 남부를 곡류하여 금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금강의 제1 지류이다. ‘용수(龍水)’는 계룡산(鷄龍山)을 닮은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용수천이 계룡산에서 발원하여 금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하천이다. 용수천 주변의 지질은 반상편마상화강암과 중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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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용암리에서 매년 정월 16일에 행하여지는 민속 놀이. 용암강다리기는 풍년을 기원하는 민속 놀이이다. 임진왜란 때 비암사 승려들이 왜군과의 전투에서 패하여 절과 마을이 파괴된 후 절과 마을을 지키기 위하여 힘을 기르자는 의미로 강다리기를 시작하였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주민들이 실제 경험담을 토대로 한 이야기도 전하여진다. 일제강점기 때 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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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용암리 마을에서 매년 음력 정월 열엿새날에 마을 느티나무 고목에 지내는 마을 제사. 용암리 둥구나무제는 매년 음력 정월 열엿새날에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용암리에서 느티나무에 지내는 목신제이다. 목신제를 지내고 난 후 줄다리기의 일종인 용암강다리기를 한다. 마을의 평안을 위하여 용암강다리기와 함께 치러지는 정월 세시풍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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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용암리 띠울마을에서 해마다 정월 열나흗날 느티나무 고목에 지내는 마을 제사. 매년 음력 정월 열나흗날 용암2리 띠울마을에서 수령 550년의 느티나무 고목에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올리는 마을 제사로,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 신목인 느티나무는 세종특별자치시 보호수 1982-3호로 지정되어 있다. 띠울 둥구나무제의 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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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용암리 주민들이 고복저수지 용신에게 지내는 마을 제사. 용암리 용왕제는 매년 정월 보름 저녁에 지낸다. 마을 부녀자들이 주관하는 제사로 1990년대에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을의 부녀자들은 용왕제를 지내기 위하여 유사를 정하고 마을 자금으로 제수를 마련한다. 제물은 돼지머리, 팥떡 한 시루, 삼색실과, 북어, 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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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용암리 주민들이 고복저수지 용신에게 지내는 마을 제사. 용암리 용왕제는 매년 정월 보름 저녁에 지낸다. 마을 부녀자들이 주관하는 제사로 1990년대에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을의 부녀자들은 용왕제를 지내기 위하여 유사를 정하고 마을 자금으로 제수를 마련한다. 제물은 돼지머리, 팥떡 한 시루, 삼색실과, 북어, 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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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용암리 주민들이 고복저수지 용신에게 지내는 마을 제사. 용암리 용왕제는 매년 정월 보름 저녁에 지낸다. 마을 부녀자들이 주관하는 제사로 1990년대에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을의 부녀자들은 용왕제를 지내기 위하여 유사를 정하고 마을 자금으로 제수를 마련한다. 제물은 돼지머리, 팥떡 한 시루, 삼색실과, 북어, 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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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에 속한 법정리. 용암리(龍岩里) 명칭은 금당산(金唐山)에 용거(龍居)하는 설산(雪山)이 있고, 용바위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유래한다. 고복저수지 중·상류에 위치한 용암리에는 위양골, 위줄, 검단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1983년 고복저수지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고복저수지 가운데에는 위양골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위양골은 조선시대에 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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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에 속한 법정리. 용암리는 장군면의 최북단에 있으며, 태산리·용현리와 맞닿아 있는 마을이다. 용암리(龍岩里)는 과거 용이 놀던 바위가 있다고 하여 용암(龍巖)이 되었다. 행정 구역이 개편되기 전의 이름인 상용리(上龍里)와 송암리(松岩里)에서 ‘용(龍)’과 ‘암(岩)’을 따와 명명되었다. 장군면 용암리는 백제시대 때 웅천, 신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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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금호리 검시마을 주민들이 음력 정월 14일에 용신에게 지내는 제사.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금호리 검시마을 샘제는 1월 14일 오후 3시경에 시작된다. 공동체 의례는 아랫말샘제-윗말샘제-할머니탑제-할아버지탑제 순으로 진행된다. 당일의 의례를 수행하기 위하여 검시마을 각 가정에서 1만 원을 거둔다. 거둔 돈을 가지고 공양주가 제수를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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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지역에서 마을 주민들이 정월에 대동샘의 용신에게 마을 평안, 농사 풍년, 주민 건강을 기원하는 제사. 세종 지역 일부에서는 샘제를 샘고사, 용왕제, 유왕제, 유황제 등으로 부른다.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샘제의 시원은 아주 오래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용 두 마리가 금성 우물 속에서 나타났다”고 하는 『삼국사기』의 용현정(龍現井) 기사에서 보듯이 우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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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속한 법정리. 용포리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있는 법정리이다. 행정리로는 용포1·2·3·4·5·6리가 있다. 1946년 큰 장마로 인하여 대평리(大平里)가 강으로 변하자 대평리 주민들이 용포리로 옮겨오는 동시에 시장도 함께 옮겨져서 그대로 대평장(大平場)이란 시장이 섰다. 금남면의 행정 중심 마을이다. 용포리(龍浦里)는 계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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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에 속한 법정리. 용현리는 장군면의 북부에 있고, 용암리·태산리·송학리·평기리와 맞닿아 있는 마을이다. 용현리는 용고개 아래에 있다고 하여 용현(龍峴)으로 불리게 되었다. 용현리라고 명명되었다. 용현리는 백제시대 때 웅천, 신라시대 때 웅주에 각각 속하여 있었다. 고려시대 때는 공주목에 해당하였다. 조선시대 후기에는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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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용현리에서 정월 열나흗날 저녁에 마을의 안녕을 위하여 마을 앞 길가에서 지내는 마을 제사. 용현리 주민들은 음력 정월 열나흗날 저녁에 마을 입구의 느티나무에서 노제(路祭)를 지낸다. 이 나무의 수령은 수백년이 되었다고 전한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한 해 마을에 사고가 없고 가정마다 복을 주십사하고 비는 노제에 부정한 것을 보거나 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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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에 속한 법정리. 용호리 명칭은 용(龍)이 호수(湖) 속에서 노는 형상에서 유래한다. 마을 뒷산의 산세가 용(龍)같이 생겼고 용산(龍山)이 미호천을 감싸면서 노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용호리에는 불암, 상룡, 중룡, 하룡, 소정이, 구대 등의 자연 마을이 있었다. 불암마을은 노적산 동북쪽에 있던 마을로, 부자가 많이 거주하여 부래미라고도 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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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용호리에서 매년 음력 10월 초 이튿날에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용산(龍山) 아래 마을에는 하룡·중용·상용 마을이 있다. 용호리 산신제는 하룡 마을 사람들이 매년 음력 10월 초 이튿날 추수에 대한 감사와 마을의 안녕과 집집마다 한 해 무사하기를 비는 산제이다. 마을 사람들이 전하는 말에는 200여 년 전부터 산제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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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용호리에서 매년 음력 10월 초 이튿날에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용산(龍山) 아래 마을에는 하룡·중용·상용 마을이 있다. 용호리 산신제는 하룡 마을 사람들이 매년 음력 10월 초 이튿날 추수에 대한 감사와 마을의 안녕과 집집마다 한 해 무사하기를 비는 산제이다. 마을 사람들이 전하는 말에는 200여 년 전부터 산제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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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용호리 용산에서 지낸 산제와 관련된 고문헌.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용호리에는 용산(龍山)이 있다. 옛날 도인이 동진강을 건너다 용산의 모습을 보고 산이 영산(靈山)이니 산제를 지내면 마을이 평안하고 자손이 번창할 것이라 하여 산제를 지내기 시작하였다. 실제로 마을에 액이 사라지고 집집마다 자식이 늘어나 자손이 번창하였다. 하룡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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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세종 지역에 정착한 창녕성씨 입향조이자 단종복위운동에 참여한 문신. 성희(成熺)[?~1464]는 창녕성씨로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달전리에 창녕성씨가 자리 잡게 된 계기를 마련한 인물이다. 5촌 조카 성삼문이 세조에게 처형된 후 일족이 모두 죽임을 당하는 과정에서 성희도 혹독한 고문을 당하였고 김해로 유배되었다가 풀려나 달전리에 터를 잡았다. 성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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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호탄리의 지명 유래에 대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호탄리 지명유래」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호탄리의 지명이 자연지형과 연관되어 있다는 지명전설이다. 1997년 금남향토지발간위원회에서 발간한 『금남면향토지』에 수록되어 있다. 임형수[남, 75세]가 구연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호탄리는 마을이 항아리 모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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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청라리에 있는 사립 박물관. 세종특별자치시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고 세종 지역 인근에서 발굴된 유적 4,500점을 소장하고 있는 향토박물관이다. 세종특별자치시 옛 연기군 지역의 향토 자료를 수집하고 기존의 마을 주택을 개조하여 1996년 8월 14일 연기향토박물관을 개관하였다. 세종특별자치시 연기향토박물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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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보통2리 주민들이 음력 1월 14일 용신에게 지내는 고사.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보통2리 주민들은 선대부터 샘고사를 지내어 왔다. 주민들 가운데 깨끗한 사람을 정하여 고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고사는 매년 음력 1월 14일 저녁에 마을 공동샘에서 지낸다. 샘고사 비용은 각 가정에서 거두어 충당하다가 2014년부터 마을 자금으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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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지역에서 마을 주민들이 정월에 대동샘의 용신에게 마을 평안, 농사 풍년, 주민 건강을 기원하는 제사. 세종 지역 일부에서는 샘제를 샘고사, 용왕제, 유왕제, 유황제 등으로 부른다.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샘제의 시원은 아주 오래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용 두 마리가 금성 우물 속에서 나타났다”고 하는 『삼국사기』의 용현정(龍現井) 기사에서 보듯이 우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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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정을 시조로 하고 이상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우봉이씨(牛峰李氏)는 감찰공파(監察公派) 이상(李翔)[1620~1690]이 17세기 중엽에 전의현[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관정리]에 입향하여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우봉이씨의 원조는 신라 때 공신이 된 이두창(李頭昌)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후 후손에 대한 기록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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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에 있는 우주관측소. 우리나라의 국가기준점[국토지리정보원의 측량에 의하여 설치한 위치와 표고 등이 표시된 점] 관리와 국가 간 장거리 측량, 대륙간 지각 변동을 관측하여 지진 등 자연재해 예방에 이바지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초정밀 우주측지기술을 구축하여 운영하고 있는 관측센터이다. 국내 최대의 직경 22m, 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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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에 거주한 문인. 이상(李翔)은 조선 후기 문인으로, 충청도 전의현[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일대]에 세거하는 우봉이씨가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숙종 대 정치적으로 서인 노론계 입장을 취하다 파직과 복직을 반복하고 끝내 기사환국(己巳換局)[1689년 남인이 희빈장씨의 소생인 원자 정호 세자의 책봉 문제로 서인을 몰아내고 재집권한 일]으로 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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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세종 지역 출신의 효자. 최중룡(崔重龍)[1543~1575]의 자는 운경(雲卿)으로 강화최씨(江華崔氏) 집안에 효의 뿌리를 내리게 한 인물이다. 중국에서 효자의 대명사로 불리는 순임금과 무왕, 주공의 이름을 본따 해동대순(海東大舜)이라 불렸다. 봉산리에 입향한 최완(崔浣)[1510~1570]의 아들이며, 천연기념물 제321호로 지정된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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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에 속한 법정리. 