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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290
한자 婚禮
영어공식명칭 Wedding Ceremony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한서희

[정의]

광주광역시에서 성인이 된 남녀가 부부 관계를 맺는 의례.

[개설]

혼례란 성인 남녀가 서로 결합하여 부부가 되는 의례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부터 혼인을 치러야만 완전한 성인으로 대접하여 왔으며, 혼인을 해야만 죽었을 때 장례를 치러 주고 제사를 지내 주게 되어 혼례는 사례(四禮)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광주광역시에서 전통적으로 행해졌던 혼례는 신부집 마당에서 의례가 이루어지고 다음 날 신행길에 오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이러한 혼례 양식은 다른 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오늘날은 전통적 혼례 방식이 아닌 전문 예식장에서 서양식 혼례로 치러지고 있으며, 전통적인 혼례는 광주광역시 도심에 있는 향교에서 특별한 행사의 일환으로 행해지는 것 외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연원 및 변천]

혼례 풍속의 연원을 상고하기는 쉽지 않지만 대체로 삼국시대부터 전통적인 의미의 혼례 방식이 행해졌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三國志魏書東夷傳)』에 신부집에서 혼례를 행한 뒤 신부가 자녀를 출산하여 성장한 뒤에야 비로소 시가로 간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이 당시에 신랑의 초행과 재행, 그리고 신부의 우귀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대례상(大禮床)의 상차림 내용이나 합근지례(合卺之禮)·교배지례(交拜之禮)의 내용도 『주자가례(朱子家禮)』에는 없는 내용이어서 고려시대 이전부터 이미 민간에 행해져 왔던 것으로 짐작된다.

혼례가 체계화되고 정형화된 형식을 갖추게 된 것은 조선시대로, 고려 말에 들여온 『주자가례』가 지배층에 적극 수용되고, 조선 초의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대부·사·서인의 관혼상제가 기록된 점, 그리고 조선 중기에 『예서(禮書)』가 한글로 번역되어 민간에 보급된 점 등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전통 혼례와 신식 혼례가 공존하게 되는데, 신식 결혼은 1890년대에 '예배당 결혼'을 통해서 시작되었다. 이후 1930년대에 계명구락부(啓明俱樂部)를 중심으로 오늘날의 예식장에서 행하는 사회 결혼(社會結婚)이 보급되었다. 이러한 변화와 함께 조선총독부에서 1934년에 발표한「의례준칙」과 1961년의「의례준칙」, 1969년의「가정의례준칙」은 전통 혼례의 변화를 초래하게 하였고, 오늘날에는 예식장에서 서양식 결혼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양상이 되고 있다.

[절차]

광주광역시에서 행해져 온 전통 혼례의 절차는 크게 의혼(議婚), 초행(初行)과 혼례식(婚禮式), 동상례(東床禮)와 첫날밤, 신행(新行)과 재행(再行), 근친(覲親)의 순으로 진행된다.

1. 의혼(議婚)

혼담을 진행시키고, 혼사 결정 이후 양가가 여러 가지 문서를 교환하여 혼인을 진행시켜 나가는 과정이다. 양가가 혼인을 하기로 결정하면 남자 측에서 여자 측에 신랑의 사성(四星)을 보내게 된다. 사성은 신랑의 생년월일시의 사주를 적은 것으로 사주단자(四柱單子)라고도 한다. 사성은 중매쟁이를 통해 가져가는데, 사성이 오면 신부집에서는 집안 어른들을 모셔 놓고 혼주가 정중하게 받아 상 위에 올려놓은 다음 개봉하거나, 신부의 어머니가 치마로 싸서 쌀독에 넣어 두었다가 다음날 꺼내 보는 경우도 있다. 사성을 받으면 신부 측에서는 혼례 날짜와 시간을 가려 신랑집에 보내는데 이것을 '날받이'라고 한다.

