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14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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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珍島都護府 |
영어음역 | Jindo Dohobu |
이칭/별칭 | 진도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정호 |
조선 후기 진도에 설치된 도호부.
조선은 1413년(태종 13)에 지방제도를 정비하면서 종래 각 도의 단부관(單府官)을 도호부로 고치고 종3품의 도호부사를 두었다. 1415년에는 군 가운데 1,000호 이상인 것은 도호부로 승격시켰다.
본래 중국에서는 군사적인 성격이 강하여 주로 변경에 설치되었으나 고려·조선시대에는 전국에 분포되어 있었다. 도호부의 수는 후기에 갈수록 증가해 세종 초에 38읍이던 것이 중종 때 45읍, 고종 때에는 75개 읍으로 격증되었다. 읍격(邑格)상 목사와 군수의 중간에 해당되는 것으로서 1894년에 군으로 통합되어 폐지되었다.
1860년 북경이 영·불 연합군에 점령당하고 양인들의 근해 침략이 시작되고 있었다. 1863년 흥선대원군이 정권을 잡으면서 남해안의 요충지인 진도의 방위력을 높이기 위해 1866년 종4품 진도군수를 종3품 도호부사 품계로 올려 거진(巨鎭)을 삼았다.
진도도호부로 승격되자 진도부사는 영광·함평·영암·해남 등의 네 고을의 군수와 금갑·남도·임자·이진·어판·목포·지도·다경·마량 등의 9진 만호를 지휘하는 병권을 가지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해남군의 화원면이 진도부에 편입되었고 군내면은 부내면이 되어 1917년까지 부내면을 유지하였다. 1874년 흥선대원군 실각 후 진도도호부는 군으로 다시 강등되었다.
그러나 1889년 최병두(崔炳斗) 군수 이후 1895년 부임한 이전(李琠) 군수까지 5명이 부사 발령을 받았다. 또한 동학농민전쟁 당시 이희승(李熙昇) 군수도 부사 발령을 받아 그의 비에 부사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