운당리(雲堂里)라는 명칭은 조선 후기에 마을의 평안을 위하여 불당에서 제사를 지낼 때마다 구름이 산처럼 밀려오는 곳이라는 데서 유래하였다고 전한다. 자연 마을로는 당말·불당골·양촌 등이 있다. 당말 또는 당리는 부락의 안위를 위하여 제사를 지내는 불당이 있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불당골은 운당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예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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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 운당리 당너머 마을에서 매년 음력 정월 열나흗날에 마을 평안을 기원하며 느티나무에 지내는 마을공동 제사. 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 운당리 당너머에서 매년 음력정월 열나흗날에 마을 가운데 있는 둥구나무[느티나무]에서 목신제를 지낸다. 마을에서는 목신제를 수살제라고도 부른다. 예전에는 남자들이 목신제를 유교식으로 지냈으나 6·25전쟁 이후부터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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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 운당리 당너머 주민들이 대동샘의 용신에게 지내는 마을 제사. 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 운당2리 당너머 용왕제는 수살제와 더불어 운당리 당너머 마을에서 전승되는 공동체 의례이다. 시원은 알 수 없으나 선대로부터 내려오는 제의라고 한다. 마을 주민들은 매년 정월 열나흘 저녁에 마을 가운데에 있는 대동샘에서 샘제를 지낸다. 운당리 당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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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 운당리 운강 마을 주민들이 대봉산 산신에게 마을 평안과 산짐승 피해 예방을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 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 운당리 운강 마을의 산신제는 산짐승 때문에 발생하는 피해 예방 목적으로 100여 년 전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산신제는 매년 정월 14일 밤에 지내었으나 정초에 상사 등 궂은 일이 잦아지면서 일자를 초사흘로 옮겨 지내게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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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문인으로, 살아 있을 때 효자 정려를 받은 인물. 김충열(金忠烈)[1585~1668]은 충청도 전의현[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일대]에 세거한 강릉김씨 인물이다. 부친에 대한 지극한 효성이 알려져 살아 있을 때 효자 명정(銘旌)[충·효·열을 행한 사람에게 나라에서 주는 최고의 포상]을 받았다. 김충열은 강릉김씨 전의현 입향조인 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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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세종 지역 출신의 문신이자 효자. 김익정(金益精)[?~1436]의 자는 문비(文斐), 호는 운암(雲庵)이다. 경기도 개성군 송도면에서 태어난 김익정은 1396년(태조 5) 식년문과에 장원 급제한 뒤 삼사의 요직을 역임하였다. 태종의 의중을 잘 알아 세종의 치세를 준비하였다. 성종조에 좌리공신(佐理功臣)으로 복창군(福昌君)에 봉하여졌다. 김익정은 김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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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과 전의면 일대에 걸쳐 있는 산. 운주산(雲住山)[459.7m]은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미곡리·청송리·봉대리와 전의면 동교리·노곡리에 있는 산으로, 세종특별자치시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전의면과 전동면 일대는 백제·신라 경계 지역으로, 다수의 산성이 세종 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된 곳이다. 운주산성은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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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과 전동면에 걸쳐 있는 삼국시대 포곡식 산성. 세종특별자치시의 동북쪽에서 서남쪽으로 차령산맥이 지나면서 거기서 갈라져 나온 지맥들이 전의면과 전동면을 남북으로 지나고 있는데 이들 차령산맥 지맥 사이에 고려산, 운주산, 금성산이 자리하고 있다. 고려산 등 산 정상부에는 산성이 축조되어 있다. 고려산에는 고려산성, 증산에는 증토산성, 운주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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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청송리에 있는 삼국시대 산성. 운주산성은 전동면에 있는 산성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성에 오르면 주변의 전망이 매우 좋다. 동쪽으로 충청북도 청주시가 한눈에 들어오고 남쪽으로는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과 미호천 주변의 넓은 충적평야, 서쪽은 전의읍내와 전동면 일대, 북쪽으로는 충청남도 천안의 남쪽 일대가 조망된다. 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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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장수군에서 발원하여 세종특별자치시를 거쳐 서해로 흘러드는 하천. 금강은 남한에서 한강과 낙동강 다음으로 가장 큰 하천이다. 본류는 전라북도 장수군의 신무산(神舞山)에서 발원하여 여러 지류와 함께 북쪽으로 흐른다. 충청북도 남서부 지역에서는 북서쪽으로 물길을 바꾸고 지류들과 합쳐져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에 이르러서는 남서 방향으로 물길이 바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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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금암리에 있는 사립 전문 대학교. 건학 이념은 실용주의 정신에 입각한 철저한 직업 교육과 온전한 인격체 형성을 위한 전인교육을 통하여, 미래국가사회의 중추적 인재로서 다양화된 산업사회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직업의식이 투철한 창의적 전문인을 양성하고자 함이다. 교육 목표는 4가지로 직무수행 완성도 높은 전문 직업인 양성, 융·복합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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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에 속한 법정리. 원리는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鳥致院邑)에 있는 법정리이며 원1리[원리 남부]와 원2리[원리 북부]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원리는 조치원읍의 중심인 조치원역을 중심으로 알파벳 티[T] 자 구조로 형성되었으며 시장과 상권이 발달하여 있다. 원리는 조선시대 연기현 침산리 지역의 일부로, 연기현과 청주목의 경계 지점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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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에 속한 법정리. 명학리는 마을과 주변의 형상이 학(鶴)과 닮아 원명학 또는 알봉골로 불리었다. 마을은 학이 앉아 있는 형국이고 뒷산의 바위는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다. 주변은 학이 날아가는 형국으로 뒷산은 머리에 해당하고 양쪽 산은 날개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명학리에는 명학, 황우재, 외태, 내태, 서당말, 원당골 등 자연 마을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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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명학리에 있던 정자.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명학리에 있던 원모정(遠慕亭)은 1934년 황우산(黃牛山) 아래 부강이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에 세워져 있던 정자이다. 부강포구의 만석꾼으로 널리 알려진 송암(松菴) 김재식(金在植)[1860~1928]을 기리기 위하여 아들 김학현(金學賢)이 건립하였다. 김재식의 본관은 경주로, 부강의 경주김씨는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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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속한 법정리. 원봉리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있는 법정리다. 원봉1리와 2리에는 반개[반포, 번개], 배골[주곡], 오룡골[오룡동, 오룡], 행정[은계], 향교골[향교동, 교동] 등의 마을이 있다. 산봉우리가 둥그스름한 두리봉이 있어서 원봉(圓峰)이라 하였다고 한다. 금남면 원봉리(元峰里)는 조선 후기 때 공주목 반포면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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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에 속한 법정리. 원성리(元省里)는 장항리·고서리·삼성당리·원당리를 병합하고 ‘원당’과 ‘삼성당’의 이름을 따서 원성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노루목마을·고성마을·대뿌리마을 등이 있다. 노루목마을은 마을 뒷산의 모양이 노루의 목과 같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고성(古城)마을은 노루목 옆에 있는 마을로 뒷산이 성(城)을 둘러싼 것과 같다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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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원성리 주민들이 비보 목적으로 조성한 마을숲. 느티나무숲 또는 대허리숲으로 불리는 전의면 원성리 마을숲은 마을 진입로 인근에 조성되어 있다. 조천과 덕현천의 합류 지점에 위치한 숲은 고목과 느티나무 10여 그루로 이루어져 있다. 주민들은 숲이 마을의 지기(地氣)를 가둘 목적으로 조성된 수구막이라고 한다.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원성리 느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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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원성리 주민들이 비보 목적으로 조성한 마을숲. 느티나무숲 또는 대허리숲으로 불리는 전의면 원성리 마을숲은 마을 진입로 인근에 조성되어 있다. 조천과 덕현천의 합류 지점에 위치한 숲은 고목과 느티나무 10여 그루로 이루어져 있다. 주민들은 숲이 마을의 지기(地氣)를 가둘 목적으로 조성된 수구막이라고 한다.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원성리 느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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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 일대에 있는 산. 세종특별자치시에 있는 전월산과 함께 시민들에게 휴식과 행복도시의 전망을 제공하는 구릉성 산지이다. 원수산은 차령산맥의 정기를 이어받은 명산으로, 일명 부모산 또는 형제산이라 불린다. 고려 때인 1293년 몽골 합단적이 침입해 왔을 때 연서면 쌍전리에서 1차 전투를 하여 대패한 합단적이 금강을 건너 도망갔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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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 일대에 있는 산. 세종특별자치시에 있는 전월산과 함께 시민들에게 휴식과 행복도시의 전망을 제공하는 구릉성 산지이다. 원수산은 차령산맥의 정기를 이어받은 명산으로, 일명 부모산 또는 형제산이라 불린다. 고려 때인 1293년 몽골 합단적이 침입해 왔을 때 연서면 쌍전리에서 1차 전투를 하여 대패한 합단적이 금강을 건너 도망갔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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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 원수산에서 추수 감사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원수산(元帥山)[254m] 아래 갈운리의 원사골, 양화 2리의 꿩말·상촌·월룡·희여물[백동] 사람들이 매년 동짓달 초이튿날[음력 11월 2일] 자시[오후 11시~오전 1시]에 추수에 대한 감사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산제이다.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옛날 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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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 원수산에서 지낸 산제와 관련된 고문헌.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 원수산(元帥山)[254m] 중턱에 위치한 산제당에서 매년 동짓달 초이틀[음력 11월 2일] 자시에 마을의 안녕과 동네사람 모두가 한 해 무사하기를 원수산 산신께 비는 산제가 이루어졌다. 수백 년 전부터 이루어진 전통 세시로, 원수산 산신제를 기록한 자료가 원수산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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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종촌동에 있는 장애인 종합 복지 센터. 세종특별자치시 종촌종합복지센터 내 5개 시설 중 하나이다. 장애인주간보호센터에서는 기초서비스 지원, 일상서비스 지원, 건강서비스 지원, 자립서비스 지원, 여가서비스 지원 등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세종특별자치시 장애인주간보호센터는 자비의 빛으로 나눔과 사랑을 실천하며 서로의 치유·자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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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계를 시조로 하고 이한필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이반계(李攀桂)를 시조로 하는 원주이씨 원성군파는 이한필(李漢弼)[1512~?]이 1500년대 지금의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봉산리 윗말에 정착한 이래 현재까지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원주이씨의 시조는 이반계이다. 경주이씨 시조 이알평(李謁平)의 원세손(遠世孫)이며, 고려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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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에 속한 법정리. 『연기군의 지명유래』에 의하면 월하리는 민후건의 호 월하(月河)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조선 후기의 세도가(勢道家) 민후건이 정치를 접고 풍류를 즐기면서 보냈는데 세월 좋은 마을이란 뜻에서 월동(月洞)이라 불렀다. 월하리에는 가래터, 구서원, 전동, 월동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가래터마을은 마을의 지형이 논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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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에서 연동면 명학리를 잇는 미호천의 교량. 월산교는 2007년 국가지원 지방도 96호선의 미호천 하류에 건설된 교량이다.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월산리는 2012년 7월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와 누리리로 편입·분리되었다. 월산교는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에서 연동면 명학리를 잇는 교량으로 국가지원 지방도 96호선에 있는 교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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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학자. 오유립(吳裕立)[1575~1658]의 본관(本貫)은 보성(寶城)이다. 초명은 효립(孝立), 자는 백원(百源), 호는 남산처사(南山處士)와 월송정(月松亭)이다. 15세기 부강면에 입향한 보성오씨(寶城吳氏)의 후손이자 부강면 보성오씨 월송정 진사공파의 파조이다. 오유립은 어려서부터 학식과 문장이 탁월하였다. 