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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9403
한자 永慕齋
영어음역 Yeongmo-jae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선수촌로208번가길 52-7[반여동 129-10]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주영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재실
양식 목조 전통 한옥 양식
정면칸수 5칸
측면칸수 3칸
소유자 여산 송씨 원윤공파 동주공존중 기장파 지서문중
관리자 여산 송씨 원윤공파 동주공존중 기장파 지서문중
건립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건립
현 소재지 영모재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선수촌로 208번가길 52-7[반여동 129-10]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동에 있는 여산 송씨의 재실.

[개설]

여산 송씨는 송유익의 5세손 송염(宋琰)과 송분(宋玢)의 아들 대에서 여러 파로 갈린다. 반여동 여산 송씨 집안은 송염의 후손들이다. 송염의 5형제 가운데 첫째인 송운(宋惲)은 원윤공파(元尹公派)를 이룬다. 송운의 네 아들 중 막내아들이 송장경(宋長卿)이고, 송장경의 아들이 송극명이다. 송극명(宋克明)은 동주공(東洲公)으로 동래의 입향조이다. 송극명은 조선 단종이 수양 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자 벼슬을 버리고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로 벼슬을 버리고 세상을 등지기 위하여 1454년 경 동래 회동동 보덕산 기슭에 와 동대(東臺)동천(東川)에서 시와 낚시로 여생을 보냈다. 송극명의 아들 8세 송윤희(宋允熹)의 여섯 아들 가운데 다섯째 아들인 송승륜(宋承輪)의 후손인 송지서(宋之瑞)가 해운대구 반여 1동 상리 마을에 입향하였다. 영모재(永慕齋)는 송지서 이하 여산 송씨 원윤공파 동주공존중 기장파 지서문중의 재실이다.

[변천]

1990년에 영모재를[시공자는 김창희 대목장] 재실 표준 전통 한옥 양식으로 건립하였다.

[형태]

재실을 들어서면 입구 왼쪽에 ‘영모재 내력’ 표석이 있고, 오른쪽에는 ‘숭조상문 종친돈목[崇祖尙門宗親敦睦, 조상을 우러러 공경하고 문중을 위하여 일가친척이 사이좋고 화목하게 지냄]’의 표석이 있다. 재실의 양 표석 가운데 철 대문으로 들어서면 왼쪽에 관리사[건물 면적 81㎡]가 있고, 앞에는 솟을지붕 대문의 삼문(三門)인 성경문(誠敬門)이 나온다. 이 문 오른쪽에는 ‘여산송씨원윤공파동주공지서문중(礪山宋氏元尹公派東洲公之瑞門中)’ 현판이 부착되어 있다. 성경문으로 들어가면 왼쪽에 ‘조상을 섬기는 마음가짐’의 표석과 오른쪽에는 ‘여산송씨원윤공파동주공종중분파도’ 표석이 있다.

영모재의 대지 면적은 1,487㎡, 건물 면적은 149㎡이며, 건물 형태는 가구식(架構式) 기단에 출입구는 좌우, 중앙에 계단이다. 팔작 기와지붕에 겹처마로 목조 전통 한옥 양식이다. 정면 5칸, 측면 3칸이고 건물 처마 중앙에 ‘영모재’ 현판이 걸려 있다. 창방 위의 기둥 출목 공포는 2익공 짜임이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화반이 장식되어 있다. 동서남북 4기둥 추녀 밑에는 용두가 있다. 용두는 혼영호위와 화재 예방의 신이다. 정면 문은 20짝 문으로 출입이 용이하다. 기둥에는 여산 송씨 가문을 기원하는 주련이 부착되어 있다. 내부에는 우물반자 천장이 재실의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앞면 1·2단에 위패를 모셨고, 3단은 제단이다. 제단 문은 10짝으로 닫혀 있다. 양쪽으로 방이 있는데, 주로 사무실과 주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재실 내부에 ‘영모재 창건기’, ‘영모재 상량문’, ‘여산 송씨 계보’, ‘영모재 상량식’ 등의 사진이 게시되어 있다. 영모재 앞 잔디 마당 오른쪽 담장 아래에 영모재 건립비가 있고, 그 옆에는 여산 송씨 16세손 송준식 제단이 있다.

[현황]

영모재는 156위를 봉안하고 있다. 향사일은 음력 10월 셋째 일요일인데, 여산 송씨 후손 100여 명이 참석하고 있다. 지서문중에서는 숭조 정신과 경로사상 고취의 일환으로 상리 마을 경로잔치를 매년 영모재에서 열고 있다.

[의의와 평가]

영모재는 전통 한옥 목조 건물로 표준적인 재실이며 도편수 김창희의 대표적 작품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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