2. 초행(初行)

대례(大禮), 즉 혼례 당일 신랑이 신부집을 향해 가는 것을 초행 또는 초행길이라고 하는데, 광주광역시에서는 이를 '장개질' 또는 '장가질'이라고 표현한다. 전안시(奠雁時)가 날받이에 이미 통보되어 있으므로 시간을 계산하여 출발한다. 초행길은 '신랑-상객-중방-하인'의 순서로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3. 혼례식(婚禮式)

신랑이 신부 마을에 도착하면 주점에 들어 잠시 쉬는데, 그동안 중방이 함을 지고 혼례식이 진행될 대례청으로 간다. 함은 신부 측 하인 또는 단골에 의해 대례상 위로 넘겨져 신부의 어머니나 마을에서 팔자 좋은 부인이 치마로 받는다. 함 안에는 예물과 혼서지, 사모관대, 원삼과 족두리, 고추와 메주, 미역, 미양씨 등이 들어 있으며, 함을 건넨 중방이 주점으로 돌아오면 전안시에 맞춰 신랑이 오리를 안고 대례청에 들어간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혼례식이 진행된다. 대례청은 마당에 멍석을 깔고 그 위에 대례상을 차리는데, 상 뒤에는 병풍을 치고 위에는 차일을 친다. 대례상은 절구통 위에 '안반'을 올려놓은 것으로 양쪽에 대나무와 소나무를 꽂고 상 위에는 살아있는 암·수탉과 무로 숭어를 깎아서 대추를 물려 놓으며, 미양씨와 고추, 팥, 콩 등을 한지에 싸서 묶어 놓는다. 예식은 홀기에 따라 진행되며, 식이 끝나면 신부가 먼저 큰방으로 들어가고 다음에 신랑이 들어간다. 큰방은 병풍을 사이에 두고 신랑과 신부가 갈라 앉으며, 각기 예복을 벗고 새옷으로 갈아입는다. 상객이 돌아갈 때 신부는 예복을 갖추고 절을 한 후 예복을 벗고 마당까지 나와서 반절로 전송한다.

4. 동상례(東床禮)와 첫날밤

첫날밤을 신부집에서 자고 다음날 신행을 간다. 첫날밤 저녁에 신부의 친척들이 모여서 신랑을 다루며 노는데 이를 동상례(東床禮) 혹은 '신랑 다루기'라고 하며, 동상례가 끝나고 안방에 꾸며진 신방에 들어가 신랑과 신부가 첫날밤을 보내게 된다.

5. 신행(新行)

신부가 혼례식을 마치고 처음으로 시가에 가는 것을 신행이라고 한다. 신행은 혼례식 다음날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3일 만에 하는 경우도 있고, 일진을 보아 살이 낀 날이거나 신부집이 부유하여 여유가 있는 경우는 1년 만에 신행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신랑만 돌아가고 신부는 일년 '묵힌' 경우다. 이때는 신행 날짜를 따로 받아 이바지를 장만하여 가지고 간다. 신행은 '신부-신랑-상객-짐꾼'의 순서로 간다. 신부의 가마가 시댁에 들어서면 신랑이 가마 문을 열어 주고, 신부는 인접의 도움을 받아 큰방으로 들어간다. 이후 폐백(幣帛)을 드리는데, 시가의 일가친척들에게 인사를 드리는 의식으로 '구고례(舅姑禮)'라고도 하며, 마당에 멍석을 깔아놓고 신부가 마당에서 마루에 앉은 시부모를 향해 절을 올린다. 이때 신부는 친정에서 마련해 간 폐백감을 폐백상에 차려놓고 절을 하며, 먼저 시부모께 큰절을 올린 다음 조부모부터 순서대로 절을 하고, 육촌 이상은 한꺼번에 맞절을 한다.

6. 재행(再行)

혼례 후 신부가 친정에 가는 것이 재행이다. 신행 후 3일 만에 가는 것이 일반적이며, 이때 이바지를 해 가는데 흰떡과 인절미, 술과 고기 등을 준비해 간다.

7. 근친(覲親)

혼인 후 1년이 되면 근친을 간다. 신행 후 1년 농사를 지은 다음 그것으로 이바지를 해서 가져가는데, 신랑은 며칠 머물다 혼자 돌아오고 신부는 한 달 정도 머물다 친정아버지와 함께 이바지를 해 시가로 돌아온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광주광역시뿐 아니라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혼례를 치르지 않으면 완전한 어른이 아니라고 여겨 왔다. 이와 관련하여 미혼으로 죽은 사람은 산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해를 끼친다고 하여, 죽은 사람을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삼거리에 묻어 그 원혼이 나오지 못하게 하는 등의 여러 속신 행위가 행해지기도 하였다. 또한 광주광역시에서 전통적인 혼례식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에 예식장이라 불리는 전문 혼례식장에서 턱시도와 드레스를 갖춰 입은 서양식 혼례식이 주를 이루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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