1613년(광해군 5)에 벼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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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문신이자 효자. 민후건(閔後騫)[1571~1652]의 본관은 여흥(驪興)이고, 호는 월하(月河)이다. 민후건은 사마시에 입격한 이후 공조정랑으로서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정사원종공신이 되었고, 낙향 후 병자호란 때 연기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키는 등 적극적인 향촌 활동을 전개하였다. 평소 효성이 지극하던 민후건은 26세 때 모친이 병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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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월하리에 있는 민후건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조선 후기에 세운 정려. 효자 민후건 정려는 민후건(閔後騫)[1571~1652]의 충효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1708년(숙종 34)에 명정을 받아 건립되었다. 민후건은 여흥(驪興)[현 여주] 사람이다. 자는 효윤(孝胤), 호는 월하(月河)이다. 민후건은 대사헌 청백리 민휘(閔暉)의 5대손이며,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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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에 속한 법정리. 『연기군의 지명유래』에 의하면 월하리는 민후건의 호 월하(月河)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조선 후기의 세도가(勢道家) 민후건이 정치를 접고 풍류를 즐기면서 보냈는데 세월 좋은 마을이란 뜻에서 월동(月洞)이라 불렀다. 월하리에는 가래터, 구서원, 전동, 월동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가래터마을은 마을의 지형이 논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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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에서 발원하여 미호천으로 합류하는 하천. 월하천은 연서면에서 금강의 제1 지류인 미호천으로 합류하여 금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조선 후기 세도가(勢道家)[정치 권력을 쥐고 휘두르는 사람 또는 집안] 민후건(閔後蹇)이 한양을 버리고 초야에 묻히기 위하여 마을을 만들고 풍류를 벗 삼아 살았다고 하여 세월 좋은 마을이라는 뜻에서 ‘월동(月洞)’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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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학자. 진시책(陳時策)[1831~1906]은 경서(經書)와 사기(史記)에 능통하고 역학(易學)에 특히 통달한 인물로, 개항기 고종에 의하여 ‘거사(居士)’라 호칭된 학자이다. 진시책은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반곡리에서 출생하였다. 본관(本貫)은 여양(驪陽), 호는 위정(葳汀)이다. 진시책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재주가 뛰어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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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지역에서 공자의 사상과 관련된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제반. 세종 지역의 유교문화는 조선시대 향교와 서원 중심으로 형성·발전되었으며, 지역사회 형성과 유지에 크게 기여하였다. 유학사상을 바탕으로 충절과 충의를 강조하며, 향약을 통한 지역공동체 형성과 운영에도 기여한다. 현재 세종특별자치시를 대표하는 상당수의 역사 인물들은 이러한 유교의 사상적 기반 아래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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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심중리에 있는 자동차용 전기장치 제조기업. ‘최고의 기술력으로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는 신념으로 자동차 문화를 선도하는 미래지향적인 기업, 고객으로부터 신뢰받는 기업을 실현하고자 한다. 1987년에 참피온 스파크플러그코리아(주)란 상호로 당시 세계 최대의 다국적 점화장치 제조회사이던 미국의 챔피언 스파크플러그사와 합작법인으로 설립되었다.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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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에 묘를 쓴 문신. 김경여(金慶餘)[1596~1653]의 자는 유선(由善), 호는 송애(松厓), 시호(諡號)[제왕이나 재상, 유현들이 죽은 뒤에 그들의 공덕을 칭송하여 붙인 이름]는 문정(文貞)이다. 조선 후기 문신으로, 병자호란 당시 인조를 호종(扈從)[임금이 탄 수레를 호위하여 따르던 일]하여 남한산성으로 피란하였다가 이듬해 청나라에 항복한 뒤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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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진만(兪鎭萬)[1912~1966]은 상해한인독립운동자청년동맹을 개조하여 한국독립당을 조직하는 데 협조하였다. 유진만은 만주사변 직후 상해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모색하였다. 1932년 1월 서재현(徐載賢), 유상근(柳相根, 兪相根) 등과 함께 상해한인독립운동자청년동맹을 개조하여 한국독립당 청년 부문 별동대로서 상해한인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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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시풍(劉時豊)[1869~1947]은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갈운리[현 세종특별자치시] 출신으로 연기군 남면의 횃불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유시풍은 1919년 4월 1일 옛 연기군 남면에서 횃불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연기 지역에서는 3월 23일부터 야간에 횃불을 올리고 대한독립만세를 고창(高唱)[노래·구호·만세 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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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지역에서 마을 주민들이 정월에 대동샘의 용신에게 마을 평안, 농사 풍년, 주민 건강을 기원하는 제사. 세종 지역 일부에서는 샘제를 샘고사, 용왕제, 유왕제, 유황제 등으로 부른다.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샘제의 시원은 아주 오래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용 두 마리가 금성 우물 속에서 나타났다”고 하는 『삼국사기』의 용현정(龍現井) 기사에서 보듯이 우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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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문신. 홍억(洪檍)[1722~1809]은 조선 후기 한성부판윤, 공조판서,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홍억의 할아버지는 호조참판 홍숙(洪璛)이다. 아버지는 충청도관찰사 홍용조(洪龍祚)이며 어머니는 이창령(李昌岭)의 딸이다. 홍억은 1753년(영조 29) 알성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지평으로 관직에 나가 전적, 정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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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진광(兪鎭廣)[1883~1944]은 충청남도 연기군 서면 기룡리[현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기룡리] 출신으로 기룡리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유진광은 1919년 3월 30일 충청남도 연기군 서면 기룡리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서면의 3월 23일 대평리시장을 이용한 만세운동에 이어 30일에도 면내 거의 모든 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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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진만(兪鎭萬)[1912~1966]은 상해한인독립운동자청년동맹을 개조하여 한국독립당을 조직하는 데 협조하였다. 유진만은 만주사변 직후 상해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모색하였다. 1932년 1월 서재현(徐載賢), 유상근(柳相根, 兪相根) 등과 함께 상해한인독립운동자청년동맹을 개조하여 한국독립당 청년 부문 별동대로서 상해한인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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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진만(兪鎭萬)[1912~1966]은 상해한인독립운동자청년동맹을 개조하여 한국독립당을 조직하는 데 협조하였다. 유진만은 만주사변 직후 상해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모색하였다. 1932년 1월 서재현(徐載賢), 유상근(柳相根, 兪相根) 등과 함께 상해한인독립운동자청년동맹을 개조하여 한국독립당 청년 부문 별동대로서 상해한인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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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진만(兪鎭萬)[1912~1966]은 상해한인독립운동자청년동맹을 개조하여 한국독립당을 조직하는 데 협조하였다. 유진만은 만주사변 직후 상해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모색하였다. 1932년 1월 서재현(徐載賢), 유상근(柳相根, 兪相根) 등과 함께 상해한인독립운동자청년동맹을 개조하여 한국독립당 청년 부문 별동대로서 상해한인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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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에 속한 법정리. 유천리(柳川里)는 오류동·다운천리·어천리 등을 병합하면서 오류동과 다운천리의 이름을 따서 유천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오릿골·안오릿골·느내·다우내마을 등이 있다. 오릿골마을은 오류동이라고도 하며 전의읍에서 5리가 된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안오릿골마을은 오릿골 안쪽에 있어 안오릿골이라 하였고 내오류동이라고도 불린다. 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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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지역에서 마을 주민들이 정월에 대동샘의 용신에게 마을 평안, 농사 풍년, 주민 건강을 기원하는 제사. 세종 지역 일부에서는 샘제를 샘고사, 용왕제, 유왕제, 유황제 등으로 부른다.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샘제의 시원은 아주 오래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용 두 마리가 금성 우물 속에서 나타났다”고 하는 『삼국사기』의 용현정(龍現井) 기사에서 보듯이 우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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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송용리에 있는 조선 후기 결성장씨 문중 서당. 육영재(毓英齋)는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결성장씨(結城張氏) 문중에서 1600년대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는 서당으로, ‘송동서숙(松東書塾)’, ‘송동숙(松洞塾)’, ‘송남서당(松男書堂)’ 등으로도 불린다. 결성장씨 문중의 전언에 의하면 장훈(張訓)이 그의 세 동생과 함께 송곡리에 정착한 후 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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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송용리에 있는 조선 후기 결성장씨 문중 서당. 육영재(毓英齋)는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결성장씨(結城張氏) 문중에서 1600년대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는 서당으로, ‘송동서숙(松東書塾)’, ‘송동숙(松洞塾)’, ‘송남서당(松男書堂)’ 등으로도 불린다. 결성장씨 문중의 전언에 의하면 장훈(張訓)이 그의 세 동생과 함께 송곡리에 정착한 후 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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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에 묘를 쓴 무신. 윤각(尹慤)[1665~1724]은 조선 후기 무신으로,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여성(汝誠)이다. 비변사낭관, 도총부도사, 초계군수, 전주영장, 전라도수군절도사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특히 함경남도 병마절도사가 되어 백두산 경계를 사정(査定)[조사하거나 심사하여 결정함]하고, 백두산 남쪽 산천의 형태를 그려 올린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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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도담동에 있는 조선 후기 윤각의 묘소. 충민공 윤각(尹慤)[1665~1724]은 자가 여성(汝誠) 호는 창동(蒼東)이다. 진사 익상(翊商)의 아들이다 1697년에 형 윤원과 함께 공주 요당으로 이거한 후 2년 뒤인 1699년(숙종 25) 33세로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고, 수군절도사·함경도병마절도사·삼도수군통제사를 거쳐 총융사가 되는 등 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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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상억(尹相億)[1899~1992]은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 신정리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윤상억은 1919년 3월 13일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 신정리에서 이수욱(李秀郁) 등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 운동을 전개하였다. 신정리 만세 시위는 이수욱이 광무황제(光武皇帝)의 인산(因山)[장례]을 다녀온 뒤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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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상억(尹相億)[1899~1992]은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 신정리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윤상억은 1919년 3월 13일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 신정리에서 이수욱(李秀郁) 등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 운동을 전개하였다. 신정리 만세 시위는 이수욱이 광무황제(光武皇帝)의 인산(因山)[장례]을 다녀온 뒤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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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상원은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 신정리 출신으로 신정리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윤상원(尹相元)[1895~1973]은 1919년 3월 13일 옛 연기군 전의면 신정리에서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윤상원은 이수욱(李秀郁)·추경춘(秋敬春) 등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 운동을 계획하고, 목판(木版)으로 태극기 150여 장을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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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상은(尹相殷)[1892~1938]은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 신정리 출신으로 신정리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윤상은은 1919년 3월 13일 신정리에서 이수욱(李秀郁) 등과 함께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수욱 등은 3월 13일 전의 읍내 장날에 독립만세를 부르기로 결의하였다. 