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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사기 상감 ‘경태5년명’ 이선제 묘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167
한자 粉靑沙器象嵌景泰五年銘李先齊墓誌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배재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454년 5월연표보기 - 분청사기 상감 ‘경태5년명’ 이선제 묘지 제작
문화재 지정 일시 2018년 6월 27일연표보기 - 분청사기 상감 ‘경태5년명’ 이선제 묘지 보물 제1993호 지정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8년 6월 - 분청사기 상감 ‘경태5년명’ 이선제 묘지 일본으로 반출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17년 9월 - 분청사기 상감 ‘경태5년명’ 이선제 묘지 국내 환수
현 소장처 국립광주박물관 - 광주광역시 북구 하서로 110[매곡동 산83-3]지도보기
출토|발견지 남촌 유곡 만산동 -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 지도보기
성격 묘지
재질 도토[분청사기]
크기(높이,길이,너비) 25.4㎝[가로]|28.7㎝[세로]
소유자 국가
관리자 국립광주박물관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제1993호

[정의]

광주광역시 국립광주박물관에 있는 조선 전기 분청사기로 만들어진 이선제의 묘지(墓誌).

[개설]

이선제(李先齊)[1390~1453]는 조선 전기 세종 때의 대표적인 문신 관료 중의 한 명으로, 세종 초년에 과거에 합격하여 이후 사관으로 『고려사(高麗史)』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집현전 부교리를 거쳐, 강원도 관찰사, 예문관 제학에 이른 인물이다. 묘지에는 "조선국가선대부예문관제학동지춘추관사세자좌부빈객이선제(朝鮮國嘉善大夫藝文館提學同知春秋館事世子左副賓客李先齊)"라고 쓰여 있다. 분청사기 상감 ‘경태5년명’ 이선제 묘지이선제가 사망한 이듬해인 1454년(단종 2)에 분청사기로 제작되어 무덤에 함께 묻혔으나 도굴되어 1998년 6월에 일본으로 불법 반출되었다. 2014년경 소재가 확인되었고, 2017년 9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노력으로 소장자인 도도로키 다카시 유족이 기증하여 국내로 환수되었다. 국립광주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형태]

분청사기 상감 ‘경태5년명’ 이선제 묘지는 2개의 장방형의 태토판을 붙인 위패 모양을 본뜬 분청사기 형태로 제작되었다. 명문은 태토판의 앞뒤와 측면을 모두 사용하여 백토 상감한 형태로 새겨져 있으며, 총 248자가 확인된다.

[특징]

묘지란 망자의 생전 행적을 적어 무덤에 함께 넣은 기록물로, 주로 돌로 제작되어 묘지석으로 불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조선 전기에는 분청사기를 비롯하여 백자 등의 도자기로 제작되기 시작하였으나 대체로는 방형판 형태로 제작되었고, 조선 후기에는 방형판의 청화백자 형태가 주류를 이룬다. 이 묘지는 조선 전기 짧은 시기 동안만 제작된 분청사기 묘지이며, 규형의 비석이나 위패를 본뜬 2개의 판을 하나로 합치고, 하단에는 연꽃무늬를 넣는 등 조형적인 부분까지 더한 보기 드문 형태를 띠고 있다.

[의의와 평가]

분청사기 상감 ‘경태5년명’ 이선제 묘지는 분청사기를 이용한 위패형으로 제작된 흔치 않은 유물이며, 조선 초기 민간의 상장례가 정비되기 이전에 다양하게 시도된 묘지의 형식 중의 하나이다. 그 유래가 드물고 학술적 가치와 완성도가 높아 2018년 6월 27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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