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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0542
영어공식명칭 Neoritjae Tunnel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도로와 교량
지역 광주광역시 동구 선교동|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백현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준공 시기/일시 1971년연표보기 - 너릿재 구터널 준공
준공 시기/일시 2007년연표보기 - 너릿재 신터널 준공
증설|폐설 시기/일시 1992년 - 너릿재구터널 증설
전구간 너릿재터널 - 광주광역시 동구 선교동~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해당 지역 경유 구간 너릿재터널 - 광주광역시 동구 선교동 지도보기
성격 터널
길이 400m[너릿재구터널]|620m[너릿재신터널]
차선 왕복 4차선[너릿재구터널]|왕복 4차선[너릿재신터널]
10m[너릿재구터널]|10m[너릿재신터널]

[정의]

광주광역시 동구 선교동과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이십곡리를 연결하는 터널.

[개설]

광주광역시 동구 선교동에서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이십곡리로 이어지는 터널로, 너릿재터널[남문로-화보로]과 신너릿재터널[너릿재로]이 있다.

[명칭 유래]

너릿재터널은 인근에 너릿재가 자리하여 붙여진 터널명이다. 너릿재는 원래 널재였는데 널재를 한자어로 번역하면 판치(板峙)가 된다. 판치에서 '판(板)'은 판판하고 넓게 핀 나무판자인 널빤지를 의미한다. ‘널의 재’ 또는 ‘널재’가 나무판자를 의미하는 널빤지와 발음이 비슷하여 한자로 표기되면서 ‘판치’로 번역된 것으로 추정된다. 널재가 시간이 지나면서 너릿재로 바뀌게 되었는데, 널재너릿재로 바뀐 이유에 대하여는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가 숨겨져 있다. 동학농민운동 당시 처형당한 농민군들의 널[관]을 들고 넘어왔다고 널재로 불렸다는 설이 그것이다.

[제원]

너릿재구터널은 왕복 4차선의 도로와 연결되며 총 연장 400m, 총 폭 10m, 유효 폭 9m, 높이 6.5m의 제원의 터널이다.

너릿재신터널은 왕복 4차선의 도로와 연결되며 총 연장 620m, 총 폭 10m, 유효 폭 9m, 높이 6.6m의 제원의 터널이다.

[건립 경위]

너릿재터널이 준공되기 전에는 지금의 교동교 인근에 자리한 수원교를 지나 너릿재를 넘어야만 화순으로 갈 수 있었다. 때문에 비포장도로인 너릿재를 통과하는 차량들의 사고를 방지하고, 광주광역시와 화순군 사이의 원활한 교통 흐름을 위하여 1971년 너릿재터널[구터널]이 준공되었다.

[변천]

너릿재구터널은 1971년에 준공되었고, 1992년 왕복 2차선의 도로에서 4차선의 도로로 확장되었다. 2007년 너릿재신터널이 준공되어서 너릿재에는 2개의 터널이 존재한다.

[현황]

국도 제22호선과 연결되는 너릿재터널은 광주광역시 국도관리사무소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2012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일일 교통량은 1만 8000여 대로, 광주광역시에서 화순군으로 넘어가는 중요한 길목이다. 너릿재신터널이 준공되면서 너릿재구터널을 보완하여 교통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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