윤상은은 이수양·정상복·이규영 등과 더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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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상억(尹相億)[1899~1992]은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 신정리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윤상억은 1919년 3월 13일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 신정리에서 이수욱(李秀郁) 등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 운동을 전개하였다. 신정리 만세 시위는 이수욱이 광무황제(光武皇帝)의 인산(因山)[장례]을 다녀온 뒤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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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자명(尹滋明)[1868~?]은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 신정리 출신으로 전의면 읍내 시장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윤자명은 1919년 3월 13일 옛 전의면 신정리에서 이수욱(李秀郁)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수욱 등은 3월 13일 전의 읍내 장날에 독립만세를 부르기로 결의하였다. 윤자명은 윤자벽과 함께 신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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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자벽(尹滋壁)[1884~1930]은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 신정리 출신으로 전의면 읍내리 전의시장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윤자벽은 1919년 3월 13일 옛 전의면 읍내리 전의시장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운동을 펼쳤다. 전의면 신정리에 거주하는 이수욱(李秀郁)은 서울에서 고종(高宗)의 인산(因山)[장례]에 참여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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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자훈(尹滋勳)[1894~1936]은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 신정리 출신으로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 읍내리 전의시장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윤자훈은 1919년 3월 13일 옛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 읍내리 전의시장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윤자훈은 서울에서 고종(高宗)의 인산(因山)[장례]에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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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지역 출신의 희극 작가. 윤조병(尹朝炳)[1939~2017]은 1939년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에서 출생하였다. 1963년 영화 전문지 월간 『국제영화』의 시나리오 공모에서 「휴전일기」가 당선되며 등단하였다. 문학계에서는 유치진, 차범석의 계보를 잇는 한국 사실주의 희곡의 계승자로 평가되었다. 윤조병의 초기 대표작 「참새와 기관차」와 「농토」는 각각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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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열녀. 경주최씨(慶州崔氏)는 윤태풍(尹泰豊)의 부인으로, 남편은 파평윤씨이다. 경주최씨는 윤태풍에게 출가하여 시부모를 효로 섬겼다. 남편이 병들자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약을 사서 간병하였으나 남편이 죽자 3년 시묘살이를 하였는데 밤마다 호랑이가 나타나 호위를 하였다는 효열부이다. 윤태풍 처 경주최씨의 아버지는 최규(崔珪)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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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자벽(尹滋壁)[1884~1930]은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 신정리 출신으로 전의면 읍내리 전의시장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윤자벽은 1919년 3월 13일 옛 전의면 읍내리 전의시장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운동을 펼쳤다. 전의면 신정리에 거주하는 이수욱(李秀郁)은 서울에서 고종(高宗)의 인산(因山)[장례]에 참여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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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영대리에 있는 밤절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이괄의 난을 피해 당시 충청도 연기군 금남면 금병산(金屛山)[372m]을 지나게 된 인조(仁祖)가 한 사찰에 들렀다가 밤으로 후한 대접을 받고 밤절[율사(栗寺)]이라는 이름과 상을 내렸다고 전해지는 사찰설화이다. 1997년 금남면향토지발간위원회에서 발간한 「금남면향토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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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고운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으뜸초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스스로 진로를 개척하는 자주적인 학생, 협력과 나눔으로 배움을 즐기는 창의적인 학생, 문화를 이해·향유·발전시키는 교양 있는 학생, 배려와 나눔으로 더불어 사는 학생’이다. 교훈은 ‘착하고 아름답게’이다. 비전은 ‘아름다운 꿈을 가꾸는 행복 으뜸 교육’이다. 2015년 3월 1일 으뜸초등학교로 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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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고운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으뜸초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스스로 진로를 개척하는 자주적인 학생, 협력과 나눔으로 배움을 즐기는 창의적인 학생, 문화를 이해·향유·발전시키는 교양 있는 학생, 배려와 나눔으로 더불어 사는 학생’이다. 교훈은 ‘착하고 아름답게’이다. 비전은 ‘아름다운 꿈을 가꾸는 행복 으뜸 교육’이다. 2015년 3월 1일 으뜸초등학교로 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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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고운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으뜸초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스스로 진로를 개척하는 자주적인 학생, 협력과 나눔으로 배움을 즐기는 창의적인 학생, 문화를 이해·향유·발전시키는 교양 있는 학생, 배려와 나눔으로 더불어 사는 학생’이다. 교훈은 ‘착하고 아름답게’이다. 비전은 ‘아름다운 꿈을 가꾸는 행복 으뜸 교육’이다. 2015년 3월 1일 으뜸초등학교로 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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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산울리에 있던 고개. 은고개는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산울리에 있는 고개로, 은과 관련된 전설이 있다. 조선 후기에 곽정승이 은고개에 선친의 묘를 마련하고 집에 들어갈 때 따라오던 승려가 지금 당신이 끼고 있는 은가락지를 부처에게 시주하면 자손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릴 것이라 하였다. 곽정승은 끼고 있던 은가락지를 승려에게 시주하고 선친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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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7월 연기 지역 주민들이 학살 당한 사건. 국민보도연맹은 좌익 활동을 한 전력이 있는 사람들을 전향시키려는 목적에서 창설되었다. 당시 이승만 정권에서는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북한군에 협조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군과 경찰을 동원하여 국민보도연맹원을 색출하고 학살을 자행하였다. 조치원경찰서는 6.25전쟁이 발발한 직후 연기 지역 주민 대상으로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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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에 속한 법정리. 은용리는 장군면의 중서부에 있고, 하봉리·도계리·산학리·금암리와 맞닿아 있는 마을이다. ‘은용(隱龍)’이라는 명칭은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노은리·어은리·와룡리에서 ‘은’과 ‘룡’을 따와 만들어졌다. 또한 용이 땅속에 누워 있다 하여 은룡이라 불리었다. 옛날 지혜로운 장부(丈夫)가 있었는데 용과 지혜를 겨루는 내기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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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은용리에 있는 저수지. 바탕골저수지는 본래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은용리에 속하여 있던 저수지였으나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 출범으로 인하여 장군면으로 속하게 되었다. 바탕골저수지의 제방 구조는 흙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홍수 조절을 위하여 여수로(餘水路)[수력 발전소나 저수지 등에서 물이 일정량을 넘을 때 여분의 물을 빼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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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은용리에 있는 저수지.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은용리에 속하여 있던 저수지였으나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 출범으로 인하여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으로 변경되었다. 은룡저수지의 제방 구조는 흙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홍수 조절 구조는 여수토(餘水吐)[펌프로 준설한 토사를 물과 함께 배사관을 통하여 사토장으로 보내는 출구]로 구성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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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은용리에서 마을 내 공동 재산을 관리하고 복리를 증진시키기 위하여 발생한 농촌 자치 조직. 동계(洞契)는 촌락의 여러 사람들이 모여 공동의 이익을 증진시키고 상호간 부조를 위하여 공유 재산을 관리하고자 조직된 자치 결사체이다. 기록을 살펴보면 사유 재산 개념이 생겨나고 농사를 통한 정착 생활이 일반화되면서 마을 단위로 공동 경비를 부담할 필요성이 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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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은용리의 성인 남자들이 협력해서 농사를 짓는 촌락 단위의 공동노동조직. 두레는 중남부 지역 논농사 지대에서 농촌 사회의 협력과 노동력 집약을 목적으로 마을 성인 남자 중심으로 조직된 공동 노동체 조직이다. 두레를 행한 노동의 대상은 모내기·물대기·김매기·벼베기·타작 등으로, 논농사의 전반적인 과정에 적용이 되었다. 특히 노동력을 많이 요구하는 모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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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에 속한 법정리. 은용리는 장군면의 중서부에 있고, 하봉리·도계리·산학리·금암리와 맞닿아 있는 마을이다. ‘은용(隱龍)’이라는 명칭은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노은리·어은리·와룡리에서 ‘은’과 ‘룡’을 따와 만들어졌다. 또한 용이 땅속에 누워 있다 하여 은룡이라 불리었다. 옛날 지혜로운 장부(丈夫)가 있었는데 용과 지혜를 겨루는 내기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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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은용리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길에서 지내는 제사.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은용리에는 해마다 정월 중 적당한 날을 택하여 마을 입구의 300여 년 된 향나무 앞에서 마을의 안녕과 자연재해인 풍수재앙을 막아 달라는 의미의 노신제를 지낸다. 해가 질 무렵이면 정성스레 제물을 차리는데 삼색실과, 떡, 술과 소지를 준비한다. 거리에서 제를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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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은용리 농골에서 음력 정월 열나흗날 장승에 지내는 마을 제사.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은용리 농골에서는 마을의 안과태평을 위하여 해마다 음력 정월 열나흗날 밤 9시경에 거리제를 지낸다. 신앙대상물은 마을 어귀에 있는 선돌 2기이다. ‘할아버지돌’, ‘할머니돌’로 불린다. 마을의 전염병을 막기 위하여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시작하게 된 시점은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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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은용리 농골에서 음력 정월 열나흗날 장승에 지내는 마을 제사.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은용리 농골에서는 마을의 안과태평을 위하여 해마다 음력 정월 열나흗날 밤 9시경에 거리제를 지낸다. 신앙대상물은 마을 어귀에 있는 선돌 2기이다. ‘할아버지돌’, ‘할머니돌’로 불린다. 마을의 전염병을 막기 위하여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시작하게 된 시점은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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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은용리에 있는 저수지. 바탕골저수지는 본래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은용리에 속하여 있던 저수지였으나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 출범으로 인하여 장군면으로 속하게 되었다. 바탕골저수지의 제방 구조는 흙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홍수 조절을 위하여 여수로(餘水路)[수력 발전소나 저수지 등에서 물이 일정량을 넘을 때 여분의 물을 빼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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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산울리에 있는 공설 납골당. 은하수공원은 2009년에 준공하여 화장 납골 문화를 지향하는 현대 장례시설을 갖춘 장례식장이다. 망자(亡者)가 마지막으로 거쳐 가는 곳을 공원으로 명명한 것은 견우, 직녀가 만나는 길인 은하수를 따라 영면의 세계로 향하는 망자에게 안식을 제공하는 장소가 바로 ‘은하수 공원’이기 때문이다. SK그룹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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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에서 지정한 보호수로, 낙엽침엽 교목. 은행나무는 고생대 페름기[2억 7,000만~2억 3,000만 년 전]에 초기 형태의 은행잎 모양을 가진 나무로 나타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번성하여 백악기[1억 3,500만~6,500만 년 전]에는 현재의 북반구 대륙 일대에 분포하였다. 