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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043
한자 畢門李先齊不祧廟
영어공식명칭 Pilmun Yi Seonjae Bujomyo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광주광역시 남구 구만산길 34[원산동 535-1]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용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454년 이후 - 필문이선제부조묘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834년 - 필문이선제부조묘 중수
문화재 지정 일시 1990년 10월 15일연표보기 - 필문이선제부조묘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7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8년 9월 10일 - 분청사기 상감 ‘경태5년명’ 이선제 묘지 국가지정 보물 제1993호로 지정
현 소재지 필문이선제부조묘 - 광주광역시 남구 구만산길 34[원산동 535-1]지도보기
원소재지 필문이선제부조묘 - 광주광역시 남구 구만산길 34[원산동 535-1]
성격 사당
양식 골기와 맞배지붕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1칸
문화재 지정 번호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7호

[정의]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사당.

[개설]

필문(畢門) 이선제(李先齊)[1389~1454년]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며, 1990년 11월 15일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변천]

필문이선제부조묘고경명(高敬命)을 모시는 포충사(褒忠祠)가 있는 제봉산(霽峰山) 아래 만산부락에 자리하여 있으나, 원래의 자리에서 50여m 왼쪽으로 옮겨 온 것이다.

[형태]

필문이선제부조묘 입구에는 1989년에 새롭게 오석(烏石)의 직사각형으로 만든 부조묘비(不祧廟碑) 역문이 있다. 계단 위 부조묘 입구에는 솟을삼문의 형태를 한 창학문(倡學門)이 있으며, 가운데만 태극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창학문의 오른쪽 아래에는 이씨 문중과 관련된 사람들의 유허비(遺墟碑)와 포충비(褒忠碑) 5개가 서 있는데 최근에 제작한 것이다. 부조묘의 건물은 화강암 기단 위에 덤벙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원주기둥을 세웠으며, 정면 3칸 측면 1칸의 골기와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특이하게 창호는 각 칸마다 2분합 겹문으로 만들고 띠살창으로 제작을 하고, 창호 아래 태극문양을 그려 놓았다. 그리고 3단으로 된 흙과 돌로 만든 담장이 있다.

[현황]

필문 이선제는 세종(世宗) 때 급제하여 이조참판세자좌부빈객(吏曹參判世子左副賓客)을 지냈고, 문종(文宗) 때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등 32인과 함께 『고려사(高麗史)』를 편찬하여 광국훈(光國勳)으로 경창군(慶昌君)에 봉해졌다. 성종(成宗) 때 이조판서(吏曹判書), 예문관(藝文館) 대제학(大提學)에 추증되었다. 벼슬을 그만두고 향리에 돌아와서는 후진 양성은 물론 고장에 향약(鄕約)을 베풀어 미풍양속(美風良俗)을 이루는 데 모범이 되었다. 광주 외에도 강진의 수암서원, 오현당(五賢堂)과 죽산사(竹山祠)에 배향되었다.

필문이선제부조묘 입구에는 이선제와 관련된 전설이 있는 600여 년 된 왕버들나무 두 그루가 있다. 그 중 하나인 입구 약 200m 앞에 이선제가 심었다고 하는 왕버들나무 ‘괘고정수(掛鼓亭樹)’가 있는데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또 다른 하나는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광주광역시에서는 이선제의 학덕과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1988년 필문로(蓽門路)라는 도로를 명명(命名)하였는데 서방사거리에서 남광교[남광주역]까지 4.1㎞의 8차선 도로이다.

이선제의 분청사기 묘지(墓誌)는 분청사기 상감기법으로 제작되었는데, 1988년 일본으로 밀반출되었다가 2017년 일본인이 기증하여 현재는 국립광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선제의 일생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2018년 분청사기 상감 ‘경태5년명’ 이선제 묘지라는 명칭으로 보물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필문이선제부조묘는 후학 양성과 미풍양속에 힘쓴 이선제의 이력이 담긴 곳으로 조선 초의 역사상과 생활상 등을 잘 알 수 있는 곳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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