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4450
한자 文友觀
영어공식명칭 Munugwan
이칭/별칭 상덕사(尙德祠)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대구광역시 중구 문우관길 13[남산동 570-1]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정병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682년연표보기 - 상덕사 건립
훼철|철거 시기/일시 1910년 - 상덕사 철거
이전 시기/일시 1918년 - 문우관으로 이건
현 소재지 문우관 - 대구광역시 중구 문우관길 13[남산동 570-1]지도보기
성격 강학 공간|제향 공간
양식 목조 기와집
정면 칸수 4칸
측면 칸수 1칸
소유자 문우관
관리자 김홍영

[정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있는 개항기의 제향 공간.

[개설]

문우관은 구한말 대구광역시 출신의 후담(後潭) 채헌식(蔡憲植)[1855~1933]이 상덕사의 비석과 비각을 보전하기 위하여 세운 서숙(書塾)이다.

문우관 전신인 상덕사(尙德祠)경상감영에서 동쪽으로 1리쯤에 있는 제향 공간이며, 1682년 일휴정(逸休亭) 이숙(李䎘)[1626~1688]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생사당으로 출발하였다. 이후 1727년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한 유척기(俞拓基)[1691~1767]의 선정을 기려 일휴정과 함께 배향하였다. 이후 경상감사 조인영(趙寅永)[1782~1850]이 비문을 지어 비각을 세우고 매년 중양절에 제향하였다. 1910년 이사청(理事廳) 신축공사로 헐렸을 때 비석과 비각을 보존하기 위하여 만든 서숙이 바로 문우관이다.

[위치]

문우관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있다.

[변천]

문우관은 1910년 일본인들이 대구시청의 전신인 이사청을 지으면서 상덕사가 헐리게 되자 상덕사 비석 이외에 순찰사 이공 청덕선정비(巡察使李公淸德善政碑), 관찰사 유공척기 영세불망비(觀察使兪公拓基永世不忘碑) 등의 비석과 비각을 보전하기 위하여 1918년 후담 채헌식이 향교의 재산으로 문우관을 세워 추모하였다. 한편으로 문우관은 강학 기관으로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러한 후진 양성의 노력은 협성학교(協成學校)의 창립으로 이어졌다.

[형태]

문우관은 정면 4칸, 측면 1칸의 목조 기와집이며, 현재는 지붕만 철제로 보수하였다.

[현황]

문우관 출입문 왼쪽에 4칸 구조로 된 건물이 한 채 있는데 방 3칸, 마루 1칸이다. 방 3칸 가운데 1칸은 서고로 사용하고 있다. 출입문 오른쪽에는 관리사가 한 채 있는데 방 3칸으로 이루어져 있고, 방 3칸 가운데 1칸은 창고로 사용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문우관은 대구광역시의 조선 후기 역사를 추적할 수 있는 비석들뿐만 아니라, 근대 한학 교육의 흐름과 문인들의 교유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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