현재 가장 오래된 자연산 은행나무는 중국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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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에 속한 법정리. 장터·북동네·서동네·남동네·덕현을 병합하여 읍내리라 부른다. 자연마을로는 남부·동부·향교마을 등이 있다. 남부마을은 읍내리의 남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동부마을은 동쪽에 자리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향교마을은 전의향교가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읍내리는 전의면의 중심마을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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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읍내리 북동네 천변 도롯가에 세워져 있는 마을신앙 대상물.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읍내리 북동네에서는 1980년대 초반까지 매년 음력 정월 열나흗날 목장승을 세우고 제사를 지냈다. 제사를 당산제라고 하였다. 목장승 옆에는 3년에 한 번씩 오리대를 만들어 세웠다. 장승과 오리대를 함께 세우는 것은 세종특별자치시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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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에 속한 법정리. 마을의 넓은 들판에 먹이를 찾아 매가 많이 날아와 서식하였으며, 마을 뒷산의 큰 바위에 매가 앉아 있다고 하여 매바위·응암(鷹岩)으로 불리었다. 응암리에는 매바위, 높은정이, 노곡, 가마골 등 자연 마을이 있다. 매바위마을은 매 모양의 지형에 매가 많아서 붙은 명칭으로, 응암이라고도 한다. 높은정이마을은 매바위 북쪽의 높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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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응암리와 내판리 일원에 있는 농공 단지. 국토의 균형 개발과 지방화 시대에 부응하는 지역 경제 기반 육성과 지방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농외 소득 증대를 위하여 개설되었다. 1988년 5월부터 1989년 3월까지 사업 기간을 정하였으며, 1989년 3월에 준공하였다. 사업시행 방법은 공영개발방식, 사업시행자는 세종특별자치시이다. 1986년 8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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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에 속한 법정리. 마을의 넓은 들판에 먹이를 찾아 매가 많이 날아와 서식하였으며, 마을 뒷산의 큰 바위에 매가 앉아 있다고 하여 매바위·응암(鷹岩)으로 불리었다. 응암리에는 매바위, 높은정이, 노곡, 가마골 등 자연 마을이 있다. 매바위마을은 매 모양의 지형에 매가 많아서 붙은 명칭으로, 응암이라고도 한다. 높은정이마을은 매바위 북쪽의 높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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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응암리와 내판리 일원에 있는 농공 단지. 국토의 균형 개발과 지방화 시대에 부응하는 지역 경제 기반 육성과 지방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농외 소득 증대를 위하여 개설되었다. 1988년 5월부터 1989년 3월까지 사업 기간을 정하였으며, 1989년 3월에 준공하였다. 사업시행 방법은 공영개발방식, 사업시행자는 세종특별자치시이다. 1986년 8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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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태산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의랑초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탄탄한 기초기본교육으로 자존감을 키우는 자주인, 즐겁게 배우고 탐구하며 꿈을 가꾸는 창의인, 다양한 문화적 소양과 바른 심성을 기르는 문화인, 공감과 나눔을 실천하며 더불어 사는 세계시민’이다. 교육 비전은 ‘배움이 즐겁고 나눔이 행복한 의랑교육’이다. 교훈은 ‘정직·질서·성실’이다.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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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태산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의랑초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탄탄한 기초기본교육으로 자존감을 키우는 자주인, 즐겁게 배우고 탐구하며 꿈을 가꾸는 창의인, 다양한 문화적 소양과 바른 심성을 기르는 문화인, 공감과 나눔을 실천하며 더불어 사는 세계시민’이다. 교육 비전은 ‘배움이 즐겁고 나눔이 행복한 의랑교육’이다. 교훈은 ‘정직·질서·성실’이다.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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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태산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의랑초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탄탄한 기초기본교육으로 자존감을 키우는 자주인, 즐겁게 배우고 탐구하며 꿈을 가꾸는 창의인, 다양한 문화적 소양과 바른 심성을 기르는 문화인, 공감과 나눔을 실천하며 더불어 사는 세계시민’이다. 교육 비전은 ‘배움이 즐겁고 나눔이 행복한 의랑교육’이다. 교훈은 ‘정직·질서·성실’이다.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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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민을 시조로 하고 남필복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남민(南敏)을 시조로 하는 의령남씨는 남이웅(南以雄)[1575~1648]의 후손들이 1700년대 중반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성강리에 정착한 이래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다. 의령남씨 시조 남민은 당나라 사람으로, 본명은 김충(金忠)이다. 신라에 귀화하여 경덕왕 때 남씨 성을 하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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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나성동에 있는 의병장 임대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 임대수는 옛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송담리 출신이다. 일명 학수(學洙)·호경(浩京)으로 불리었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된 뒤 일본 제국주의의 한민족에 대한 정치적·경제적 간섭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자 세종 지역에서 항일운동에 가담하였으며, 이후 충청남도 일대의 의병장으로 활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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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지역의 주민들이 생활하면서 착용하는 의복이나 의복 관련 풍속. 의생활은 의복의 착용이나 이와 관련된 풍속을 의미한다. 세종 지역 주민들도 일상적인 생활문화의 하나로 의복을 착용하여 왔다. 전통 측면에서 성별이나 신분 및 의례, 직업과 일의 종류 등에 따라 다양한 의복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의복과 관련된 풍습은 시대적 흐름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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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의 전동면 청람리와 미곡리를 연결하는 고개. 개미고개는 북한군 진격을 나흘 동안 지연시키는 성과를 거둔 6·25전쟁 중 최고의 격전지 중 하나였다. 개미고개라는 지명은 산이 개미허리처럼 생긴 형태에서 지명이 유래했다고 전한다. 『전의현읍지』에는 의항현(蟻項峴)으로 표기되어 있는 가운데 ‘전의현의 동쪽 10리에 있으며 청주대로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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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의 전동면 청람리와 미곡리를 연결하는 고개. 개미고개는 북한군 진격을 나흘 동안 지연시키는 성과를 거둔 6·25전쟁 중 최고의 격전지 중 하나였다. 개미고개라는 지명은 산이 개미허리처럼 생긴 형태에서 지명이 유래했다고 전한다. 『전의현읍지』에는 의항현(蟻項峴)으로 표기되어 있는 가운데 ‘전의현의 동쪽 10리에 있으며 청주대로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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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에 있던 이만원의 영정을 모시기 위해 조선 후기에 세웠던 사당. 이만원(李萬元)[1651~1708]은 연안이씨 태자첨사공파로,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후곡리에서 출생하였다. 이만원의 고조부 이광정(李光庭)은 호성공신에 녹훈(錄勳)[훈공을 장부나 문서에 기록함]되고 연원부원군에 봉해진 인물이며, 이광정의 딸은 숙종 계비인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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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에 묘를 쓴 문신. 이경억(李慶億)[1620~1673]은 본관(本貫)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석이(錫爾), 호는 화곡(華谷)이다. 1644년 25세 때 정시문과에서 장원급제한 후 고위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이경윤(李燝胤)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대건(李大建)이다. 아버지는 판서 이시발(李時發)이며 어머니는 고령신씨 신응거(申應榘)의 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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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인조반정 직후 논공행상 불만과 반란을 일으킨다는 무고를 받은 이괄이 일으킨 내란 사건. 이괄(李适)[1587~1624]의 난은 1624년(인조 2)에 이괄이 조선 왕가 종실 흥안군 이제를 왕으로 추대하며 일으킨 반란이다. 인조반정의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이괄은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무고를 당하자 난을 일으켜 한양까지 함락시켰다. 조선 내란으로는 처음으로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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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문곡리에 있는 이광흥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정려. 이광흥 효자각은 효자 이광흥(李光興)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891년(고종 28)에 세운 정려이다. 이광흥은 경주이씨로, 국당공(菊堂公) 31세 후손이다. 이광흥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효심이 깊어 주위로부터 효자로 이름이 높았다. 10살이 되던 해에 부친이 위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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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광희(李光熙)[1895~1943]는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 신정리 출신으로 신정리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광희는 1919년 3월 13일 옛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 신정리에서 이수욱(李秀郁) 등과 함께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신정리의 만세 시위는 이수욱의 주도하에 전개되었는데, 이광희는 김병옥(金炳玉)의 집에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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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덕민(李德敏)[1867~1924]은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양화리 출신으로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덕민은 1919년 3월 31일 옛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3월 23일부터 연기 지역과 인근 청주 지역의 면민들은 대대적인 횃불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남면에서는 3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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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평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덕사와 이태연 부자의 묘비. 이덕사(李德泗)[1582~1636]와 이태연(李泰淵)[1615~1669]은 부자간이다. 이덕사의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응로(應魯)이다. 우암 송시열(宋時烈)[1607~1689]의 장인이다. 이덕사는 1616년(광해 8)에 실시된 증광시에 생원으로 합격한 후 의금부도사를 지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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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시대와 고려 전기 세종 지역에서 활동한 고려의 개국공신. 초명은 이치(李齒)이다. 충청도 공주목 전의현(全義縣)[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전동면 일대] 출신으로, 전의이씨(全義李氏) 시조(始祖)이다. 전의이씨 시조 이도(李棹)는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후백제 정벌을 도왔다. 후삼국 쟁패기에 왕건의 주력 부대가 금강(錦江)에 이르렀을 때 마침 홍수로 강물이 불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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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인비를 시조로 하고 류충걸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류인비(柳仁庇)를 시조로 하고 류충걸(柳忠傑)[1588~1665]을 입향조로 하는 진주류씨는 1600년대 전반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에 입향한 이래 400년에 걸쳐 꾸준히 사족 활동을 펼치면서 일가를 이루었고 지금도 후손들은 지위를 계승하고 있다. 진주류씨는 류정(柳挺)을 시조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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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인비를 시조로 하고 류충걸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류인비(柳仁庇)를 시조로 하고 류충걸(柳忠傑)[1588~1665]을 입향조로 하는 진주류씨는 1600년대 전반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에 입향한 이래 400년에 걸쳐 꾸준히 사족 활동을 펼치면서 일가를 이루었고 지금도 후손들은 지위를 계승하고 있다. 진주류씨는 류정(柳挺)을 시조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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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노장리 마을 주민들이 산신에게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중노장 산신제와 이목동 산신제는 마을의 안녕, 주민들의 안전, 농사 풍년을 목적으로 시행된 공동체 의례이다. 중노장 산신제는 1980년대에 시작되었다. 1980년대에 마을 상수도 공사를 하면서 마을 뒤편 야산을 파헤쳤다. 그때부터 마을 젊은이들이 연이어 숨졌다. 주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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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에 거주한 문인. 