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841
한자 李德生
영어공식명칭 Lee Deoksaeng
이칭/별칭 이상일(李相一),이일보(李一普)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1년 6월 15일연표보기 - 이덕생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17일 - 이덕생 혜성단 결성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7월 19일 - 이덕생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월형 언도
활동 시기/일시 1921년 - 이덕생 광복단 가담
몰년 시기/일시 1939년 12월 3일연표보기 - 이덕생 사망
출생지 신리 -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리
학교|수학지 계성학교 - 대구광역시 중구 지도보기
활동지 대구 - 대구광역시
활동지 만주 - 중국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대표 경력 혜성단 단원|광복단 단원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이덕생(李德生)[1901~1939]은 1901년 6월 15일 지금의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으며, 이후 비밀결사 조직인 혜성단(彗星團)을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이상일(李相一)·이일보(李一普)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이덕생은 1919년 4월 17일 김수길(金壽吉)·이영식(李永植)·이종헌(李鍾憲)·이기명(李基明)·이수건(李壽鍵)·이영옥(李榮玉)계성학교 학생들 및 이명건(李命健)·최재화(崔載華)·이종식(李鍾植)과 함께 독립운동 방법을 전환하기로 결의한 뒤 비밀결사 혜성단을 결성하였다.

이덕생을 비롯한 혜성단원들은 4월 18일 「근고아동포(謹告我同胞)」 4월 27일 「경아동포(警我同胞)」, 5월 7일 「경고관공리동포(警告官公吏同胞)」 등을 배포하였으며, 민족 자산가들에게는 독립운동 자금 헌금을 호소하였다. 상인들에게는 폐점 철시 및 일본인과의 거래 중지, 노동자들에게는 파업을 통한 독립운동 참가를 촉구하였다. 또한 대구경찰서장과 친일 인사들에게 암살 협박문을 보내기도 하였다.

1919년 5월 14일 김수길이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면서 혜성단의 실체가 드러나 이덕생도 단원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이덕생은 7월 1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출판법」 위반, 「대정8년 제령 제7호」 위반, 협박 및 사문서 위조 혐의로 징역 1년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덕생은 1921년 안해용(安海容)의 권유로 같은 혜성단원이었던 이수건과 함께 만주로 건너가 광복단에서 활동하였고, 1939년 12월 3일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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