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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동 산정마을 당산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344
한자 山亭洞山亭-堂山祭
이칭/별칭 산정동 산정마을 동제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광주광역시 광산구 산정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부유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중단 시기/일시 1990년대 이후 - 산정동 산정마을 당산제 중단
의례 장소 할아버지당산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산정동 산정마을지도보기
의례 장소 할머니당산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산정동 산정마을 입구지도보기
성격 마을 공동 제사
의례 시기/일시 정월 열나흗날
신당/신체 할아버지당산[흙무덤]|할머니당산[흙무덤]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산정동 산정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기 위해 정월 열나흗날 밤에 지내는 마을 공동 제사.

[개설]

산정동 산정마을 당산제는 정월 열나흗날 밤에 산정마을의 할아버지당산과 할머니당산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연원 및 변천]

산정마을은 옛날에는 기와를 구웠다 하여 '와곡'이라 하였으며, 마을 뒷산에 큰 괴목이 있어 '산정'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산정마을은 본래 진주강씨(晉州姜氏)들이 모여 살다가 호동마을로 옮겨가고, 전라남도 장성군 덕성리에서 김해김씨(金海金氏)들이 이주하여 1990대 초까지 주로 논농사에 종사하였다. 당산제는 조선시대 이후부터 지냈던 것으로 보이는데, 1990년대 이후 도시 개발로 인해 단절되었다.

[신당/신체의 형태]

산정마을에는 할아버지당산과 할머니당산 두 곳이 있었다. 할아버지당산의 신체는 마을 위쪽의 흙무덤이다. 1990년대 초에 이 부근에 집이 들어서서 현재는 마을 안으로 옮겼는데, 높이 60㎝, 밑지름 150㎝ 정도의 규모이다. 할머니당산은 마을 입구에 있는 흙무덤으로 할아버지당산과 규모가 유사하다.

[절차]

산정동 산정마을 당산제는 매년 정월 5일 즈음 마을회의를 열어 헌관 2명, 축관 1명, 제주 1명, 짐꾼 1명, 꽹과리 2명, 징 1명, 북 1명 등 모두 9명의 제관(祭官)을 뽑는다. 제주는 초헌관을 겸하는데, 50세 이상의 어린이가 없는 가정으로 부부 모두가 있고 생기복덕(生氣福德)[생기법으로 본 길일과 사람이 태어난 생년월일의 간지를 팔괘로 나누어 가린, 길한 일진의 날]이 잘 맞아야 한다. 제주는 상가 등 궂은 곳을 가면 안 되고 개고기를 비롯한 궂은 음식을 삼가야 한다. 소변을 보면 세수를 해야 하고 대변을 보면 목욕 후 옷을 갈아 입어야 하기 때문에, 제주는 제일(祭日) 전날부터 거의 음식을 먹지 않는다. 금기사항이 많아 제주 선정을 기피하지만 선정이 되면 마땅히 해야 한다. 제비(祭費)는 각 호당 거출하다가 자발적 모금 방식으로 바뀌었다. 제물(祭物)은 제주와 다른 제관이 송정리장에 가서 과일, 조기, 콩나물, 고사리나물, 돼지머리와 시루 등을 구입하는데, 제일 이전 가장 가까운 장날을 선택한다. 이때 값을 깎지 않는다. 제기(祭器)는 제가 끝난 후 제주가 가정에서 사용하면 다음해에 새로 구입하고, 사용하지 않고 보관해 두면 다시 사용한다. 마을의 옹달샘에서 물을 길러다 제물을 장만하고 목욕을 하기도 하였으나, 이후 가정의 수도로 대체되었으며 제일 당일 제관들의 목욕도 시내 목욕탕에서 이루어졌다. 제수는 제일 오전에 제주 부인이 준비하는데 맛을 봐서는 안 된다. 제주(祭酒)는 제일 아침에 산에서 나온 물을 길어다 할아버지당산, 할머니당산에 각각 올릴 술을 담근다. 제일(祭日) 아침 식전에는 당산 주변, 마을 입구, 제주집 앞 등에 금줄을 치고 금토를 깔아 부정의 출입을 막는다.

정월 열나흗날 밤 10시 즈음 굿을 치는 것으로 당산제의 시작을 알린다. 새벽 2시에는 제주집을 출발하여 2시 30분에 할아버지당산에 올라 제를 지내는데, 독축할 때를 제외하고는 계속 굿을 친다. 제차(祭次)는 가정 제사와 유사하며 소지는 모두 참여한다. 제가 끝나면 진설했던 음식을 백지에 싸서 제당 위에 묻고 황토를 덮는다. 헌식이 끝나면 음복은 하지 않고 제주집으로 가서 할머니당산에 올릴 제물을 챙겨 할머니당산으로 간다. 제차는 할아버지당산과 같다.

[부대 행사]

당산제가 끝나면 정월대보름에 제주집에 모여 음복을 한다. 해방 이전까지 마당밟이를 하며 걸궁(乞窮)[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마을 집집을 돌아다니며 악기를 연주하거나 축원의 노래를 불러주는 일]을 하기도 하였는데,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의 방해가 심하였다고 한다.

[현황]

산정동 산정마을 당산제는 1990년대 이후 도시 개발로 인해 중단되어 현재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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