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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3582
한자 -行進曲
영어공식명칭 March for the Beloved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작품/음악·공연 작품 및 영상물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유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창작|발표 시기/일시 1981년연표보기 - 「임을 위한 행진곡」 창작
초연|시연장 망월동 공동묘지 - 광주광역시 북구 수곡동 산 29-2 지도보기
성격 민중가요
양식 세 도막 형식|4/4박자|가단조|행진곡풍
작곡가 김종률
작사자 백기완|황석영
연주자(가수) 오정묵|김종률
공연(상영) 시간 약 1분 30초[연주의 속도에 따라 시간은 다소 상이]

[정의]

5.18민주화운동 중 희생된 시민군 윤상원과 1978년 사망한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위하여 1981년에 만들어진 민중가요.

[개설]

「임을 위한 행진곡」5.18민주화운동 당시 항쟁지도부를 규합하고 대변인으로 활동하다가 산화한 윤상원과 1978년에 노동운동을 하다가 사망한 윤상원의 후배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창작된 「노래극 넋풀이」에 아홉 번째 순서로 들어간 노래이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라남도 광주에 거주하던 소설가 황석영은 광주의 문화 운동을 하던 청년들을 모아 영혼결혼식을 노래극으로 만들어 윤상원박기순에게 선물할 것을 제안하였고, 청년과 학생들은 황석영의 제안을 실행에 옮겼다. 이렇게 만들어진 노래극 안에는 7곡의 노래와 무당의 초혼굿마당, 그리고 문병란 시인의 시 「부활의 노래」가 들어 있다. 「노래극 넋풀이」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노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공연 상황]

소설가 황석영은 공연에 참여할 이들을 자신의 자택 2층으로 모이게 하였다.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창문을 담요로 가리고 기타, 장구, 북, 꽹과리, 징 등으로 연주하면서 빌려온 소형 녹음기에 노래극 공연을 녹음하였다. 현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은 오정묵[오창규]이 노래하였다.

[구성]

a-b-c로 구성된 세 도막 형식이다. a와 c에 같은 리듬 꼴을 사용함으로써 노래에 통일성을 주었다.

[내용]

「임을 위한 행진곡」가사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끝없는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의의와 평가]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을 계기로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난 노래지만, 지역을 뛰어넘어 우리나라의 민주화운동과 여러 분야의 사회운동 현장에서 가장 많이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 더 나아가 지금은 일본, 대만, 홍콩, 중국, 태국,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미얀마 등지에서도 들을 수 있는 국제적인 민중가요가 되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오랫동안 넓게 사랑받는 노래가 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음악의 사회적 기능을 충실하게 해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완성도가 높기 때문이다. 음악인류학자인 메리암(A. P. Merriam)이 말하는 음악의 사회적 기능을 근거로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0년대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 신군부에 의해서 민주주의가 유린되어 버린 상황과 억압 등이 단조로 표현되었다. 1980년대는 심지어 행진곡마저도 단조로 창작되었는데,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0년대 전반에 생산되고 불리던 단조 행진곡을 대표한다.

둘째, 「임을 위한 행진곡」은 창작된 이래로 지금까지 사회운동에 앞장섰던 선배와 현재 사회운동을 하는 후배 사이를 이어 주는 커뮤니케이션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셋째, 「임을 위한 행진곡」은 죽음으로 지키려 했던 전라남도 광주의 5.18민주화운동과 이후 지속된 민주화운동, 윤상원이 전개하였던 노동운동의 상징적 표상으로서의 기능을 해내고 있다.

넷째, 「임을 위한 행진곡」은 육체적 반응을 일으킨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각종 사회운동의 현장에서뿐만 아니라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진행되는 순간에도 거의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흔들면서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

다섯째, 「임을 위한 행진곡」은 함께하는 사람들을 순식간에 하나의 목표로 통일시키는 힘이 있다.

여섯째, 「임을 위한 행진곡」5.18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모든 현장에서 부르는 의례의 노래가 되었다. 신군부의 끈질긴 방해 속에서도 진행되었던 추도식에서는 애국가를 대신한 민중의례곡이 되었으며, 1997년 이후 진행된 기념식에서도 「임을 위한 행진곡」은 묵념을 위한 기악곡으로, 때로는 제창곡으로 부르는 의례의 노래가 되었다.

일곱째, 「임을 위한 행진곡」가 지금껏 불리고 살아남은 이유에는 음악적인 성공도 큰 몫을 한다. 노래의 단정한 형식, 가사가 된 시와 노래의 배경이 되는 사건의 절묘한 부합, 가사의 의미와 함께 진행되는 선율의 적절한 클라이맥스 형성 등이 노래에 미학적 가치를 더해 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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