이상(李翔)은 조선 후기 문인으로, 충청도 전의현[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일대]에 세거하는 우봉이씨가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숙종 대 정치적으로 서인 노론계 입장을 취하다 파직과 복직을 반복하고 끝내 기사환국(己巳換局)[1689년 남인이 희빈장씨의 소생인 원자 정호 세자의 책봉 문제로 서인을 몰아내고 재집권한 일]으로 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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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상건(李相健)[1868~1942]은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양화리 출신으로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상건은 1919년 3월 14일 전의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에 앞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이수욱(李秀郁)이 고종의 국장(國葬) 참례를 위하여 2월 26일 상경하여 3·1운동을 직접 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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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송성리 이성산 정상에 있는 삼국시대 테뫼식 산성. 이성은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4.2㎞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성산(李城山)[240m]에 자리하고 있다. 이성산의 정상부를 둘러싼 형태로 축조된 테뫼식 산성으로, 남쪽에 위치한 금성산(金城山)[424.1m]에서 북쪽 작성산(鵲城山)[338.8m]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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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송성리 이성산 정상에 있는 삼국시대 테뫼식 산성. 이성은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4.2㎞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성산(李城山)[240m]에 자리하고 있다. 이성산의 정상부를 둘러싼 형태로 축조된 테뫼식 산성으로, 남쪽에 위치한 금성산(金城山)[424.1m]에서 북쪽 작성산(鵲城山)[338.8m]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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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과 전의면 일대에 걸쳐 있는 산. 이성산(李城山)[230m]은 전동면 송성리와 신방리 사이에 있는 산으로, 고려산성-운주산성-작성-금이성 등으로 연결되는 차령산맥 산줄기에 있다. 전의이씨 시조이자 고려 태사를 지낸 이도(李棹)가 산성을 쌓고 살던 곳이라서 이성산이라 한다고 전한다. 이도는 전의이씨의 시조(始祖)로, 고려 개국공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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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송성리 이성산 정상에 있는 삼국시대 테뫼식 산성. 이성은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4.2㎞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성산(李城山)[240m]에 자리하고 있다. 이성산의 정상부를 둘러싼 형태로 축조된 테뫼식 산성으로, 남쪽에 위치한 금성산(金城山)[424.1m]에서 북쪽 작성산(鵲城山)[338.8m]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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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송성리 이성산 정상에 있는 삼국시대 테뫼식 산성. 이성은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4.2㎞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성산(李城山)[240m]에 자리하고 있다. 이성산의 정상부를 둘러싼 형태로 축조된 테뫼식 산성으로, 남쪽에 위치한 금성산(金城山)[424.1m]에서 북쪽 작성산(鵲城山)[338.8m]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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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수양(李秀陽)[1889~1977]은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 신정리 출신으로 전의면 신정리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수양은 1919년 3월 13일 옛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 신정리에서 이수욱(李秀郁) 등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운동에 참여하였다. 신정리의 만세 시위는 이수욱의 주도하에 3월 7일부터 윤상억(尹相億)·윤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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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수양(李秀陽)[1889~1977]은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 신정리 출신으로 전의면 신정리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수양은 1919년 3월 13일 옛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 신정리에서 이수욱(李秀郁) 등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운동에 참여하였다. 신정리의 만세 시위는 이수욱의 주도하에 3월 7일부터 윤상억(尹相億)·윤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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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수욱(李秀郁)[1890~1970]은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 신정리 출신으로 전의면 전의시장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수욱은 1919년 3월 13일 연기 전의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수욱은 고종의 국장(國葬) 참례를 위하여 2월 26일 상경하여 3·1운동을 직접 목격하였다. 서울의 상황을 파악한 후 3월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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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종 지역 출신으로 삼도수군통제사와 병마절도사 등 고위직을 지낸 무신. 류형(柳珩)[1566~1615]의 본관(本貫)은 진주(晋州), 자는 사온(士溫), 호는 석담(石潭)이다. 27세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창의사 김천일을 따라 강화에서 활동하다가 선조가 있는 의주 행재소로 가서 선전관에 임명되었다. 1594년에 무과에 급제하였고, 선조의 친유(親諭)[임금이나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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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세종 지역에서 활동한 금강대도의 창시자. 이승여(李承如)[1874~1934]는 세종 지역에서 신종교 금강대도를 창시한 종교인이다. 이승여의 본관(本貫)은 한산(韓山)으로, 고려 후기 유학자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18세손이다. 1874년 5월 19일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 포항리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1906년 종교적 체험을 통해 대도(大道)[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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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 고등리에 고려고성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아야목」은 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 고등리 고려산성 아래 아야목이라는 마을에서 전해지는 지명 전설이다. 1988년 연기군지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연기군지』에 「아야목」이라는 전설로 기록되어 있다. 채록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고려시대 몽고족의 침략으로 임금을 비롯한 대신들은 강화도로 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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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세종 지역 출신으로 세조 즉위를 도운 좌익공신 3등 문신. 이예장(李禮長)[1406~1456]의 본관(本貫)은 전의(全義), 자는 자문(子文)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구직(李丘直), 할아버지는 이정간(李貞幹), 아버지는 부윤 이사관(李士寬)이다. 이예장은 1432년(세종 14) 식년문과 생원에 급제하여 검열이 되었다. 1438년(세종 20)에는 사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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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오현 중의 한 명으로 세종 지역에 묘를 쓴 문신. 이유태(李惟泰)[1607~1684]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태지(泰之), 호는 초려(草廬)이다. 신독재 김집(金集)의 천거(薦擧)[어떤 일을 맡아 할 수 있는 사람을 그 자리에 쓰도록 소개하거나 추천함]로 1634년(인조 12) 희릉참봉(禧陵參奉)이 되었다. 이어 건원릉참봉(健元陵參奉) 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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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장희는 세종 지역인 옛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 신정리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장희(李章熙)[1887~1932]는 1919년 3월 13일 옛 연기군 전의면 신정리에서 이수욱(李秀郁) 등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벌였다. 신정리의 만세시위는 이수욱이 고종(高宗)의 인산(因山)[장례]에 다녀온 뒤 3월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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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효자이자 학자. 이재구(李載九)[1837~1887]의 자는 계범(季範), 호는 불궤재(不匱齋)이다. 조치원읍 봉산리에서 출생하였다. 전재 임헌회(任憲晦)[1811~1876]의 아래에서 수학하며 학문과 의행 실천에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학문이 일취월장하였으나 과거는 포기하고 경전 연구에만 몰두하여 강론과 후진 양성에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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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효자. 이정환(李廷煥)[1604~1671]의 자는 휘원(輝遠)이고, 호는 송암(松岩)이다. 무오사화 때 화를 입은 한재(寒齋) 이목의 5세손이다. 이정환은 1633년(인조 11)에 생원이 되었다. 병자호란의 국치를 통분히 여겨 외출을 삼가며 비가(悲歌) 10수를 지었다. 특히 효행이 남달라 부모상을 당하여 6년간 시묘살이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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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의 원주민 중 생활대책용지나 3년 만기 제한경쟁입찰권을 갖고 있던 이주민이 결성한 조합. 상가조합은 생활대책용지 수분양권을 받은 순수 원주민들의 조합인 원주민조합, 생활대책용지 수분양권을 매수한 개인 단독 또는 여럿이 모여 만든 조합인 매수자조합, 토지 분양을 받기 전 또는 받은 후 권리 또는 토지를 매매할 목적으로 만든 조합인 매도목적조합, 토지 분양을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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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의 원주민들이 이주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결성한 2차 아파트 조합. 세종주민아파트건축조합을 통하여 이주한 원주민 이외의 이주자 택지 용지 확보를 위하여 경쟁하던 4개의 조합이 2014년 12월 13일 열린 주민보상대책위의 중재와 조정을 거쳐 통합하여 공동주택용지 분양을 받기 위하여 만들었다. 이주민아파트조합은 2012년 7월 설립된 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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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수군 명장. 이천은 대몽 항쟁기(對蒙抗爭期)의 수군 명장으로 응양군대장군(鷹揚軍大將軍)을 역임하였다. 이후 지례부사(知禮部事) 등의 관직을 거쳐 1260년(원종 원년)에 중서시중문화평장사(中書侍中門下平章事)를 역임하였다. 이천(李仟)의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수덕(樹德), 호는 동암수(東巖叟)이며 『고려사(高麗史)』에는 이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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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신일을 시조로 하고 서치운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서신일(徐神逸)을 시조로 하는 이천서씨 문목공파(文穆公派) 후손들이 1800년대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하봉리에 입향한 이래 현재까지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이천서씨는 신라 효공왕 때 아간대부(阿干大夫)를 지낸 서신일을 시조로 한다. 고려시대에 들어와 서필(徐弼)·서희(徐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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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시대와 고려 전기 세종 지역에서 활동한 고려의 개국공신. 초명은 이치(李齒)이다. 충청도 공주목 전의현(全義縣)[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전동면 일대] 출신으로, 전의이씨(全義李氏) 시조(始祖)이다. 전의이씨 시조 이도(李棹)는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후백제 정벌을 도왔다. 후삼국 쟁패기에 왕건의 주력 부대가 금강(錦江)에 이르렀을 때 마침 홍수로 강물이 불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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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문신. 이혼(李混)[1252~1312]의 자는 거화(去華)·일우(一宇)·태초(太初), 호는 몽암(蒙菴)이다. 본관은 전의(全義)인데 뒤에 예안백(禮安伯)에 봉해짐으로써 분파하여 예안이씨 시조가 되었다. 할아버지는 보승별장(保勝別將)을 지낸 이순(李順)이고, 아버지는 응양군대장군(鷹揚軍大將軍)을 지낸 이천(李仟)이다. 어머니는 문하시랑평장사(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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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정종의 열째 아들로 세종 지역 전주이씨 덕천군파의 입향조. 이후생(李厚生)은 조선 전기의 종친으로 정종의 열째 아들이다. 덕천군(德泉君)에 봉하여지고 광록대부영종정경(光祿大夫領宗正卿)에 증직(贈職)[죽은 뒤에 품계와 벼슬을 추증하던 일]되었다. 연기·공주 지역에 논밭을 소유하고 있어 덕천군의 후손들이 정착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후생의 본관(本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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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정종의 열째 아들로 세종 지역 전주이씨 덕천군파의 입향조. 이후생(李厚生)은 조선 전기의 종친으로 정종의 열째 아들이다. 덕천군(德泉君)에 봉하여지고 광록대부영종정경(光祿大夫領宗正卿)에 증직(贈職)[죽은 뒤에 품계와 벼슬을 추증하던 일]되었다. 연기·공주 지역에 논밭을 소유하고 있어 덕천군의 후손들이 정착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후생의 본관(本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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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세종 지역 출신의 무신. 박천붕(朴天鵬)[1545~1592]은 본관(本貫)이 밀양이다. 