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2191
한자 朴京柱
이칭/별칭 Bak Gyeongju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효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6년 5월 13일연표보기 - 박경주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0일 - 박경주 광주 3.1운동 참가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7~18일 - 박경주 「독립선언서」, 경고문, 「독립가」를 등사하여 전라남도 목포 등 인근 지역에 배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9월 15일 - 박경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형 선고
몰년 시기/일시 1938년 10월 5일연표보기 - 박경주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77년연표보기 - 박경주 대통령 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박경주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전라도 나주부 광주군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산 23-1]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송정리 만세 시위 준비위원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 출신의 독립유공자.

[개설]

박경주(朴京柱)[1896~1938]는 1896년 5월 13일 전라도 나주부 광주군[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선암동]에서 태어났다. 광주에서 일어난 3.1운동에 참가하였고, 그 뒤에도 「독립선언서」와 경고문, 「독립가」를 등사하여 전라남도 목포 등 인근 지역에 배포하고 만세 시위를 계속하다가 징역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10일 김강(金剛), 김철(金鐵), 최병준(崔丙浚), 최한영(崔漢泳) 등이 주도하여 전개한 광주 3.1운동에 참가하여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시위 군중에게 나누어 주고 "조선 독립 만세"를 부르며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부동정(不動町) 시장 거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불로동 174 일대]를 행진하였다.

그날 저녁 일본 경찰과 기마 헌병이 출동하여 김철 등 주모자를 연행하자, 박경주는 격노한 시위 군중을 결집하여 경찰서 마당으로 돌진한 뒤 연행자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일제는 재향군인, 소방수 등을 동원하여 시위 군중을 해산시키고 대대적인 검속을 실시하였다.

박경주는 검속을 피해 피신한 뒤 김태열(金泰烈)을 만나 「독립선언서」를 다시 인쇄할 것을 논의하였다. 그리고 범윤두(范潤斗) 등과 함께 1919년 3월 17~18일에 걸쳐 전라남도 광산군 송정면 선암리[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선암동] 자택에서 「독립선언서」와 경고문 각 1500여 매와 「독립가」 500여 매를 등사하였다. 박경주는 등사한 「독립선언서」와 경고문, 「독립가」를 전라남도 목포 등 인근 지역에 배포하고 독립만세 시위를 계속하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9월 1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고, 그 뒤 평양에 이주하여 살다가 1938년 10월 5일 사망하였다.

[묘소]

1997년 10월 17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2묘역에 안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1977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