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5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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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瑬神道碑 |
영어의미역 | Memorial Stone of Gim Ryu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와동 14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준호 |
성격 | 신도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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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1968년![]() |
관련인물 | 김류|송시열|김상묵|김수연 |
재질 | 석재 |
높이 | 200㎝ |
너비 | 75㎝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와동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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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와동에 있는 김류의 신도비.
김류(金瑬)는 문신으로,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공신에 책록되었다. 병조판서 등을 거쳐 영의정을 역임하였고, 1644년(인조 22) 3월 심기원(沈器遠)이 반역을 일으키자 신속하게 평정한 공으로 영국공신(寧國功臣) 1등에 녹훈되고 순천부원군(順天府院君)에 봉해졌다.
김류 신도비는 1968년 김류의 10세손 김상묵(金商墨)과 11세손 김수연(金秀淵) 등이 주관하여 순천김씨(順川金氏) 문중에서 세운 것이다.
거대한 기단석 위에 오석으로 비신을 세웠고 이수(螭首)를 얹었으나 용을 양각한 조각 형태가 옛날 선인들의 솜씨에 비하여 좋지 않다.
비문은 송시열이 지은 것으로, 비 전면에 ‘승평부원군김공신도비명(昇平府院君金公神道碑銘)’라 새겨져 있다. 김류가 별세한 후 송시열이 지은 비문을 그대로 석각(石刻)하여 세운 것이다. 김류 후손의 형편으로 보아 송시열에게 비문을 받아 즉시 신도비를 건립했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 생존해 있는 후손 중 누구도 구비(舊碑)를 보거나 전해들은 바가 없다고 한다.
김류 신도비 옆에는 김류의 부친인 김여물의 신도비가 나란히 서 있다. 또한 옆에는 사세충렬문(四世忠烈門)이 있는데, 여기에는 임진왜란 때 순국한 김여물의 충신문과 병자호란 때 순절한 이 집안 4대 여인들의 열녀문이 봉안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