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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공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2151
한자 曺公贊
영어공식명칭 Jo Gongchan
이칭/별칭 창산공찬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송보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0년 1월 7일연표보기 - 조공찬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0일 - 조공찬 광주 3.10만세운동 참가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30일 - 조공찬 광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 집행유예 2년 선고받음
몰년 시기/일시 1962년 3월 28일연표보기 - 조공찬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18년연표보기 - 조공찬 대통령 표창 추서
출생지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북문통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강점기 광주 3.10만세운동에 참여한 전라남도 광주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조공찬(曺公贊)[1880~1962]은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북문통[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동]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창산공찬(昌山公贊)이다. 1919년 3월 10일 광주 3.10만세운동에 참여하여 시내 곳곳을 행진하다가 현장에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활동 사항]

광주 3.1운동은 1919년 3월 10일 전라남도 광주군의 작은장날에 일어난 독립만세 시위이다. 김복현(金福鉉)[김철(金鐵)], 김강(金剛), 최병준(崔丙浚), 최한영(崔漢泳) 등의 주도로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다. 시위 주도자들은 미리 독립선언문과 태극기를 제작한 뒤, 1919년 3월 10일 오후 3시 반경 부동교 아래 장터에 나가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배포하였고, 선두에 서서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치고 시위를 이끌었다.

조공찬은 1919년 3월 10일 전라남도 광주에서 일어난 독립만세 시위에 동참하여 시위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 만세"를 부르며 시내 곳곳을 행진하였다. 이때 조공찬은 서문통[지금의 광주 충장로 우체국 앞길에서 황금동으로 가는 길]을 지나 우편소 앞으로 행진하던 중 현장에서 체포된 것으로 보인다.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조공찬은 1962년 3월 28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2018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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