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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2230
영어공식명칭 Bak Changgwon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진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66년 5월 2일연표보기 - 박창권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80년 - 박창권 숭의중학교 2학년 재학
활동 시기/일시 1980년 5월 20일 - 박창권 전라남도청 앞 시위 현장에서 계엄군으로부터 총격
몰년 시기/일시 1980년 5월 21일연표보기 - 박창권 사망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7년 5월 - 5.18구묘지에서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
학교|수학지 숭의중학교 - 광주광역시 남구 오방로 34-13[방림동 50-3]지도보기
활동지 옛 전라남도청 - 광주광역시 동구 문화전당로26번길 지도보기
묘소 국립5.18민주묘지 - 광주광역시 북구 민주로 200[운정동 563]지도보기
성격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성별
대표 경력 숭의중학교 학생

[정의]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개설]

박창권[1966~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숭의중학교 2학년 재학 중 시위에 참여하다가 5월 21일 옛 전라남도청 부근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활동 사항]

1980년 5.18민주화운동 초기 대학생 중심이었던 시위에 5월 20일부터 전라남도 광주시 시민들이 합세하였다. 5월 21일 광주 시민들은 전라남도청으로 대거 집결하였다. 군중 속에는 당시 숭의중학교 2학년 학생인 박창권도 있었다. 박창권은 "비상계엄령 철폐", "김대중 석방", "계엄군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함께 외쳤다.

5월 21일 오후 1시경 전라남도청 앞 광장 분수대 주변에 진을 치고 있던 계엄군들이 앉아 쏴 자세를 취하며 집단 발포를 하였고, 박창권은 그때 총에 맞아 사망하였다. 사망 원인은 전흉부, 두부의 총상이었다.

가족들은 밤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렸는데, 전라남도청 앞 광장에서 총에 맞아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는 박창권의 친구 말을 듣고 구 적십자병원[서남대학교 병원으로 변경되었다가 2018년 2월 폐업]으로 향하였다. 구 적십자병원에 도착한 가족은 여러 시신 가운데 박창권을 발견하였다.

박창권을 비롯한 다른 시신들은 계엄군이 물러간 뒤 전라남도청 근처 상무관으로 옮겨졌다가 5월 27일 망월묘지공원[5.18구묘지]에 안장되었다. 1997년 5월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되었다.

[묘소]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묘지번호는 1-32이다.

[상훈과 추모]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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