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061
한자 二·二八 記念塔 建立
이칭/별칭 2·28 학생의거기념탑 건립,2·28 민주운동기념탑 건립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60년 11월연표보기 - 2·28대구학생데모기념탑 건립위원회 발족
발생|시작 시기/일시 1961년 2월 28일 - 2·28기념탑 기공식 개최
발생|시작 시기/일시 1961년 4월 10일 - 2·28기념탑 2·28 학생의거기념탑 건립
종결 시기/일시 1961년 4월 19일연표보기 - 2·28기념탑 제막식 개최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0년 2월 20일 - 2·28기념탑 2·28학생의거기념탑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2321 명덕역 근처에서 대구광역시 달서구 두류동 산310-9 두류공원으로 이전
발생|시작 장소 2·28 학생의거 기념탑 - 대구광역시 중구 명덕로 지하185[남산동 2321]지도보기
종결 장소 2·28민주운동기념탑 - 두류공원[대구광역시 달서구 두류동 산310-9]지도보기
성격 사건
관련 인물/단체 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

[정의]

1960년과 1961년 2·28민주운동을 역사적으로 기념하기 위하여 추진된 2·28기념탑 건립 활동.

[역사적 배경]

2·28민주운동은 1960년 이승만 독재정권이 제4대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저지른 불의와 부정에 항거하여 대구 지역 8개 고등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민주화운동이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발생한 최초의 민주화운동인 2·28민주운동은 3·15마산의거로 이어졌고, 이후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어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2·28기념탑 건립(二·二八記念塔建立)은 자유와 민주의 횃불을 높이 든 대구 지역 학생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추진되었다.

[경과]

2·28기념탑 건립 추진은 학생이 아닌 언론에서 먼저 제기하면서 시작되었다. 1960년 11월 말 지역 언론이 중심이 되어 ‘2·28대구학생데모기념탑 건립위원회’를 발족하였다. 이후 1961년 2월 대구광역시와 각 학교 교장이 참여한 ‘학생의거기념탑 건립위원회’가 구성되었다. 대구 지역 학생과 교원노동조합은 학생들의 의사결정이 반영되어야 하며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2·28기념탑 건립의 주체를 둘러싼 논쟁이 일어나기도 하였으나 1961년 2월 ‘2·28기념탑 기공식’이 개최되었다.

1961년 4월 10일 2·28민주운동 당시 학생들이 반월당으로 가기 위하여 지났던 명덕 네거리[대구도시철도 1호선 명덕역 근처]에 2·28기념탑이 세워졌고 4월 19일 제막식이 거행되었다. 1961년 세워질 당시 2·28기념탑은 한자 명칭인 ‘二·二八 學生義擧紀念塔(2·28 학생의거 기념탑)’이었다.

[결과]

1980년대 중반 이후 대구의 대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명덕 네거리 일대의 교통체증 유발 등을 이유로 2·28기념탑 이전 문제가 조심스럽게 논의되었다. 그러나 2·28민주운동에 참여하였던 학생 대표들은 교통해소 때문이 아니라 2·28민주운동 정신을 더욱 높이기 위한 차원의 이전이어야 한다는 반대 의견을 제기하였다. 결국 이전이 확정되었고 1989년 11월 21일 착공하여 1990년 2월 28일 2·28민주운동 30주년을 맞아 2·28기념탑대구광역시 달서구 두류동 두류공원 내로 이전하였다.

두류공원에 건립된 2·28기념탑은 두 탑의 높이를 10m와 7m에서 각각 14m와 9m로 더 높였고, 기념탑 비문은 그대로 이전하였다. 2021년 2월 28일 2·28민주운동 60주년을 맞아 2·28 학생의거 기념탑에서 한글 명칭인 ‘2·28민주운동기념탑’으로 변경하였다.

[의의와 평가]

2·28민주운동기념탑은 학생이 중심이 되어 일어난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화운동인 2·28민주운동의 역사적 가치와 정신을 상징하는 조형물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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