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249
한자 靑龍里
영어공식명칭 Cheongyong-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청룡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병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청룡리 개설
청룡리 -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청룡리 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3.119㎢
가구수 374가구
인구[남/여] 676명[남자 360명|여자 316명]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청룡리(靑龍里)운거산[일명 청룡산]의 왼쪽[좌청룡]에 위치하기 때문에 ‘청룡’이라 불렀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본래 해남군 관저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관저면에 있던 중리를 중심으로 상리·하리의 일부 지역을 통합하여 해남군 화원면 청룡리로 개설되었다. 청룡리는 조선시대 황원곶 목장을 관장하던 감목관이 주재하던 마을이었다. 1445년(세종 27)에 화원 지역에 목장을 설치하면서 이를 관장하는 감목관과 목장을 관리하는 서리들이 거주하였다. 이후 황원곶 목장은 관리 주체를 두고 영암군과 해남현 사이에서 떠넘기기 논쟁이 벌어지다가 1448년(세종 30)에 해남현으로 넘어왔다. 황원곶 목장은 조선 중종 이후에 폐지된 것으로 보이나, 감목관은 폐지되지 않고 진도의 지력산장(智力山場)을 관리·감독하면서 계속 남아 있게 되었다. 『호구총수』[1789]에 나오는 목상리(牧上里), 목중리(牧中里), 목하리(牧下里)가 바로 감목관이 주재하던 마을이다. 1906년 지방행정체제 개편 시 감목관을 폐지하고, 관저면을 설치하였다. 이때 예전의 마을 이름에서 첫 글자인 ‘목(牧)’ 자를 떼어서 상리, 중리, 하리로 바꾸었다.

현재 청룡리는 상리마을, 중리마을, 하리마을, 신주광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예전부터 유지되었던 상리, 중리, 하리 마을과 화원관광단지 개발로 2005년부터 새로 이주한 주민들로 이루어진 신주광마을이 그것이다. 상리마을은 1270년경 밀양박씨 박종길(朴宗吉)이 삼별초 난을 피하여 입향하여 형성된 마을이라고 전한다. 상리마을에는 감목관이 거주하는 청사가 있었다고 한다. 중리마을은 1274년 진주강씨 강현철(姜鉉哲)이 약초를 캐러 왔다가 정착하였다고 한다. 하리마을은 1216년 전주이씨 이덕철(李德哲)이 중리마을에서 분가하여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자연환경]

동쪽의 금호호를 사이로 산이면 금호리가 마주 보인다. 서북쪽에 운거산[청룡산]이 자리하고 있다.

[현황]

청룡리(靑龍里)는 북쪽으로 영호리, 동쪽으로 금호호 건너 산이면 금호리, 남쪽으로 신덕리, 서쪽으로 금평리와 접하고 있다. 2018년 10월 31일 현재 면적은 1.452㎢이며, 상리, 중리, 하리, 신주광리의 4개 행정리에 371가구, 673명[남자 357명, 여자 31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농업이 주를 이루면서 상업과 광업, 공무원 등 주민들이 종사하는 분야가 다양하다. 특히 화원관광단지가 조성되면서 이주한 신주광마을은 농업과 상업 종사자가 많다. 밭이 많아 배추와 양파를 주로 많이 재배한다. 농업용수는 안골저수지와 절골저수지 물을 이용하였다. 청룡리 중앙에 남북 방향으로 국도 제77호선이 지나간다. 청룡리에는 화원초등학교, 화원우체국, 화원터미널, 화원농협김치가공공장, 대한조선기술교육원, 화원천주교회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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