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17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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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 호미씻기,호미씻이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
집필자 | 한만영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음력 7월경 김매기가 끝나 농사가 일단락되면 호미를 씻어 걸어 두는 풍속.
호미걸이 는 농사일을 마친 후 호미를 씻어서 걸어 두어 다음 해의 농사를 대비한다는 의미이다. 호미걸이라는 표현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비롯한 경기도 지역에서 쓰였으며, 삼남 지방에서는 대부분 호미씻기라고 불렀다. 지역에 따라서는 마을 단위로 한 해 농사에 힘쓴 농민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잔치를 벌이기도 하였다.
조선 시대의 세시기(歲時記)에서도 호미걸이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기 힘들다. 아마도 호미걸이의 풍속이 등장한 시기가 17~18세기 이후이기 때문일 것으로 판단된다. 조선 후기 이앙법이 보편화되고, 광작(廣作)이 나타나면서 부농들은 자신이 소유한 노비와 함께 머슴을 고용하여 자신이 직접 한 해의 농사를 주도하였다. 이와 함께 주요 농사일이 끝날 무렵에 머슴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진 풍속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조선 후기 이앙법의 보편화 현상 덕분에 마을 단위의 공동 노동이 강화되어, 두레가 더욱 강화되었기 때문에 마을 단위의 행사로 이어졌던 것으로 판단해 볼 수 있다.
가을 고사를 지내 추수 감사와 기복(祈福)을 하고, 주요한 농사일을 마친 후 호미를 씻어서 걸어 두고 다음 해의 농사를 대비한다. 마을 단위의 행사를 하는 경우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하루를 즐기기도 하였다.
호미는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 쓰이는 대표적인 농기구이다. 호미걸이는 대체로 음력 7월 15일 경에 행해졌으며, 양력 절기상으로 처서(處暑)에 해당되는 시기이다. 처서는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며 풀이 더 이상 자라지 않는 시기이다. 호미걸이는 농사일 중에서 가장 힘들다는 논의 ‘김매기’가 끝난 것을 축하하며, 김매기에 사용된 농기구를 깨끗하게 정리하여 보관하면서 행해졌던 풍속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에는 대부분의 농촌에서도 호미걸이 풍속이 점차 사라지고 있으며,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와 같이 도시화가 진행된 지역에서는 큰 의미가 없는 세시 풍속이라 할 수 있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주민 김무웅은 호미걸이를 하나의 풍속으로 이해하지 않고 논농사에서 ‘김매기’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본다. 아마도 소규모의 농지에 의존하고 있던 이 지역에서는 두레나 머슴을 고용하여 농사를 짓는 경우가 많지 않아 이와 같은 풍속이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