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15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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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開峰洞-說話 |
영어음역 | Gaebongdong Neutinamu Seolhwa |
영어의미역 | Tale of Zelkova in Gaebong-dong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개봉3동 |
집필자 | 김미경B |
서울특별시 구로구 개봉3동에서 큰 느티나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봉동 느티나무 설화」는 구로구 개봉3동 271-19번지[목감천 철산교 근처]에 위치했던 구로구의 지정보호수로서 창녕조씨(昌寧曺氏)의 선조가 심었다는 느티나무에 관한 유래담이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함께 전해지는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마을 도당제와 유래담이다.
1997년 구로구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구로구지』와 2004년 김정진이 집필하고 가람에이전시에서 발행한 『향토사수탄』에 수록되어 있으며, 『구로타임즈』 등에도 실려 있다.
옛날 옛적에 개웅산 아래 개웅마을에서 갓난아이와 어린이와 청년뿐만 아니라 성인까지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창녕조씨의 후손인 조상익이라는 사람의 모친 꿈에 수염이 하얗게 센 도사가 나타나서 이르기를, 다시마를 튀겨서 산고사를 지내라고 하였다. 도사의 말대로 이 마을에 살던 당시 30여 호의 사람들이 양곡을 거두어 고사를 지냈다. 그 이후에는 이러한 변고가 사라졌다고 한다. 이것이 개봉동 도당제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이 나무 앞으로는 말을 타고 지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옛날에 결혼을 마친 신랑과 신부가 이곳을 지나가다가 신랑이 탄 말의 다리가 땅에 달라붙어 움직이지 못했다고 한다. 이 일화는 느티나무와 관련된 또 다른 이야기와 연결시킬 수 있다. 즉 마을 사람이 장가를 가거나 시집을 오면 새 사람은 이 느티나무에 와서 꼭 인사를 하고 지나갔다는 이야기이다.
그 밖의 이야기로, 대략 70여 년 전에 제사[도당제]를 지낼 때 어느 신부가 자신이 임신한 줄 모르고 제사를 지냈다가 손가락이 여섯인 아이를 출산했다고 한다. 다른 이야기는, 1945년 광복이 되던 해 느티나무 옆에 있던 가죽나무가 갑자기 쓰러진 적이 있었다. 그 이유를 도당 할아버지가 꿈에 나타나 다른 나무에서 고사를 지냈다고 호통을 쳐서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느티나무는 둥치에서 50m 떨어진 곳에 그네를 매달아서 놀 정도로 컸으며, 어린아이 한 명이 들어가 놀 만큼 느티나무에 큰 구멍이 있었는데 밤에는 ‘우~’하는 소리가 났다고 한다. 이것은 바로 나무에 사는 구렁이가 우는 소리였다고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전해지고 있다.
「개봉동 느티나무 설화」의 주요 모티프는 ‘개봉동 도당제의 시초’, ‘느티나무에 대한 경외와 금기’ 등이다. 개봉동 느티나무와 관련하여 여러 각편[Version]의 설화가 구전되는데, 이것은 작자가 알려지지 않은 채로 구전되는 정형화 되지 않은 설화 특유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개봉동 느티나무 설화」는 특히 신목설화와 연관시켜 설명할 수 있다. 신목이란 하늘과 땅, 그리고 신과 인간을 만나게 하는 매개체, 혹은 영혼이 깃든 매개체로서의 나무이다. 신목설화는 나무와 민속신앙과 얽혀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신목은 신비로움이 깃들어 있으므로 신성하게 여겨져서 숭배되어야 할 대상인 것이다.
개봉동에 종산을 갖고 있는 창녕조씨 집안에서 내려오는 「개봉동 느티나무 설화」는 “옛날 옛적에”라고 시작되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전승되는 민담으로 볼 수 있다. 이 이야기는 느티나무를 처음 심었다고 전해지는 조씨와 조씨의 후손 조상익이라는 사람 중심의 한 가계(家系)를 넘어서 당시 이 마을에 살던 30여 호의 사람들이 함께 양곡을 모아 도당제를 지냄으로써 마을의 집단적 공동작품으로 승화된다. 마을의 안녕과 태평을 기원하는 인간의 무의식적 구조가 굿이라는 민속신앙의 형태로 드러난 것이다.
또 다른 이야기로 이 느티나무 앞으로는 말을 타고 지나갈 수 없다거나, 마을 사람들은 장가를 가거나 시집을 오면, 즉 마을에 새 사람이 들어오면 이 느티나무에 와서 꼭 인사를 하고 지나갔다거나, 임산부가 도당제에 참여하면 장애아를 낳는다든가 하는 이야기들은 이 나무의 신성성을 믿는 마을 사람들의 집단의식이 경외와 금기를 유발하는 사회적 심층 의식과 결부되어 나타난 결과라고 볼 수 있다.