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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4526
한자 -産業
영어의미역 Footware Industry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장지용

[정의]

부산광역시의 산업 중 신발 제조와 관련된 업종.

[개설]

신발 산업은 부산 지역의 대표적인 산업이지만, 신발 산업이 부산 지역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평양의 최봉규가 1919년에 세운 고무신 공장, 혹은 서울의 이하영이 세운 대륙고무공업을 신발 산업의 효시로 본다. 부산 지역에서는 1923년 8월 김진수가 동구 좌천동 688번지에서 일영고무공업사를 설립한 것이 시초이다. 일영고무공업사 등 신발 공장 13곳을 합병하여 범일동에 들어선 것이 삼화호모(三和護謨)이며, 광복 이후 삼화고무의 전신이다.

광복 이후에는 삼화고무, 보생고무, 조선고무 등의 적산 공장과 토착 자본이라 할 수 있는 경성고무, 사상고무와 함께 신흥 자본이라 할 수 있는 국제화학[양태진·양정모, 1949], 태화고무[김학명·신금봉, 1947] 동양고무[현수명·현승훈, 1953, 화승의 전신] 등이 등장하였다.

[신발 산업의 성장]

1970년대는 부산의 신발 시대가 본격화되는 희망의 시대였다. 1980년대 후반까지 신발 산업은 단일 품목으로 40억 달러를 수출하는 등 우리나라 수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특히 부산 지역은 1970~80년대 세계 최대 운동화 생산 도시로 유명했다. 당시 부산 지역에서 대유행한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대량 생산 시스템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획기적인 생산 방식으로 글로벌 신발 업계에서는 국제상사가 처음 개발했다고 해 ‘KJ 생산 시스템[KJ Product System]’으로 불린다. 신발 수출이 크게 늘면서 태광실업[박연차, 1971, 정일산업으로 출발], 삼호산업[박연구, 1974, 태광케미런], 세원[김병춘, 1979] 등이 새롭게 진입하기도 하였다.

[신발 산업의 추락]

1980년대에도 신발 산업의 추락을 경험한 신진 세대들이 신발 왕국의 부활을 꿈꾸며 창업하였다. 주문자 상표 부탁 방식에 기반을 두면서 세계 시장을 장악하거나 특수화와 자기 브랜드를 출시하였다. 영풍제화[김택실, 1980, 안전화와 전투화], 우연[정칠상, 1986, 자전거 신발], 학산[이원목, 1988, 비트로], 성호실업[권동칠, 1988, 트렉스타와 엠베테 MBT] 등이었다.

이러한 활로 모색에도 불구하고 선도 신발 업체들은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에 생산력 강화 방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높은 인건비와 주문자 상표 부탁 방식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삼화고무, 진양고무, 태화고무, 동양고무 등 대규모 회사들이 도산하거나 추락하였다. 국제상사도 르까프 등 자사 브랜드를 출시하였지만 늦은 감이 있었다. 1990년대를 기준으로 하면 제조 원가의 25~30%를 노무비가 차지하는 대표적인 노동 집약적 산업이었으며,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수출의 95%를 주문자 상표 부착 방식으로 수출하고 있었다.

이 같은 흐름은 연간 수출액만으로도 알 수 있다. 1977년 4억 8862만 달러였던 신발 수출액은 1987년 27억 5587만 달러로 10년 만에 5배 이상 성장했다. 그러나 이후 1990년 43억 705만 달러를 정점으로 가파른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2004년에는 4억 9964만 달러로 줄었다. 연평균 11%씩 생산이 감소하고 수출 규모도 연간 17%씩 급격하게 감소했다. 1992년까지만 해도 수출액이 32억 달러로 전체 수출의 4.2%를 차지하고 있었고, 고용 효과도 커서 전체 생산 활동 인구 중 2.4%에 해당하는 18만 명이 종사하고 있었다. 세계 시장에서 우리의 신발은 이탈리아와 중국에 이어 3위의 시장 점유율을 보이고 있었고, 1992년에는 미국 혁제 운동화의 33.4%를 점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명성은 과거의 추억이 되었다.

[신발 산업의 재도전]

1990년대 이후로는 삼덕통상[문창섭, 1997], 이이손[김희석, 1999], 아로펙코리아[김정재, 2001], AMT코리아[김명훈, 2003] 등이 축적된 기술과 전문화를 배경으로 새롭게 도전하고 있다. 부산 지역의 신발 산업은 높은 경쟁력으로 부가 가치를 가지는 부산의 주력 산업의 역할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2000년대 세계 신발 제품의 30%는 국내 자본과 자재, 관리 기술에 의해 생산되고 있다. 수출액은 2007년 4억 6263만 달러에서 2009년 4억 5000만 달러로 소폭 감소했지만 신발용 섬유·피혁·화학 약품 수출액 30억 달러까지 포함하면 매년 큰 폭의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2007년 말 기준 나이키·아디다스·리복 등 메이저 3개 브랜드의 신발 품목 중 한국계 기업의 생산량은 8000만 족[19%]으로 2억 8800만 족[67%]을 생산하는 대만계 기업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완제품 규모보다 관련 부품 수출액이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도 긍정적인 부분이다. 통계청이 조사한 2008년 부산 지역 10인 이상 신발 제조업체의 매출액은 1조 8511억 원으로 극심한 경기 침체 속에서도 2007년보다 5.1%나 늘어났다. 부산광역시도 신발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부산광역시를 신발 산업의 핵심 도시로 육성하기 위해 부산 신발산업진흥센터를 개설해 관련 업체들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또한 부산광역시는 국비 8000만 원에 시비 4억 1000만 원 등 총 5억 9000만 원을 투자해 부산 신발 산업 육성에 주력하였다.

[현황]

한때 업체 수를 기준으로 하면 60%를 넘었지만 현재는 44.3%이다. 고용의 감소는 이보다는 적지만 2011년 현재 전국의 46.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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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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