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531088
한자 上萬貯水池
이칭/별칭 정금저수지(井金貯水池),개옹저수지(開雍貯水池)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지명/시설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옥희조장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준공 시기/일시 1930년 5월연표보기 - 정금저수지 준공
준공 시기/일시 1945년연표보기 - 개옹저수지 준공
최초 설립지 상만저수지 -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
현 소재지 상만저수지 -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지도보기
성격 저수지
면적 정금저수지: 24만㎡[몽리면적]|2만㎡[만수 면적]|개옹저수지: 6만 2000㎡[몽리면적]|8,000㎡[만수 면적]

[정의]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 주민들이 일제 강점기에 축조한 정금저수지와 개옹저수지.

[개설]

임회면 남쪽의 여귀산과 연대산 끝자락, 19번 국도 송월삼거리에서 동남쪽 약 2.5㎞ 지점에 일제 강점기에 축조한 정금저수지(井金貯水池)와 개옹저수지(開雍貯水池)가 있다. 진도 지역에서는 최초로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수리계를 조직하여 축조한 저수지들다. 정금저수지와 개옹저수지는 현재도 저수지로서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구글, 네이버, 다음, 국토정보지리원 등에서 제공하는 지도에서는 개옹저수지가 개용저수지로 표기되어 있는데, 개옹저수지가 정확한 명칭이다.

[건립 경위]

1926년부터 가뭄이 계속되자 상만리 주민들은 저수지 축조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이에 박형준 전 면장을 중심으로 지역 유지들이 뜻을 모아 1928년 상만리진흥회를 발족하였고, 이어 1929년에는 수리계를 발족하여 기반을 조성하였다. 정금저수지는 1930년 5월에 준공되었고, 개옹저수지는 1945년에 준공되었다.

정금저수지 축조 공사는 1929년 말에 착공해서 1930년 5월에 준공되었다. 축조 기술은 임회면 용산리의 용산저수지 축조 총책인 복도이랑이 지원했으며, 상만리중만리임회면 관내 5개 마을에서 인력을 충원하였다. 저수지 건립 비용은 총 6,000원으로, 이 중 4,000원에 대한 재원은 수리계원 10여 명의 농지를 저당하고, 진도의 대지주이자 몽리지의 최대 지주인 조병수가 보증을 서서 목포 식산은행에서 융자를 받았으며, 부족한 2,000원도 조병수가 차용해 주었다.

정금저수지 축조 후 채무 변제는 약정 기간보다 4년 빨리 완료하였으나, 물 부족 상태가 계속되었다. 이에 주민들은 이전의 경험을 살려서 1944년 정금저수지와 300m 정도 거리에 개옹저수지를 착공하였고, 1945년에 자체 인력으로 완공하여 물 부족 상태를 완화하였다. 상만리 주민들은 정금저수지를 축조하고 6년 후인 1936년에 ‘상만저수지시설사업기념비’를 세웠다.

[구성]

정금저수지의 준공 당시 문서에는 길이 30간, 높이 3간 반, 저수 면적 1정 2반보, 저수량 18정척(町尺), 몽리면적 25정 3반보로 기록되어 있다. 농어촌공사 자료에 의하면 정금저수지는 제방 길이 57m, 제방 높이 9m, 몽리면적 24만㎡, 만수 면적 2만㎡이고, 개옹저수지는 제방 길이 93m, 제방 높이 7.5m, 몽리면적 6만 2000㎡, 만수 면적 8,000㎡로 기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