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05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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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鐘基 |
영어음역 | Park Jonggi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윤선 |
성격 | 예술인|음악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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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
성별 | 남 |
생년 | 1879년![]() |
몰년 | 1939년![]() |
본관 | 밀양 |
전라남도 진도군 출신의 민속예술인.
박종기는 대금산조의 시조로 거론되는 진도의 대표적인 전통악기 연주가이다. 1879년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에서 태어난 뒤 진도읍에서 살다가 20세를 전후로 삼막리로 이사하였다. 어려서부터 대금과 통소를 배웠고, 공력을 쌓아 삼현육각과 산조에 능하였는데, 대금산조의 경우 천하 명인으로 이름을 떨쳤다.
박종기의 아버지 박덕인(朴德寅)[일명 朴基順]은 무정 정만조가 『은파유필』에 그 재주를 기록할 정도로 당대에 뛰어난 대표적인 진도의 예인이었다. 50세가 되던 1897년에 아들 박종기를 낳았는데, 종기가 다섯 살 되던 해에 몸이 약한 부인 김씨가 죽자 어린 종기를 데리고 3년간 매일 30리나 되는 부인의 묘를 찾았다고 한다.
바로 이 기간에 박종기는 아버지로부터 여러 예능을 이어받았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후 박종기는 스스로 여귀산(임회면)의 황죽(黃竹)을 이용하여 직접 대금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박종기는 20세를 넘기고 5촌 조카인 박동준(朴東俊)의 주선으로 서울에 올라와 활동을 시작했다. 1906년에 처음으로 유명인사들 앞에서 이화중선·임방울 등 명창과 함께 대금(大笒:젓대)을 연주하였다.
1930년대 판소리가락을 엮어 음악성이 매우 뛰어난 대금산조(大笒散調)를 만들었는데, 이러한 박종기의 가락을 ‘소리더늠 대금산조’라고 부른다. 이 가락은 한주환(韓周煥)·이생강 등에게 전수되었고, 권부자(權富子)가 배워 연주한 것이 채록되어 악보화 된 뒤에 교육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1933년에 창립된 조선성악연구회에 가입해 남도음악을 연구하고 후진양성에도 힘썼다.
박종기는 한때 조선성악연구회에서 활동하였고 유성기 음반도 취입하였다. 그의 문하에서 한주환이 공부한 바 있는데, 한주환의 제자 이생강과 서용석 등이 오늘날 대금산조를 잇고 있어서 박종기를 대금산조의 시조로 꼽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