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631
한자 佩物廢止婦人會
이칭/별칭 남일패물폐지부인회,남일동패물폐지부인회,대구남일동패물폐지부인회,대구패물폐지부인회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07년 2월 23일연표보기 - 패물폐지부인회 결성
최초 설립지 패물폐지부인회 - 대구광역시 중구 남일동 지도보기
성격 애국계몽운단체
설립자 정경주[서병규 처 정씨]|서채봉[정운갑 모 서씨]|김달준[정운하 처 김씨]|정말경[서학균 처 정씨]|최실경[서석균 처 최씨]|이덕수[서덕균 처 리씨]|김수원 처 배씨

[정의]

1907년 대구광역시에서 결성된 국채보상운동 여성 단체.

[개설]

대한제국 시기 일본으로부터 빌려 쓴 1,300만 원을 국민들의 모금으로 갚기 위하여 전개된 국권회복운동인 국채보상운동에는 여성들도 적극 참여하였다. 대구에서는 중구 남일동 109에서 1907년 2월 23일 패물폐지부인회(佩物廢止婦人會)가 결성되었고, 1907년 6월에는 중구 남산동에서 대구남산국채보상부인회가 결성되었다. 이외에도 국채보상탈환회가 결성되어 대구에는 무려 3개의 ‘국채보상운동 여성단체’가 결성되었다.

[설립 목적]

패물폐지부인회는 일본에서 도입한 차관 1,300만 원을 갚아 주권을 회복하고자 설립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대구 남일동에 살았던 정경주[서병규 처 정씨]·서채봉[정운갑 모 서씨]·김달준[정운하 처 김씨]·정말경[서학균 처 정씨]·최실경[서석균 처 최씨]·이덕수[서덕균 처 리씨]·김수원 처 배씨 등이 패물폐지부인회를 결성하였다. 정경주패물폐지부인회를 조직하고 이끌었으며 ‘패물폐지부인회 취지문‘도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정경주의 며느리 정말경·최실경·이덕수도 시어머니를 따라 패물폐지부인회에서 활동하였다.

패물폐지부인회는 여성도 나라의 백성이기 때문에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3개월 동안 60전 이상을 모으며 남성 중심으로 펼쳐지던 국채보상운동을 여성의 영역으로 확장시켰다. 또한 은반지, 은장도 등을 기부함으로써 금연, 의연금 위주로 이루어지던 초기 국채보상운동의 기금 확보 방법을 한 단계 높이는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패물폐지부인회는 전국 최초의 국채보상운동 여성단체였고 패물폐지부인회의 활동이 계기가 되어 전국적으로 여성이 주도하는 국채보상운동 단체들이 만들어져 각 지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현황]

2006년 2월 28일 ‘국채보상운동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조성한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내에는 패물폐지부인회의 뜻을 기리는 국채보상운동 여성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국채보상운동 여성 기념비에는 패물폐지부인회에서 공포한 격문 ‘경고(敬告) 아(我) 부인동포라’가 새겨져 있다.

[의의와 평가]

국채보상운동이 전국적 운동으로 확산되는 데 일조한 패물폐지부인회는 전국 최초의 여성운동 조직으로 꼽히며 근대 여성운동의 효시로 평가받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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