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3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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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盤戰鬪 |
영어공식명칭 | Geumban-ri Joint Operation |
이칭/별칭 | 금반리 합동작전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고지수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51년 12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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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결 시기/일시 | 1951년 12월 10일![]() |
발생|시작 장소 |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금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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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결 장소 |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금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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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전투 |
관련 인물/단체 | 충남 제4지대 빨치산부대|휴천지서|경찰특공대|최시문 |
1951년 12월 10일,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금반리에서 빨치산 부대와 국군·경찰특공대 간에 벌어진 전투.
1951년 12월 무렵 지리산 공비 토벌 작전 가운데 지리산 외각인 법화산 고지에서 국군부대가 빨치산 제4지대[독립 부대]와의 교전으로 수백 명의 빨치산을 몰살시킨 전투가 있었다. 법화산 교전 이후에 함양군 휴천면 휴천지서를 작전본부로 한 토벌 경찰특공대는 총 병력 약 150명으로 휴천면 목현리 33고지, 갱이봉고지, 대포고지, 석정고지, 금반고지 등에 분산 배치되어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법화산 교전 이후 1951년 12월 10일 12시경 빨치산 제4연대 238명이 화장산 고지를 지나 선부골을 따라 금반고지로 향한다는 정보가 민간인의 신고로휴천지서의 국군 작전본부에 알려졌다. 또 덕유산 전투에서 대대장을 잃은 백야전사령부 1개 중대가 함양비행장에 주둔 중에 빨치산 부대의 금반고지 이동 소식을 접하고, 금반마을을 포위하여 모조리 무찌를 작전계획을 수립하였다. 아군 1개 중대 병력과 휴천지서[지서장 최시문] 경찰관 30명, 특공대 120명과 빨치산 부대 간에 10시간이 넘는 교전이 벌어졌다. 이 금반 전투를 가리켜 ‘금반리 합동작전’이라고도 부른다.
함양군 휴천면 금반 전투 교전 결과 빨치산 사살자 140명, 생포 8명, 무기 240정 노획의 결과를 얻었다. 금반 전투의 작전과 전투상황은 휴천지서 비밀문서에 기록되어 있다.
이태(李泰)의 빨치산 수기와 정충재가 쓴 『정순덕 실록』에는 국군 토벌대의 지리산 4차 공세로 수천명의 빨치산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특히 금반 전투는 빨치산 제4지대가 국군 토벌대에 의해 크게 타격을 입은 전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