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8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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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錫冑 |
이칭/별칭 | 사백(斯百),식암(息庵),문충(文忠)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인호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풍(淸豊). 자는 사백(斯百), 호는 식암(息庵). 증조할아버지는 김흥우(金興宇)이며, 할아버지는 영의정 김육(金堉)이고, 아버지는 병조 판서 김좌명(金佐明)이다. 어머니는 신익성(申翊聖)의 딸 평산 신씨(平山申氏)이며, 부인은 이후원(李厚源)의 딸 전주 이씨(全州李氏)와 황일호(黃一皓)의 딸 창원 황씨(昌原黃氏)이다. 현종의 비이자 숙종의 어머니인 명성 왕후(明聖王后)[1642~1683]와 사촌 지간이다.
김석주(金錫冑)[1634~1684]는 1657년(효종 8) 사마시를 거쳐 1662년(현종 2) 증광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전적을 지낸 후 이조 좌랑, 사간원 정언, 사헌부 지평·부교리·수찬, 사간원 헌납·교리 등을 차례로 지냈다. 1674년(숙종 즉위년) 2차 예송(禮訟) 때 남인과 제휴하여 송시열(宋時烈) 등 서인 산당(山黨)을 축출하였으며, 그 후 각 조 판서와 훈련대장·호위대장 등을 지냈다. 외척(外戚)의 중심 세력으로 왕의 측근에서 정치를 행하면서 사실상 숙종 전반기에 정국을 주도하였다.
문집으로 『식암선생유고(息庵先生遺稿)』가 있다. 문장이 뛰어나 최명길(崔鳴吉), 남구만(南九萬), 김창협(金昌協)과 함께 당대의 사대소차가(四大疏箚家)에 꼽혔다.
조정에서 내린 포천 신령리에 장사 지냈다.
1680년(숙종 6) 허견(許堅)의 역모를 적발한 경신환국으로 보사공신(保社功臣)이 되어 청성부원군(淸城府院君)에 봉해졌고,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으로 공신호가 박탈되었다가 훗날 복구되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