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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673
한자 春木庵
영어공식명칭 Chunmogam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건물
지역 광주광역시 동구 서석로 31[황금동 79-5]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강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25년연표보기 - 춘목암 건립
훼철|철거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춘목암 철거
현 소재지 황금주차빌딩 - 광주광역시 동구 서석로 31[황금동 79-5]지도보기
원소재지 춘목암 -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성격 음식점
소유자 이진|조성순
관리자 이진|조성순

[정의]

광주광역시 동구 황금동에 있던 일제강점기의 한식집.

[개설]

춘목암(春木庵)의 최초 경영자인 이춘실(李春實)은 1917년 마산에서 광주로 옮겨 와 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황금동의 콜박스 사거리 근처에서 우동집을 운영하였다. 이춘실은 황금동 80번지 일대에 부지를 마련해 춘목암을 개업하였다. 그러나 1929년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이춘실의 여동생 이진(李珍)과 이춘실의 남편 조성순(趙成洵)이 경영을 이어 나갔다. 이진과 조성순의 경영으로 사업은 번창하였고, 1933년 증심사 입구 지금의 의재미술관 자리에 춘목암 별장까지 세웠다.

[위치]

광주광역시 동구 서석로 31[황금동 79-5]에 있었다.

[변천]

광복 직전 일본의 전시 체제 전환에 따른 유흥업소 정비 정책으로 운영을 중단하였다. 건물은 철도국 순천철도사무소에서 인수해 광주보선구 직원 숙소로 사용하였다. 광복 후 다시 춘목암 간판을 달고 문을 열었으나 오래 유지하지 못하였다. 이후 중국 음식점 춘화루(春華樓)로 잠시 운영되다 미군 숙소와 미군 장교의 클럽으로 쓰였다. 1949년 광주미국공보원이 들어서며 광주미문화원으로 운영되었다. 1980년 12월 9일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군부의 부대 이동을 묵인하는 미국의 책임을 규탄하는 광주미문화원 방화 사건이 발생하여 반미 운동의 상징적 공간이 되기도 하였다. 1987년까지 광주미문화원으로 사용되다 1989년 광주미문화원의 잠정 폐쇄 결정이 내려진 뒤, 1990년 건물이 철거되었다.

[형태]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유일한 조선인 건축가 김순하(金舜河)가 1458㎡ 부지에 연건평 731㎡ 규모로 설계 및 감독하여 건립하였다.

[현황]

현재 춘목암이 있던 자리에는 차량 350여 대를 세울 수 있는 주차 빌딩이 들어서 있다. 2021년 1월, 광주광역시 동구청이 '동구 인문산책길'을 조성해 춘목암을 비롯한 광주의 역사적 의미가 담긴 사라져 가는 장소에 안내판을 설치하였다.

[의의와 평가]

춘목암은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명성을 얻었던 식당으로 전라도의 식문화를 널리 알렸으며, 춘목암의 변화 과정을 통해 광주 근대사의 한 단면을 살펴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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