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림동 성촌마을 당산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389
한자 雲林洞城村-堂山祭
이칭/별칭 운림동 성촌마을 동제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지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중단 시기/일시 1945년 8.15광복 직후 - 운림동 성촌마을 당산제 중단
의례 장소 할머니당산 -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 성촌마을지도보기
성격 마을 공동 제사
의례 시기/일시 정월 6~7일경
신당/신체 할머니당산[느티나무]

[정의]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 성촌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 정월 6~7일경에 지냈던 마을 공동 제사.

[개설]

운림동 성촌마을 당산제는 정월 6~7일경에 성촌마을의 할머니당산에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연원 및 변천]

운림동 성촌마을 당산제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였던 마을의 특성상 마을의 안녕을 위해 당산제를 지냈으나, 8.15광복 직후 당산제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사람들이 화주가 되는 것을 기피하는 까닭에 더이상 지내지 않는다고 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운림동 성촌마을의 당산은 모두 일곱 곳이었다. 제1당산은 할머니당산으로 마을 안에 있는 느티나무로 그 앞에 제단을 쌓아 제를 모신다. 제2당산은 증심사로 가는 도로 중앙에 있었으나 사라져 그 실체를 알 수 없고, 제3당산은 앞산에 있는 은행나무로 칠성당이라고 불렸으나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제4당산은 마을 어귀에 있던 석장승[돌벅수] 한쌍으로 마을 앞길 확장 때 마을 근처의 학운초등학교 교내로 옮겨졌으나, 2007년 다시 현재의 위치인 마을 이정표 옆으로 옮겨졌다. 각각 할아버지 벅수와 할머니 벅수로 불리는데, 할아버지 벅수는 총 높이 150㎝, 너비 40㎝, 두께 30㎝이고, 할머니 벅수는 총 높이 145㎝, 너비 34㎝, 두께 32㎝이다. 제5. 6, 7당산은 마을 앞에 있었다고 전해지나 그 형체와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다.

[절차]

운림동 성촌마을 당산제는 정월 초가 되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제일(祭日)과 제관(祭官)을 결정하는데, 대체로 6~7일경에 지내었다고 한다. 제관은 화주, 축관, 헌관, 집사 등 4명이 선정된다. 모든 일을 관장하는 화주는 보통 한 가정을 선정하는데, 이때 화주는 어린아이나 임산부, 아픈 사람이 없는 다복하고 깨끗한 가정을 선정한다. 축관과 헌관은 연로한 분으로 선정하는데 그 해 생기복덕(生氣福德)[생기법으로 본 길일과 사람이 태어난 생년월일의 간지를 팔괘로 나누어 가린, 길한 일진의 날]을 맞춰 부정이 없는 사람으로 정한다. 제비(祭費)는 인구전으로 걷는데, 마을 사람들 모두 공을 드리는 일로 여겨 스스로 내기 때문에 제비 충당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한다. 이때 임산부는 두 사람 몫을 낸다. 제기(祭器)는 매년 새것으로 구입하고 제물(祭物)은 남의 것을 사용하지 않고 마을 내에서 마련하는데, 보통 돼지머리, 나물, 과일 등이 올라간다. 돼지머리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걸궁(乞窮)[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마을 집집을 돌아다니며 악기를 연주하거나 축원의 노래를 불러주는 일]할 때 사용된다.

제일이 결정되면 마을 입구와 상(喪)을 당한 지 3년이 되지 않은 집이나 산고(産苦)가 든 집 등 부정이 든 집 둘레에 소나무를 세워 금줄을 치고 금토를 뿌려 부정의 출입을 막는다. 당산 주변에는 불을 밝히고 솔가지로 울타리를 쳐 부정의 출입을 막는다. 제물의 준비는 화주가 하는데, 상에 올릴 음식을 장만할 때는 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말을 하지 않는 등 정갈하게 마련하는데, 이때 간이나 양념을 하지 않고 시식도 하지 않는다. 돼지머리는 생것을 그대로 진설한다. 이때 제물은 제1당산인 할머니당산에 올릴 것만 마련하고, 나머지 당산에서는 진설을 하지 않고 굿만 쳤다고 한다. 할머니당산에서의 제차(祭次)는 유교식으로 '진설→강신→재배→헌작→재배→독축→농악→재배→소지→헌식'의 순으로 이루어진다. 농악은 8시쯤 마을 앞 공터에서 시작하고 9시가 되면 화주집으로 가서 제물을 제관들과 함께 당산으로 운반한다. 제가 시작되기 전에 나발을 불어 시작을 알리고, 제가 모두 끝나면 나발을 불어 끝을 알리는데, 보통 제사는 자정을 넘겨 끝이 난다.

[부대 행사]

당산제가 끝난 후 정월대보름부터 시작하여 그믐까지 마당밟이를 한다. 마당밟이가 끝나면 마을회의를 열어 마을의 일반사항을 논의하였다. 이때 이장 선출과 함께 인부임 등을 결정하였다.

[현황]

운림동 성촌마을 당산제는 8.15광복 직후 당산제에 대한 인식 변화와 마을 사람들의 화주 기피 등의 사유로 사라지고, 7당산도 제4당산인 한 쌍의 석장승을 제외하고 모두 사라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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