자는 익호(翼乎), 호는 규정(樛亭)이다. 1554년(명종 9) 충청도 연기군 북이면 신리 두옥동[현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월하리]에서 태어났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스승인 조헌의 종사관이 되어 8월 청주전투에서 선봉장으로 적진에 뛰어들었다가 순국(殉國)[나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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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계를 시조로 하고 이한필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이반계(李攀桂)를 시조로 하는 원주이씨 원성군파는 이한필(李漢弼)[1512~?]이 1500년대 지금의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봉산리 윗말에 정착한 이래 현재까지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원주이씨의 시조는 이반계이다. 경주이씨 시조 이알평(李謁平)의 원세손(遠世孫)이며, 고려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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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에 거주하는 주민의 수. 인구는 특정 국가나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의 수를 말한다. 인구는 출생과 사망, 전입과 전출 등의 요인에 의해 변동한다. 세종특별자치시는 2012년 출범 이후부터 활발한 인구 유입과 높은 출산율[2017년 기준 전국 1위] 등으로 인하여 지속적으로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시·도 간 전입에 의한 유입 인구 중 남녀 모두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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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지역의 주민 활동과 관련된 인문 지리적 요소. 세종특별자치시는 미호천과 금강이 연동면 합강리에서 합류하여 서쪽으로 흐르고 구릉성 산지와 평지가 분포한다. 남한의 중부에 있다. 동쪽은 충청북도 청주시, 서쪽은 충청남도 공주시, 남쪽은 대전광역시, 북쪽은 충청남도 천안시와 접한다. 수리적 위치를 살펴보면 동단은 동경 127°23′[부강면 문곡리], 서단은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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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지역의 주민 활동과 관련된 인문 지리적 요소. 세종특별자치시는 미호천과 금강이 연동면 합강리에서 합류하여 서쪽으로 흐르고 구릉성 산지와 평지가 분포한다. 남한의 중부에 있다. 동쪽은 충청북도 청주시, 서쪽은 충청남도 공주시, 남쪽은 대전광역시, 북쪽은 충청남도 천안시와 접한다. 수리적 위치를 살펴보면 동단은 동경 127°23′[부강면 문곡리], 서단은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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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지역에서 인물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세종 지역의 인물설화는 주인공과 관련된 자연물 또는 유적·유물 등이 남아 있거나 주인공의 능력 또는 행적 등과 관련한 영웅담이 구전되어 오는 것이 특징이다. 세종 지역의 인물설화로는 전의 지역에서 전의이씨 시조인 ‘이도(李棹)’와 관련한 설화와 금남면 달전리에서 성삼문의 당숙인 ‘성희’와 관련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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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세종 지역 출신 문신으로 단종을 위하여 절개를 지킨 생육신의 한 사람. 성담수(成聃壽)는 1456년 단종 복위가 실패한 후 벼슬을 버리고 선영(先塋)[조상의 무덤 또는 조상 무덤 근처의 땅]이 있는 경기도 파주에 은거하며 끝까지 절개를 지킨 생육신 중 한 사람이다. 성담수의 본관(本貫)은 창녕(昌寧)이다. 자는 인수(仁叟), 호는 정재(靜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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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세종 지역 출신의 문신으로 생육신 성담수의 동생. 성담년(成聃年)은 조선 전기에 문과 급제한 문신으로,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달전리에 세거하는 창녕성씨 입향조이다.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성담년의 본관(本貫)은 창녕(昌寧)이다. 자는 인수(仁叟), 호는 정재(靜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예문관대제학 성석용(成石瑢)이며, 할아버지는 성개(成槪)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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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세종 지역 출신의 문신으로 사육신 중 한 명. 박팽년(朴彭年)[1417~1456]의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자는 인수(仁叟), 호는 취금헌(醉琴軒)이다. 1432년(세종 14)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1447년에 문과 중시에 을과로 다시 급제하였다. 1453년(단종 1) 우승지를 거쳐 이듬해 형조참판이 되었으며 많은 관직을 역임 후 집현전에 들어가 당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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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세종 지역에 정착한 창녕성씨 입향조이자 단종복위운동에 참여한 문신. 성희(成熺)[?~1464]는 창녕성씨로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달전리에 창녕성씨가 자리 잡게 된 계기를 마련한 인물이다. 5촌 조카 성삼문이 세조에게 처형된 후 일족이 모두 죽임을 당하는 과정에서 성희도 혹독한 고문을 당하였고 김해로 유배되었다가 풀려나 달전리에 터를 잡았다. 성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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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선무를 시조로 하고 채승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채선무를 시조로 하고 채승(蔡昇)을 파조로 한 인천채씨 참의공파(參議公派)가 1300년대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문주리에 입향하였다. 이후 후손들이 합강리로 옮겨 정착하였고 집성촌을 이루며 일가를 형성하였다. 인천채씨 시조 채선무는 고려시대 동지사(同知事)를 지내고 동지추밀원사(同知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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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번암리에 있는 절임식품 제조 업체. 기업이념은 ‘정도경영’이다. 고객사랑의 신념인 ‘사랑+정열’, 환경보호와 바른 먹거리에 대한 정신인 ‘자연+안전’, 식문화를 풍요롭게 하려는 정성인 ‘품의+정성’등의 CI가 있다. 1982년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 소재에 공장을 설립하고 김치류, 단무지 등 20여 종을 생산·판매하였다. 1994년에는 국내 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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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일대의 옛 행정 구역. 문의현(文義縣)은 충청북도 청원군 부강면 일대가 소속되어 있던 조선시대 행정구역으로, 백제 때 일모산군(一牟山郡)이었으나 757년(신라 경덕왕 16) 연산군(燕山郡)으로 고쳐지고 고려시대인 1260년(고종 46)에 문의현으로 고쳐졌다. 그 뒤 여러 차례 변천을 거쳐 1895년(고종 32) 군으로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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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번암리에 있는 절임식품 제조 업체. 기업이념은 ‘정도경영’이다. 고객사랑의 신념인 ‘사랑+정열’, 환경보호와 바른 먹거리에 대한 정신인 ‘자연+안전’, 식문화를 풍요롭게 하려는 정성인 ‘품의+정성’등의 CI가 있다. 1982년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 소재에 공장을 설립하고 김치류, 단무지 등 20여 종을 생산·판매하였다. 1994년에는 국내 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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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문신. 이혼(李混)[1252~1312]의 자는 거화(去華)·일우(一宇)·태초(太初), 호는 몽암(蒙菴)이다. 본관은 전의(全義)인데 뒤에 예안백(禮安伯)에 봉해짐으로써 분파하여 예안이씨 시조가 되었다. 할아버지는 보승별장(保勝別將)을 지낸 이순(李順)이고, 아버지는 응양군대장군(鷹揚軍大將軍)을 지낸 이천(李仟)이다. 어머니는 문하시랑평장사(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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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강점기 세종 지역의 역사. 조선총독부는 토지조사사업과 지방의 재정 안정화를 위하여 1914년 군·면 통폐합을 실시하였다. 전의군은 연기군에 병합되고 세종 지역은 연기군 동면·서면·남면·북면·금남면·전의면·전동면의 7개 면, 공주군 장기면·의당면·반포면, 충청북도 청주군 강외면·부용면으로 편제되었다. 이후 조치원역이 개통되어 급격히 성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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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강점기 세종 지역의 역사. 조선총독부는 토지조사사업과 지방의 재정 안정화를 위하여 1914년 군·면 통폐합을 실시하였다. 전의군은 연기군에 병합되고 세종 지역은 연기군 동면·서면·남면·북면·금남면·전의면·전동면의 7개 면, 공주군 장기면·의당면·반포면, 충청북도 청주군 강외면·부용면으로 편제되었다. 이후 조치원역이 개통되어 급격히 성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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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강점기 세종 지역의 역사. 조선총독부는 토지조사사업과 지방의 재정 안정화를 위하여 1914년 군·면 통폐합을 실시하였다. 전의군은 연기군에 병합되고 세종 지역은 연기군 동면·서면·남면·북면·금남면·전의면·전동면의 7개 면, 공주군 장기면·의당면·반포면, 충청북도 청주군 강외면·부용면으로 편제되었다. 이후 조치원역이 개통되어 급격히 성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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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강점기 세종 지역의 역사. 조선총독부는 토지조사사업과 지방의 재정 안정화를 위하여 1914년 군·면 통폐합을 실시하였다. 전의군은 연기군에 병합되고 세종 지역은 연기군 동면·서면·남면·북면·금남면·전의면·전동면의 7개 면, 공주군 장기면·의당면·반포면, 충청북도 청주군 강외면·부용면으로 편제되었다. 이후 조치원역이 개통되어 급격히 성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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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 건립 후 지은 일행정의 기문을 새긴 현판. 일행정(一幸亭)은 진시책(陳時策)[1831~1906]이 여양진씨(驪陽陳氏) 문중 자제들에게 학문을 가르치고 한여름에 더위를 피하게 할 목적으로 세종특별자치시 반곡동에 세운 정자이다. 일행정기(一幸亭記)에는 정자(亭子)를 세우게 된 배경, 의미, 목적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일행정기(一幸亭記)는 진병갑, 진병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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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다방리 수랑골에 느티나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수랑골의 느티나무」는 수랑골의 부자인 이장자의 집에 머슴으로 들어온 양반 자손인 경만이와 외동딸인 인향이라는 아가씨의 애틋한 사랑을 다룬 거목 전설이다. 1997년 전의향토지발간추진위원회에서 발간한 『전의향토지』에 수록되어 있다. 전의면 다방리 수랑골에는 한 장자[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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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세종 지역에 정착한 문신. 임난수(林蘭秀)[1342~1407]는 세종 지역 세거 성씨인 부안임씨 입향조이다. 고려 후기 벼슬이 공조전서에 이르렀으나 고려가 망하자 삼기촌[현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으로 들어와 평생 은거(隱居)[세상을 피하여 숨어서 삶]하며 살았다. 후손들이 연기현 일대에 대대로 거주하며 세종 지역에서 가장 큰 집성촌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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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세종 지역에 정착한 문신. 임난수(林蘭秀)[1342~1407]는 세종 지역 세거 성씨인 부안임씨 입향조이다. 고려 후기 벼슬이 공조전서에 이르렀으나 고려가 망하자 삼기촌[현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으로 들어와 평생 은거(隱居)[세상을 피하여 숨어서 삶]하며 살았다. 후손들이 연기현 일대에 대대로 거주하며 세종 지역에서 가장 큰 집성촌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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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나성동에 있는 임난수를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 임씨 가묘는 부안임씨 입향조 전서공 임난수(林蘭秀)[1342~1407]를 제향하는 부조묘(不祧廟)[조선 시대에 신위를 옮기지 않도록 허락받은 신주를 모시는 사당]이다. 원래 이 자리에 있던 기호서사(岐湖書社)가 훼철(毁撤)[헐어서 치움]된 후 세워졌다. 세종특별자치시 나성동은 옛 연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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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나성동에 있는 임난수를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 임씨 가묘는 부안임씨 입향조 전서공 임난수(林蘭秀)[1342~1407]를 제향하는 부조묘(不祧廟)[조선 시대에 신위를 옮기지 않도록 허락받은 신주를 모시는 사당]이다. 원래 이 자리에 있던 기호서사(岐湖書社)가 훼철(毁撤)[헐어서 치움]된 후 세워졌다. 세종특별자치시 나성동은 옛 연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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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세종 지역 출신의 항일 의병. 임대수(林大洙)[1882~1911]는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송담리[현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 일대] 출신으로 의병 전쟁에 참여하였다. 출신 가문이나 성장 과정은 알려져 있지 않다. 임대수는 1907년 7월 광무황제 강제 퇴위와 8월 군대 해산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의병 전쟁이 격화·고조되자 의병에 투신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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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나성동에 있는 의병장 임대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 임대수는 옛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송담리 출신이다. 일명 학수(學洙)·호경(浩京)으로 불리었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된 뒤 일본 제국주의의 한민족에 대한 정치적·경제적 간섭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자 세종 지역에서 항일운동에 가담하였으며, 이후 충청남도 일대의 의병장으로 활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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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덕문(林德文)[1886~?]