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73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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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盤如洞上里-礪山宋氏世居地 |
영어의미역 | Residential Place of Yeosan Song Clan in Banyeo-dong Sangri Village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동 상리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주영택 |
[정의]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동에 있는 여산 송씨 세거지.
[개설]
당나라에서 호부 상서를 지낸 송주은(宋柱殷)의 7세손인 송자영(宋自英)이 아들 셋을 두었는데, 그중 첫째 아들 송유익(宋惟翊)이 여산 송씨(礪山宋氏) 시조다. 송유익은 고려 숙종(肅宗) 때 진사를 지내고 나라에 공을 세워 여산군에 봉하여졌으며, 은청광록대부 추밀원 부사(銀靑光祿大夫樞密院副使)에 추증되었다. 그 아들 송숙문(宋淑文)은 원종(元宗) 때 문하시중으로서 여량(礪良)[여산] 부원군에 봉하여졌다. 여산 송씨 시조의 묘는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호산리 산4번지 문수동에 있다. 5세손 송염(宋琰)과 송분(宋玢)의 아들 대에서 세도 가문을 이루면서 여러 파로 갈린다. 반여동 상리 마을 여산 송씨 집안은 송염의 후손들이다.
송염의 다섯 형제 가운데 첫째인 송운(宋惲)은 원윤공파(元尹公派)를 이룬다. 송운의 네 아들 중 넷째 아들이 송장경(宋長卿)이고, 송장경의 아들이 송극명(宋克明)이다. 송극명은 동주공(東洲公)으로 동래 입향조다. 송극명은 수양 대군(首陽大君)이 단종(端宗)의 왕위를 빼앗으려고 하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로 벼슬을 버리고 1454년경 동래 회동동 보덕산 기슭에 와 동대(東臺)와 동천(東川)에서 시와 낚시로 여생을 보냈다.
송극명의 아들 9세 송윤희(宋允熹)에게는 아들 여섯 명이 있었는데, 송승서(宋承緖), 송승효(宋承孝), 송승한(宋承翰), 송승보(宋承寶), 송승륜(宋承輪), 송승원(宋承源)이었다. 이들 후손들이 대대로 동래 지방에 세거하며 동래 향청과 향교의 주요 직책을 맡아 동래 지역민을 위해 많은 역할을 하였다.
[명칭 유래]
반여동은 지형이 소반(小盤)[작은 밥상]처럼 동그랗다는 풍수설의 영향으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상리 마을은 반여동의 자연 마을 중 가장 위쪽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송윤의 여섯 아들 가운데 다섯째 아들 송승륜의 후손인 송지서(宋之瑞)가 1650년 경 반여 1동 상리 마을에 입향하였다. 현재 여산 송씨 원윤공파 동주공존중 기장파 지서문중이다.
[자연 환경]
반여동 상리 마을은 북쪽으로 석대동에서 이어진 산지가 있고, 남쪽에는 장산에서 이어진 위봉[262m]이 솟아 있으며, 두 산지 사이에 석대천이 흐른다. 마을은 석대천의 남쪽 평지에 자리한다. 마을의 남서쪽에서 석대천이 수영강과 합류하는데, 이곳에는 소(沼)가 발달하고 주변에 너럭바위가 깔려 있어 굴바이[해운대구 반여동 737번지]라 하였다.
[현황]
반여동 상리 마을에는 한때 여산 송씨 40여 가구가 살았으나 2013년 현재는 12가구가 산다. 여산 송씨 지서 문중 재실은 영모재(永慕齋)로, 1990년 건립하여 156위를 봉안하고 있다. 향사일은 음력 10월 셋째 일요일이며, 100여 명이 참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