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251
한자 厚山里
영어공식명칭 Husan-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후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병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후산리 개설
후산리 -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후산리 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10.269㎢
가구수 132가구
인구[남/여] 235명[남자 112명|여자 123명]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후상리(厚上里)와 후하리(厚下里)에서 ‘후(厚)’를 따와서 지은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장동면의 온득리(溫得里), 후상리(厚上里), 후하리(厚下里), 가마리(加馬里), 질마리(叱馬里)를 통합하여 해남군 화원면 후산리로 개설되었다. 이 중 온득리, 후상리, 후하리는 1789년에 편찬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기록된 장서면의 온득리, 상후포리, 하후포리와 같은 마을이다. 이들 마을은 1912년에 편찬된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 장동면에 속한 것으로 보아 어떤 시점에 장서면에서 장동면으로 편입되었다. 그 과정에서 마을 이름도 후상리와 후하리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온득리는 1925년 이후에 온덕마을로 바뀌었다.

현재 후산리(厚山里)는 후포마을, 온덕마을, 송촌마을, 가마마을, 질마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후포마을은 1670년경 경주최씨 최지후(崔知厚)가 해남 연동에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온덕마을은 1670년경 경주최씨 최동식(崔同植)이 이주하여 정착하였다고 전하며, 무안박씨가 최초 입향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송촌마을은 1636년 병자호란을 피하여 여산송씨 송철(宋哲)이 입향하여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가마마을은 1866년경 경주김씨 김문학(金文學)이 정착하였다고 전하며, 그 후 밀양박씨, 여산송씨 등이 들어왔다고 전한다. 질마마을은 1875년경 여산송씨 송백원(宋白元)이 들어와 살았다고 전한다. 온덕마을은 1670년경 경주최씨 최동식(崔同植)이 이주하여 정착함으로써 마을을 이루었다고 전하며, 무안박씨가 최초로 입향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자연환경]

동남쪽 금평리와 연결하여 운거산(雲居山)[300m]이 접하고 있다. 서쪽의 바다 건너로 신안의 안좌도와 팔금도가 멀리 보인다.

[현황]

후산리(厚山里)는 북쪽으로 매월리, 월호리, 동쪽으로 영호리, 남쪽으로 인지리, 신덕리, 서쪽으로 바다와 접하고 있다. 2018년 10월 31일 현재 면적은 10.269㎢이며, 온덕리, 후포리, 송촌리, 가마리, 질마리의 5개 행정리에 132세대, 235명[남자 112명, 여자 12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주 소득원은 쌀이다. 특작물은 배추, 양파를 재배하고 있다. 축산업에 종사하는 농가도 일부 있다. 특작물은 무화과와 양다래, 배를 생산하고 있다. 농업용수는 가마저수지, 후산저수지, 후산제, 정골저수지, 북중골저수지의 물을 이용하고 있다. 후산리는 2003년 8월 22일에 군 보호수[15-14-14-4]로 지정된 해송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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