은 옛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양화리 출신으로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의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임덕문은 1919년 3월 31일 옛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3월 23일부터 연기 지역과 인근 청주 지역의 면민들은 대대적인 횃불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남면에서는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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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효자. 임명즙(林命楫)[1744~1808]의 본관은 부안(扶安), 자는 백섭(伯涉)이다.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 지역인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송담리에서 임종유(林宗儒)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임명즙은 어려서부터 남달리 효심이 지극하였다. 할아버지가 병환으로 눕게 되자 어린 나이에도 곁을 떠나지 않고 정성스럽게 간호하였다.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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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세종 지역 출신 문인으로 금강 상류에 독락정을 짓고 여생을 보낸 인물. 임목(林穆)[1371~1448]은 세종특별자치시에 세거하는 부안임씨 집안의 입향조 전서공 임난수의 둘째 아들이다. 말년에 고향인 금강 상류[현 세종특별자치시 나성동]에 독락정이란 정자를 짓고 여생을 보냈다. 임목의 본관(本貫)은 부안(扶安)이며 아버지는 전서공 임난수(林蘭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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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성리학의 6대가 중 한 명으로, 세종 지역에 묘를 쓴 학자. 임성주(任聖周)[1711~1788]의 자는 중사(仲思), 호는 녹문(鹿門)이다. 본관(本貫)은 풍천(豊川)이다. 18세기 조선의 저명한 유학자로, ‘조선 성리학의 6대가’로 불렸다. 도암(陶菴) 이재(李縡)[1680~1746]의 문하에서 공부하며 학문을 익혔다. 만년인 1782년(정조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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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효자. 임수준(林秀俊)[1810~1875]은 본관이 부안이고 자는 사민(士民), 호는 소재(素齋)이다. 임수준은 어려서부터 성품이 온화하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6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3년간 상복을 입고 죽으로 연명하였으며, 머리카락도 자르지 않았다. 임수준은 학문도 뛰어나 벼슬에 오르기도 하였지만 사직 후 낙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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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나성동에 있는 임난수를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 임씨 가묘는 부안임씨 입향조 전서공 임난수(林蘭秀)[1342~1407]를 제향하는 부조묘(不祧廟)[조선 시대에 신위를 옮기지 않도록 허락받은 신주를 모시는 사당]이다. 원래 이 자리에 있던 기호서사(岐湖書社)가 훼철(毁撤)[헐어서 치움]된 후 세워졌다. 세종특별자치시 나성동은 옛 연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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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나성동에 있는 임난수를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 임씨 가묘는 부안임씨 입향조 전서공 임난수(林蘭秀)[1342~1407]를 제향하는 부조묘(不祧廟)[조선 시대에 신위를 옮기지 않도록 허락받은 신주를 모시는 사당]이다. 원래 이 자리에 있던 기호서사(岐湖書社)가 훼철(毁撤)[헐어서 치움]된 후 세워졌다. 세종특별자치시 나성동은 옛 연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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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효자. 본관은 부안이다. 아버지는 임시무, 어머니 진주정씨[1709~1782]는 정세평의 딸이다. 임양문(林養文)[1744~1810]은 성격이 온량(溫良)[성품이 온화하고 무던함]하고 청명(淸明)[깨끗하고 선명함]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6~7세에 『효경』과 『소학』을 배워 어버이 섬김에 효성이 지극해서 아침저녁으로 문안드리는 것이 어른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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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영복(林永福)[1874~1935]은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월산리 출신으로 연기군 남면의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임영복은 1919년 3월 31일 옛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3월 23일부터 연기 지역과 인근 청주 지역의 면민들은 대대적인 횃불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남면에서는 3월 23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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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영복(林永福)[1874~1935]은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월산리 출신으로 연기군 남면의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임영복은 1919년 3월 31일 옛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3월 23일부터 연기 지역과 인근 청주 지역의 면민들은 대대적인 횃불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남면에서는 3월 23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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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우철(林優喆)[1920~2021]은 옛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출신으로 민족의식 함양과 독립운동을 위한 활동을 활발히 하였다. 임우철은 중농 가정에서 출생하여 연기공립보통학교(燕岐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하고, 1936년 4월 대전공립공업전수학교(大田公立工業專修學校) 토목과에 입학하여 1939년 3월 졸업하였다. 졸업 후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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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형제 효자. 본관은 부안(扶安)이다. 아버지는 임상담(林尙談), 어머니는 경주최씨이다. 고려 후기 무신 임난수(林蘭秀)의 후손이다. 임자의(林自儀)[1672~1717]와 임태선(林太先)[1675~1720]은 형제이다. 형제는 어릴 때 부친상을 당하여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임자의·임태선 형제는 어린 나이에도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형제간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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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현 세종특별자치시를 비롯해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일본과의 전쟁. 1592년 4월 일본은 20만 명의 대규모 병력으로 조선을 침략하였다. 육군 병력으로는 15만 8700명이나 되는 대군이 동원되었다. 일본군은 부산에 상륙하자 파죽지세로 북상하여 18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두 달 만에 평양과 함경도 지방까지 유린했다. 하지만 전국 팔도 곳곳에서 의병과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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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현 세종특별자치시를 비롯해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일본과의 전쟁. 1592년 4월 일본은 20만 명의 대규모 병력으로 조선을 침략하였다. 육군 병력으로는 15만 8700명이나 되는 대군이 동원되었다. 일본군은 부산에 상륙하자 파죽지세로 북상하여 18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두 달 만에 평양과 함경도 지방까지 유린했다. 하지만 전국 팔도 곳곳에서 의병과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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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 현재의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일대를 포함하는 지역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가림현(嘉林縣)은 고려시대 지명으로,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일대를 포함하는 지역이다. 부강면(芙江面)은 본래 충청북도 청원군 부용면(芙蓉面)이었지만 2012년 7월 1일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하면서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이 되었다. 현재 서남쪽으로는 금남면과 대전광역시에 접하고, 동쪽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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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세종 지역 출신의 항일 의병. 임대수(林大洙)[1882~1911]는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송담리[현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 일대] 출신으로 의병 전쟁에 참여하였다. 출신 가문이나 성장 과정은 알려져 있지 않다. 임대수는 1907년 7월 광무황제 강제 퇴위와 8월 군대 해산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의병 전쟁이 격화·고조되자 의병에 투신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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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헌규(林憲奎)[1885~1954]는 옛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양화리 출신으로 충청남도 연기군 금남면 대평리 대평리시장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임헌규는 1919년 3월 23일 옛 금남면 대평리 대평리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임헌규는 임병주(林炳周)·이덕주(李德周)·김봉식(金鳳植)·임순철(林筍喆)·임헌빈(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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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헌상(林憲祥)[1877~1959]은 옛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방축리 출신으로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방축리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임헌상은 1919년 3월 31일 옛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방축리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한 인물이다. 3월 31일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의 각 동리에서는 횃불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었는데, 방축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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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호서지역 낙론의 대가 중 한명으로, 세종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임헌회(任憲晦)[1811~1876]의 자는 명로(明老), 호는 고산(鼓山)·전재(全齋)·희양재(希陽齋)이다. 유학의 거두로 유림의 추앙을 받은 인물이다. 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로, 경서(經書)에 몰두하여 이름이 알려지면서 관직에 나아가 이조참판과 대사헌 등을 지냈으나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방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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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호서지역 낙론의 대가 중 한명으로, 세종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임헌회(任憲晦)[1811~1876]의 자는 명로(明老), 호는 고산(鼓山)·전재(全齋)·희양재(希陽齋)이다. 유학의 거두로 유림의 추앙을 받은 인물이다. 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로, 경서(經書)에 몰두하여 이름이 알려지면서 관직에 나아가 이조참판과 대사헌 등을 지냈으나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방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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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연기 지역에 거주한 임헌회와 그 후손의 인장. 임헌회(任憲晦)[1811~1876]는 19세기 말 성리학자이다. 충청남도 연기·공주 일대에서 크게 활약한 성리학, 특히 주기론(主氣論)을 주장한 인물이다. 대표적인 문인으로는 간재(艮齋) 전우(田愚), 경의당(敬義堂) 김진수(金振遂) 등이 있다. 임헌회의 문집교지와 함께 인장이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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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세종 지역 출신의 항일 의병. 임대수(林大洙)[1882~1911]는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송담리[현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 일대] 출신으로 의병 전쟁에 참여하였다. 출신 가문이나 성장 과정은 알려져 있지 않다. 임대수는 1907년 7월 광무황제 강제 퇴위와 8월 군대 해산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의병 전쟁이 격화·고조되자 의병에 투신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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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세종 지역 부안임씨 전서공파 입향조인 임난수의 넷째 아들. 임흥(林興)은 임난수의 아들로, 고려 후기 명나라 사신으로 다녀오는 등 고위 관직을 지냈다. 조선 건국 후 두 임금을 모실 수 없다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벼슬을 받지 않았다. 임흥의 본관(本貫)은 부안(扶安)이다. 아버지는 세종 지역 부안임씨 입향조인 임난수, 어머니는 용성부원군(龍城府院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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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 독립운동가. 임희수(林熺洙)[1887~1933]는 일제강점기에 지금의 세종 지역인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송담리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임희수는 1919년 4월 1일 지금의 세종 지역인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송담리에서 만세 시위를 발의하고 참여하였다. 임희수는 임숙명(林淑明)·임만수(林萬洙)와 함께 1919년 4월 1일 밤 9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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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에 있는 조선시대 사설 교육기관. 1885년(고종 22)에 관북지방 유림들이 함경도 홍원군에서 문경공(文敬公) 임헌회(任憲晦)[1811~1876]를 배향하기 위하여 숭덕사(崇德祠)를 창건하였다. 1978년에 전국 유림 1,000여 명의 발기로 임헌회의 유허지(遺墟地)[역사 기록만 전해지고 유물이나 문화재는 전혀 없는 터]가 있는 현재의 위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